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 인생

by 작가블리스


세상에 빨리 눈뜨다


공부에는 관심 없었지만 긍정적이고 자존감 높았던 이상한 아이. 나의 이야기다. 그 이유는 한 번도 부모님으로부터 공부로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공부에 욕심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나이였다고 생각했다.


늘 북적댔던 집안. 딸 넷에 시부모님 모시고 신랑의 나이 차이 많이 났던 동생들까지 뒷바라지하며 장가를 보내셨다. 그러다 보니 늘 집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우리 집 마당은 동네 사람들 놀이터였다.


집안의 가장 막내였던 나는 크면서 언니들 친구며, 엄마 친구,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친구들까지 온 연령대의 인간관계를 보며 자랐다. 돈, 슬픔, 기쁨, 배신 등 모든 인간사의 감정을 나는 가족들의 삶으로 배웠던 것 같다.


엄마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얼굴에 구김 하나 없이 정말 유쾌하셨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엄마 아빠를 정말 좋아했고, 우리 집을 좋아했다. 집에 있으면 이미 저 멀리 엄마가 웃고 떠드는 소리에 언니들과 나는 엄마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시장에서 장을 자주 보셨는데, 엄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단골이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행동과 물건을 사고팔며 하는 대화, 그런 것들을 많이 보고 들으면서 알게 모르게 나는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늘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철이 빨리 든 건지 세상에 빨리 눈 떴다.


나는 어릴 때 혼자만의 시간이 참 많았다. 마당에 큰 칠판이 있었는데 그걸로 선생님 놀이도 하고, 학원을 거의 안 다녔으니 시간도 많았고, 엄마랑은 늘 친구처럼 대화했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엄마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혼내거나 한 적이 없으셨다.


사람 관계에서 고민되는 문제들에 지혜로운 말을 많이 해주셨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에게 속이는 말이 많았지만 나는 그런 엄마 덕분에 속이야기를 많이 했다. 세상사에 빨리 눈뜨다 보니 나랑 대화를 하다 보면 친구들이나 나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들도 자신의 남자 친구나 친구관계 같은걸 나에게 상담하는 일이 늘었다.


나는 보지도 못한 친구의 남자 친구를 친구와 대화한 말만 가지고도 그 사람이 어떻다는 것을 판단하며 상담이 가능했고, 사람들은 내게 돗자리 깔라며 무섭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너한테는 자꾸 남들한테는 안 하는 얘기를 하게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하면 그런 심리나 사람을 보는 능력이 생기냐고 자주 물어봤지만 나는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내가 지금 글을 쓰다 보니 나의 가정환경 덕분인 것 같다. 내 친구 중의 아빠는 다른 친구 얘기는 몰라도 내 얘기만은 꼭 들으라고 하셨다. 고민이 생기면 나에게 상담하라고 하셨단다. 나를 항상 야무지고 바르다고 생각해주신 감사한 친구의 아버지다.


고등학생 땐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상담 선생님께서 너는 사람들을 상담해 주는 상담사가 되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셨는데 크게 관심 없는 분야라 그냥 무시한 채 시간이 지나갔다. 내겐 목표도 꿈도 없었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으니 그다음엔 뭐가 돼야 할지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 점수에 맞는 의료 쪽 대학교를 선택해서 졸업하고 병원에 취직했다.




남의 돈 잘 벌어주는 직원



치과에서 일하며 인정을 받아 26살 경력 3년 반 만에 총괄 실장이 됐다.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 거의 상담 성공률이 90% 이상이었다. 한 병원에서는 월 3천 이상의 순 매출이 나오기 힘든었는데 내가 실장이 되고 나서 월 4천대로 올려놓았다.


인센티브를 약속했던 의사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이 달라졌다. 그래서 겸사겸사 그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치과에 취직하며 일했다. 어떤 의사 선생님은 나랑 일할 때가 가장 믿음이 가고 가장 일을 잘한다고 해주셨고, 처음 취직해서 2년간 일했던 치과에서는 내가 나간 후 4년간 나를 계속 오라 하셨었다.


다른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나중엔 원하는 연봉을 줄 테니 와달라고 했다. 또한, 결혼 전 실장 자리가 비어 한 달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병원에서 일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한 달을 채우지 못했지만 너무 고마웠다고 한 달 월급을 다 챙겨주셨다.


늘 북적북적 됐던 나의 어릴 적 집안 환경 덕에 사람들과 말하는 걸 좋아했고, 사람이 두렵지 않았고 어딜 가나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래서 매출은 늘 자연히 따라 올라갔다. 그래.. 난 어딜 가도 능력을 인정받는 능력자였다. 치과에 일하면서 처음 꿈이 생겼었다.


치과 업무가 너무 재밌다고 느낀 후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 생각했었고, 그때 처음으로 공부에 대한 후회를 했다. 직원으로 번 돈은 그건 내 돈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 나는 그저 남의 돈을 아주 잘 벌어주는 직원이었을 뿐이었다.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금방 배워서 할 수 있을 만큼 자신 있었던 나였지만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땐 공부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의사도 아니었고, 대단한 스펙이 없으니 더 이상 병원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생각에 허무했다. 몇 살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불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공부 잘해야 훌륭한 사람 되고, 공부 잘해야만 좋은 곳에 취직하고, 안 그럼 루저가 된다는 교육의 난 피해자였다. 공부 못하면 부자는 될 수 없고 평생 루저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도 정말 공부를 잘해야 하는 것은 맞다.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게 목적이라면.. 내가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나를 체조선수를 시켜야 한다며 집까지 선생님이 찾아오셨던 적이 있었다.


나의 몸은 상당히 유연했고, 선생님이 보시기엔 체조하기에 딱 좋은 체형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엄마가 나에게 체조하고 싶냐고 물었었지만, 나는 어릴 때 약간 소극적이었던 아이라 부끄러워서 아니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 직장생활을 하다 가끔 왜 나를 그때 체조선수 안 시켰었냐고 물어보면 내가 안 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대답하셨지만, 진짜 이유는 대가족에 나만 따로 데리고 다니며 신경 쓸 수가 없어서였다. 성인이 되어 취미로 발레를 잠깐 배웠었는데 선생님께서 어릴 때 발레 했었냐고 물어보실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내가 그때 체조선수가 됐었다면 어땠었을까 상상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고생길이 뻔하니 안 시켜준 걸 감사하고 있다.ㅎ 생각해보면 난 어릴 때 공부 빼고는 다 잘했던 것 같다. 미술도, 노래도 다 잘해서 합창단에 뽑혔지만 학교 사정으로 시작도 못해보고 해체됐다.


막상 커서 불만이 생길 때마다 공부는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한 걸 알면서도 나를 어릴 때 왜 공부 안 시켜 줬는지, 왜 조금 더 내가 잘하는 걸로 이끌어 주지 못했는지 속으로 부모님 원망을 한 적이 많았다. 그 뒤로 한참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에 캐나다 어학연수를 준비했다.


영어를 배워 뭔가 새로운 곳에 가서 도전하고 싶었다. 영어만 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 같았다. 그러던 도중 나의 신랑을 만나 운명처럼 결혼을 했다. 난 똑똑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이상형이었는데 신랑은 그런 사람이었다.


신랑은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가 벤처로 갔지만 나랑 결혼하기 위해 우리 부모님께 당당하게 보이겠다고 우리나라 최고 대기업으로 다시 이직했다. 그리고 나는 결혼 후 현모양처를 꿈꾸었는데 운명처럼 부동산에 눈뜨게 됐다.



아동 심리학 상담가



아이들을 키우며 큰아이 2학년 때 다녔던 학원에서 이벤트로 아동 상담가이자 아동학 교수님이었던 분과 무료로 상담할 기회가 있어 상담을 갔었다. 마침 내가 고민이었던 큰아이 상담을 하기 위해서 갔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내가 들은 말은 어머니 같으신 분만 있으면 본인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정작 와야 할 분들은 자신들이 가야 한다는 생각들을 못하고 오지 말아야 할 분들만 온다고 해주셨다.


그러면서 100명 중 1명 나올까 말까 한 엄마라며 내게 가지고 있는 그 지식과 재능을 썩히기엔 너무 아깝다고 아동 상담가가 되라고 하셨다. 대학원은 나와야 좋다며 공부해서 자기한테 오라고 하셨다. 정작 아이 상담을 가서 내 진로 얘기로 끝이 났다.


그래..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나에게 고민 같은 걸 참 잘 털어놓았다. 나이를 떠나 이상하게 나랑 이야기하다 보면 속이 후련해지고 편안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설렘을 느꼈다. 나는 단 한 번도 육아책과 부동산 책은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었다.


육아는 강연도 다니고 좋은 글 , 좋은 유튜브는 다 찾아 다니며 봤다. 그렇게 내가 그동안 노력했던 육아 공부와 나의 경험을 인정받은 기분이었고, 공부해서 아동 심리상담가가 된다는 것은 뭔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를 다시 다닐 수도 없어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데 요즘처럼 세련된 영상도 아니고, 정말 올드한 영상에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고 너무 지루한 말투의 수업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절실함이 덜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또한번 학벌때문에 잠시나마 꾸었던 나의 꿈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다!!- 글을 쓰고 나를 찾다


나쁠 것도 더 좋을 것도 없이 우리는 그냥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난 늘 사업에 대해 꿈꿨다. 신랑이 직장을 다니고 나는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었지만, 신랑이 회상원이다 보니 언젠가는 사업을 해야 할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블로그던 유튜브던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렇게 변하는 세상에 동 떨어져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블로그 강의를 우연히 알게 돼 블로그 사용법을 배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안 써본지가 언젠지.. 매일매일 갑자기 주제도 없이 쓴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내가 글을 써본 거라고는 20대 때 싸이월드에서 내 이름 마지막 글자 "숙"을 따 수기 생각이란 폴더에 시나 나의 생각을 짧게 담은 것들이 다였다. 내 글을 사람들은 광수생각 보다 좋다고 해주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글 한번 배워본 적 없는 내가 글 쓰는 것을 시작할 때 아무 의미 없이 포스팅에 목적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 시작했으니 진정성 있게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내 글에 메시지를 하나라도 남겨 도움이 되길 바랬다.


또한, 내가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고 투자를 하게 됐는지, 자식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이 글을 모두 모아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선물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투자 공부도 될 것이고, 내 아이가 커서 본인들이 낳은 아이를 키울 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글로 보여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글을 쓰다가 한 달 반이 되었고, 사람들은 내게 글을 너무 잘 쓴다고 얘기해 주셨다. 내 글로 공감하고, 위로받고, 눈물을 흘리시고 좋아해 주셨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된 이웃 덕분에 브런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 글이 30개 초반이었는데 내가 쓴 글이 없으니 블로그 글 하나를 옮겨 발행을 하고 내 블로그로 검수를 요청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것은 한 번도 내가 되겠다는 목표도 없었고, 대단한 분들만 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믿기지 않게 이틀 만에 바로 승인이 났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고 기뻐해 주고, 나의 글을 보면 작가가 되는 건 당연했다고 말해 주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났다.


재미없을 것 같던.. 아무런 소재가 없어 평범했던...공부가 아니면 더 이상 올라갈 것이 없을까봐 두려웠던 내 젊은날의 루저인생이 글 하나로 내 인생의 필름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다는 것이 누구에게는 별 볼 일 없이 시시해 보일 수도 있으나, 아무 조건 없이 글 하나로 내가 인정 받았다는 사실이 공부에 목마름이 있던 나의 그동안 서러웠던 감정을 폭발하게 만든 나에게는 특별한 사건이 되었다.


하지만 자기 소개서와 프로필을 등록하려니 내가 등록 할 수 있는 직업이 하나도 없었다. 주부라도 찾아보려고 했지만 주부조차 없어서 내가 이 대단한 사람들 사이에서 작가로 성장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미 작가 활동 하시는 분들도 많다 들어서 주눅이 들었었다.


그런데 브런치 작가가 된지 정확히 6일 후 7월 26일날

" 전세 VS 매매 누가 더 위험할까? " 라는 내 글이 다음(daum) 메인카카오 탭 메인, 브런치 인기글에 장식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8월 3일 "칭찬이 내 아이를 위험하게 한다" 라는글이 다시 한번 다음메인브런치 인기글로 올랐으며, 같은 날 블로그를 시작한지 두달이 안되서 "10살전 아이들 교육은 이것이 전부다" 라는 내 글이 네이버 메인에도 올랐다.


그저 매일 진정성 있게 글을 썼고, 아이들 교육과 육아는 마라톤처럼 길게 바라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한 후 내 인생에서 주인공은 아이들과 남편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내가 작성해서 하루하루 쌓인 글을 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깨달았다. 현재 내가 걷고 있는 마라톤같이 긴 인생의 영화는 아이들과 남편이 아니라 진짜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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