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남편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곤 부산 기장에서 건어물도매업을 시작하기로 했단다. 직접 그 가게에 가 보니, 좌판에 큰 멸치 중멸치 잔멸치 디포리 건오징어 건문어 쥐포 등등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장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친구는 우리에게 세상의 커다란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는데, 그건 바로! 부산 사람이라면 한 번쯤 먹었을법한 해운대 OOO국, 기장 OO국밥, 광안리 원조할머니 OOO국밥 맛의 비기였다. 그것은 바로바로 '자기네 집 멸치'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 오호라. 더불어 그 국물맛의 비밀은 자기네 집 멸치 플러스 다. 시. 다. 그리고 미. 원.이라고. 친구의 설명으론 멸치 100만 마리로 우려낼 국묵을 다시다와 미원 조합 한 두 스푼이면 뚝딱 가능하다나. 그녀는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식당은 인공감미료를 사용한다고. 국물맛으로 특별히 유명한 식당은 인공감미료와 자연재료의 최고의 배합비율을 아는 곳이라고.
그 후로, 친구네가 멸치를 대어 판다는 유명한 국물맛집인 그 가게들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이상하게 외식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그렇게 싸지도 않은 가격의 그 국 한 사발에 인공감미료로 맛을 낸 국물을 부러 사서, 맛있다고 맛있다고 칭찬하며,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혹은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국물을 낼 수 있냐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먹곤 싶진 않았다.
다시다, 미원 같은 대표 인공감미료는 말 그래도 인공, 그러니까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해 낸 화학제품이다. 대기업 수석연구원들이 몇 달을 혹은 몇 년을 고민하여 만들어낸 원자와 분자 조합들일 터. 이 가루들은 물에 넣으면 육각형 팔각형의 화학기호가 되어 인간의 혀 속에서 입속에서 감칠맛을 자아낸다. 아 맛있다라고. 돌려 생각하면 참으로 싸고 편하게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물건일진데. 그럼에도 왜 인공은 사람들에게 뭔가 찝찝한, 가능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은, 그것이 사실은 인공의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비겁하고 야비하고 치사하고 고상하지 못하고 살짝 천박하게 까지 느껴지는 걸까. 왜 인공에겐 진실함 혹은 정정당당함의 이미지가 없을까.
그것은 인공의 기원 때문이다. 인공은 자연에 존재하는 스스로 그러한 - 그리하여 무조건 정당한 - 그 어떤 것을 분석하고 분리하고 조합하여 ‘자연에 가깝도록 따라서 만들어 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널이 가지는 원본의 힘을 인공제품은 가질 수가 없다. 제아무리 원본에 가까워도, 혹은 능가할지라도 인공은 늘 베타다. 공을 들이고 애를 써도, 알파에 매우 가까운 베타일 뿐, 그것을 따라갈 순 없다.
펄떡펄떡 뛰는 기장 멸치를 새벽바람을 맞으며 어부가 건져 올려, 또 바닷바람에 건조한 후 가정으로 가져와서 끓는 물에 둥둥 띄워 우려낸 맛 VS 가루의 맛.
“아이고오, 그 쌍둥이는 인공인교? 자연인교?”
저 멀리서 누군가 우리 쌍둥이 유모차를 포착한다.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우리를 발견하곤, 반갑게 손뼉까지 치며 다가온다. 나는 딱 대기한다. 이번엔 자연이라고 할까 말까, 시험관이라고 할까 말까. ‘아... 뭐 흐...’ 하며 대략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어가려 해 보지만... 끝까지 "그래서 애들은 자연이야 아니야? 인공? 시험관?"을 꼬치꼬치 캐어 묻는 나보다 연장자인 것이 너무나도 자명해 보이는 어머님들을 상대할라치면 곤혹스럽다. 나는 그닥 장유유서형 인간이 아니라고 자부하며 살아가려 하지만, 막상 닥치며 매우 장유유서 하기에 그녀들의 기세에 밀리곤 한다. (이래서 사회가 공유하는 문화자산은 무서운 거라고나 할까.)
"저기욧, 저를 언제 보셨다고 이런 사적인 질문을 이렇게나 인공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라고 하지를 못한다. 남편과 나의 유행어인 "잠시만요, 배려부탁드립니다."라고도 못했다. 울분 비스므리한 것을 꾹꾹 누르며 돌아서곤 하면, 다음 날, 일주일 혹은 한 달 후에 또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