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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Dec 15. 2023

어떻게 우정이 ‘안’ 변하니?

은수는 그저 ‘헤어져’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어머? 자기도 그렇구나?   

  

나는 문득 안도감을 느낀다. 내가 아는 약간명의 지인 중에 가장 인간성이 좋은 사람일 수 있는 순이씨 마저도 오래된 친구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음에 - 나 스스로 가지고 있던 ‘에휴, 역시 내 성격이 문제야’라는 질타를 조금은 지울 수 있었다.     


한 때 민정(가명)이와의 약속만으로도 설레던 나는, 자주 꺄르르 웃어대고 같이 통곡했던, 가끔은 싸웠지만 자주 행복했던 민정이와 나는, 그리고 순이씨와 순이씨의 친구는 불편해졌다. 이미, 시나브로 그렇게 된 지 몇 년 째인 셈이다. 모르는 척, ‘에이 오늘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렇게 느끼는 거지 뭐. 어제 괜히 티브이 보고 늦게 자서리..’ 하며 에둘러 피해 가려 했던 이 불편감은 어느새 꼭 풀어야 하는데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끙끙거리게 만드는 내 인생사 ‘킬러문항’처럼 남았다. 문제를 쳐다만 보면 뭐 하나. 종국에는 ‘에라이 모르겠다, 난 포기’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고사양 문제 특유의 기세에 나는 이내 짓눌리고 만다.   

  

이노무 지지배를 어찌할꼬.     


커피를 마시다가도, 멍하니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가도 민정이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나는 괜스레 조금 운다. 이것이 내가 민정이를 마음에서 정리하는 의식이 되지 않기를 바람 하면서.     


고등시절 이후, 대학시절 이후, 직장생활 이후 우리의 삶의 방향은 너무 많이 바뀌었다. 다름이 주는 부담감쯤이야, 우리 사이에서는 별 거 아니라고 여겨왔건만. 그 다름이 처음엔 부담감으로 시작해서 불편감으로 커졌고, 급기야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우린 다르다. 난 아이를 키우지만 그녀는 아니다. 난 직장이 없고 그녀는 사회인이다. 나는 남편이 있고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다.      


머릿속만 뒤죽박죽 해있는데, 어제 순이씨와 대화를 하며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한 것은 내 친구 최민정 그 자체가 아니라, 이제 와서 아름다웠다고 기억되는 나의 젊은 시절이며, 그 시절에 나와 함께 해 주었던 젊은 시절의 민정이었다는 것을.      


어쩜, 이기적이기도 하지. 나는 이렇게 40대 중반으로 실컷 바뀌어놓구선, 친구는 이십 대 중반의 젊은 시절의 그녀 그대로 있기를 바람 했단 말인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어떻게 우정이 변하니?’라고 묻는 나에게 민정이가 먼저 ‘저리 꺼져’라고 말하기 전에 태세 전환이 필요할 터.     


근데 여기까지만 알겠고, 그 다음 스텝을 모르겠다.     


순이씨와의 결론은 

-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

- 뭔가 우리랑 비슷한 코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 동호회 같은 곳에서 가볍게 사람을 사귀어 보자. 

정도라니.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앞으로도 영원할 테제만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내 마음의 불편감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의리-우정-사랑. 이 단어가 가진 표상보다 내 마음을 봐준다. 나는 불편하다. 민정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불편하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 사이, 앞으로는 모르겠다. 기약 말자. 그저 시간의 위대한 힘에 맡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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