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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러프 ROUGH

소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

by 춘프카

오늘 밤은 리영희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었다. 두툼한 책 <대화>와 며칠 밀려있는 신문 여섯 장을 포갰다. 조용히 읽고 쓰다 잠들어야지 하면서, 동네 무인 카페를 찾았다. 예상한 대로 한적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읽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닌 일에 자주 눈물이 나오는데, 이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감수성이 풍부한 건지 가늠이 안 된다. 어쨌든 노동자 르포 기사와 보육원에서 봉사하는 따뜻한 사람에 대한 기사에 눈물을 닦았다.


그때쯤이었다. 세 사람이 들어왔다. 아, 여긴 내 사무실이 아니었지. 얼른 눈물을 닦아내며 기사를 마저 읽었다. 그들은 목소리가 우렁찼다. 덕분에 감성에 젖었던 내 마음은 평정심을 되찾았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할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참을만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마치 마을 부녀회 모임을 진행하는듯한 인원과 폼으로 여성분들이 대거 들어왔다. 한 분 한 분 몰래 세었더니 일곱 명이었다. 이제 이 좁은 공간에는 앞선 청년들과 나를 포함해 열한 명이 붙어 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론 읽고 쓰기가 어려웠다.


순간 에어팟 프로가 시선에 들어왔다. 빠른 손놀림으로 양쪽귀에 에어팟을 넣고 노이즈 캔슬링을 눌렸다. 놀라웠다. 이래서 돈을 써야 하는구나, 느꼈지만 여전히 누가 더 목소리가 큰지 대결하는듯한 그들의 사운드를 온전히 잡아낼 순 없었다. 잔나비의 노래를 힘껏 틀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읽던 신문을 계속 읽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들과 함께다.


호흡을 가다듬고, 리영희 선생님을 읽는다.

수차례 읽었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떨림은 지금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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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우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1977)' 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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