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동화
어렸을 적 읽었던 이야기랑 다르잖아?
토요일 오후, 지인을 기다리며 한적한 카페에 들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앉은 테이블 바로 앞에 즐비하게 놓인 책들이 보였다. 그날따라 동심의 마음이 풍만했던 나는, 그중에서도 <어른들을 위한 안데르센 동화>가 말을 건네는 듯했다.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게 어때'라고. 대답 대신 책을 펼쳤다.
나는 곧 당황했다. 어렸을 적 읽었던 이야기와 발표 당시의 원작 내용은 사뭇 달랐다. 결말에 대한 부분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명작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작가의 짝사랑 덕분이었다니. <인어공주>, <장난감 병정>, <미운 오리 새끼> 세 작품 모두 안데르센이 마음속으로 동경하던 여성에게 쓴 러브레터였다. 진작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제야 알았다. 안드레센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많은 여성을 사랑했다. 해피엔딩은 없었다. 그 실연의 아픔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더 있었다. '이야기하듯이' 쓰는 그의 스타일이었다. 동화작가인데 당연하지 않은가? 반문할 수 있겠지만 작품이 세상에 선보였던 당시에는 혹평이 가득했다고 한다. 문장부터 똑바로 배우고 다시 쓰라는 질책이었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책을 펼쳐본 사람들은 인쇄된 문자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사실주의 문학이 발전했으니. 안데르센은 이미 50년 전부터 이야기하듯 글을 쓴 것이다. 작품을 다 쓰고 나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읽고 기록했던 몇 가지 부분을 정리하고 글을 갈무리한다.
안데르센은 낭만주의 작가였다. 19세기 전반을 지배한 합리주의와 맞섰다. 개인 감성과 상상력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일상적인 요소에서 신비로움을 가미했다. 구구절절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 벌이지는 데는 이유를 붙일 필요가 없다. '무엇이든지 정말 있었던 일에는 가장 기묘한 이야기가 나오는 법입니다.' <딱총나무 아줌마> 첫머리
나는 한 번도 아이를 내 등에 태우거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적이 없다.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 알 수 있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