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나를 멈춰 세운 문장들, 첫 번째 기록

by BOs Highlighted Lines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은 갈망이 내 안에서 꿈틀댔지만, 단조로운 일상 안에서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늘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가장 가까운 곳, 책꽂이에 눈이 머물렀습니다. 제 삶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책'에서 글의 재료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중 어린 시절부터 추천 도서 목록에서 늘 마주했던 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다시 펼쳤습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니 문득 '나는 왜 그동안 한국 문학을 등한시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게 되더군요. 가장 익숙해야 할 우리의 이야기에 낯선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과 고민들을 기록하면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를 멈춰 세운 문장 세 가지


1. 심심함은 어디서 오는가

서울내기인 이상의 감수성이 만들어낸 관념의 유희일뿐 정말은 그렇지 않다. 시골 애들은 심심해서 어떻게 살까 불쌍하게 여기는 건 서울내기들의 자유이지만 내가 심심하다는 의식이 싹트고 거기 거의 짓눌리다시피 한 것은 서울로 오고 나서였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고 항상 도시에서 살았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일하시던 바닷가 근처를 여동생과 돌아다니며 놀았던 기억은 그 시절의 평화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그 시절은 참 좋았는데, 돌이켜보면 '심심함'이나 '결핍'은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도시화된 이후의 의식에서 온다는 작가의 통찰이 깊이 공감된다.


2. 선악의 갈림길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에 찌든 30대 후반이 되고 나서 인간에게 혐오감을 느낄 때가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이 문장이 나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된다. 모든 사람은 선천적인 악인이라기보다는, 사는 동안 마주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이 지금의 그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라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3. 그 와중에도 재미있고 싶었다

여북해야 그 무렵 나는 북조선이 과연 노동자의 낙원일까를 의심하는 것보다는 북조선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인구를 증가시킬까를 궁금해하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재미있고 싶었다.

이 문장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인 것 같다. 굵직한 역사적 내용들(일제강점기, 해방, 전쟁)이 배경이 되지만, 한 여자아이의 시선은 심각함 대신 생존과 재미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아이가 어떻게 삶의 활력을 찾아서 인생을 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너무 심각하지 않아서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단순한 성장 소설을 넘어, 나 자신과 한국의 역사, 그리고 내가 외면했던 '우리의 이야기'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책을 덮은 지금, 다음 한국 문학 작품을 펼치고 싶은 갈망이 꿈틀거립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기록을 망설이던 저에게 글쓰기의 방향을 잡아준 소중한 첫 작품이 되어주었습니다.

오늘의 밑줄이 내일의 기록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