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즐겨요. 여언민.
“쌤은 자기 연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에? 평소 잘 쓰지 않던 두뇌의 구석구석을 마구 저으며 – 해마 깊은 층 어디쯤엔가 저장되어 있을 지식들을 꺼내고 또 꺼내며, 모르는 것마저 아는 척하며- 지적(인 척) 대화를 장장 두어 시간이나 나눈 독서모임 이후, 배가 고팠다. 내 몸은 당장 포도당을 충전하라 아우성쳤다. 독서모임 멤버 한 분과 식사를 하러 간 자리. 깻잎에 제육볶음을 세 점이나 넣어 열반에 닿을 듯한 행복감으로 남의 살을 우물거리고 있던 내게, 그녀가 물었다. “쌤~ 저 밥 좀 묵고요.”라고 하진 못하고 나는 또 젠체하며, “자기 연민 좋죠. 글쓰기의 저 심연에 그 마음이 없으면... 글이 안 나올듯해요.”라고 어물쩍 – 에세이 안 쓰는 사람들은 모르는 세상이니 - 아무 말이나 해댔다. 그런 내게 그녀는.
“쌤, 전 자기 연민... 흐음... 글쎄요. 전 인간의 모든 행동은 선택이라 생각해요. 그 선택을 책임지고 사는 게 인생이고. 그래서 자기 연민은 그 책임에서 도망가기 좋은 핑계? 책임회피 수단 같아요. 아무튼 전 자기 연민에 부정적이에요.”
오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의문이 생겼다. 나는 부정적인가? 아닌가? 나는 자기 연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 그러시구나. 그럼 쌤은 모든 행동은 자신의 선택이니, 그것을 감당하며 사는 게 당연한데, 그 당연한 것을 왜 불평하냐. 혹은 슬프게 생각하냐는 말씀이신 거죠?”
“제가 좀 그런가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서 막 하소연하는 사람들 보면 그냥 그려려니... 해요. 살만하면서 괜히 저런다... 싶어요.”
“아... 근데... 쌤, 만약에 사이코패스 낳으면요?”
나는 이번 독서모임의 책이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었던지라, 사이코패스 아들을 낳은 엄마의 감당하기 힘든 운명, 그 삶의 무거움은 어찌 생각하느냐 물었다. 그것만큼은 선택이 아니지 않나. 태아 감별 시 사이코패스가 감지되는 것도 아니고. 만약 그것이 감지된다면 그 태아는 또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인가? 이렇듯 내 선택이 아닌데, 그 감당만큼은 처절하게 내 몫인 소설 속 주인공 엄마의 삶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녀는 가슴을 치며 ‘아이고 내 팔자야’를 되뇌일 터. 그리곤 자기 연민에 빠지곤 할 텐데.
자기 연민. 사전적-심리학적 의미는 차치하자. 통속적으로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용되곤 한다. ‘내가 속한 환경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상태 또는 나는 왜 이 모양인가 하는 자기 성격에 대한 불만족. 혹은 내가 선택했으나 이 정도인지를 몰랐을 회사나 가족에 대한 부적응에서 발생은 하였으나, 감당하기 역부족인 어떤 것들에 대해서 책임은 져야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를 경우에 느끼는 갑갑하고 슬픈 마음’이라고 나는 설명하겠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자기 연민만큼은 허용 가능할까. 어디까지는 신도 하늘도 나라님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기에 그 연민의 감정을 허용하고, 어디부터는 그대의 주체적 선택이니 연민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말라고 당사자를 질타해도 되는 것일까. 주체적이든 비주체적이든 충분히 바꿀 수 있을 텐데 혹은 도망갈 수 있을 텐데. 거기에 머물러 있으며 투정하며 버티는 것을 ‘선택’한 삶이라면, 이기적 인간은 자기 연민을 역으로 이용하는 게 아닐까. 자기 연민이라는 손바닥으로 선택과 책임이라는 뜨거운 태양을 가리면서 말이다.
나의 아이들은 시립 어린이집을 다녔다. 일반적으로 시립 어린이집은 ‘사랑반’을 운영하고 그 사랑반은 자폐아, 경계성지능, 신체장애 등이 있는 아이들로 구성된다. 아이도 아이지만, 그네들의 엄마들을 볼 때면, 나는 괜히 짜안...해지곤 했다. 저 엄마의 삶은 어떨까. 그러면서 움찔했다. 저 엄마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나는 내 안위를 확인하지는 않았던가. 그러면서 그 엄마들이 가지는 자기 연민이라면 응당 그러해도 괜찮다고 ‘우울증 약’ 정도 먹는다 하여도 ‘그래 네가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냐’고 충분히 도닥거려 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물론, 그녀들이 치고 있는 어떤 장막 같은 것이 느껴져 눈인사 정도 외에는 해 본 적도 없지만.
사이코패스, 장애아, 자폐아의 부모 등 - 어찌할 수 없는 생물학적 운명 외의 자기 연민이라면, 우리는 통상 그것을 ‘엄살’로 보는 경향성이 있다. 왜 하면 되잖아. 그냥 이혼해. 돈 없다고만 하지 말고 알바라도 해 보던가? 너는 왜 도전도 안 해 보고 못한다고 하면서 울어? 현실을 직시해 봐. 등등의 위로인 듯한 충고와 조언으로 그것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살만하면서 그냥 해 보는 투정 엄살 어린양 성숙하지 못함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참, 건조하기도 하지.
‘하소연’이라고 일갈하기엔 못내 미안했던 그 수많은 고민들을 들으며, 나는 만능 수리공 모자를 자처하여 쓰곤 했다. 그게 그렇게 힘들면 나 말고 당사자랑 이야기를 좀 진지하게 해 보라던가, 혹은 상담사를 찾아가 보라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해 보라고. 그때마다 사람들의 눈빛에선 해결책을 얻어가는 자의 산뜻함이 아니라, ‘아. 그냥 내 이야기 좀 들어만 주면 안 주겠니’라는 피곤함이 느껴졌다. 그저 이 순간 속풀이 시원하게 하고 난 후, 다시 그 굴레로 들어가서 버틸 힘을 얻어가겠다는 듯.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이 아직은 ‘살만한가 보다’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쩌면 그들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변화’로 갈 자신감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들은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는, 그것을 바꾸지 ‘못하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저런 조건들을 따지면서 자신이 그 일을 얼마나 할 수 ‘없는지’ 혹은 그것에서 빠져나오기 ‘힘든지’를 계산한다. 처음에는 핑계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몇 년씩 지속되는 자기 연민식 하소연에서 자신에 대한 깊은 불신감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할 수 없는 수많은 조건만큼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의 표현일 것이다. 결국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에게 내미는 용기 뿜뿜 현실자각 조언이란, 당사자에겐 자신감 부족을 확인하는 것으로 수렴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조언을 하지 않는다. 물론, 더 이상 잘 들어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기 빨려...)
그렇다면 꼭 그렇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현실을 자각한 후 용기를 내어 바꾸고 도전하고 이루고 성취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변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 하소연하며 속풀이 하고, 이혼한다 이혼한다 하면서 백년해로하고,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아이들 키우고. 그게 또 인생 아니야?라고 한다면, 그 또한 맞는 말이다.
나는 자기 연민을 하는 인간, 하지 않는 인간. 자기 연민에 대해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인간, 혹은 자기 연민을 혐오하는 인간,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 자기 연민에 빠져 있다가 나온 인간. 그 누구도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은 모두 자기만의 우주에서 최선을 다해 산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최악만은 피하며 그것이 차선이라도 좋고 혹은 차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택하며 삶을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방향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그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기도 하기에. 관성의 법칙처럼, 더 나은 것보다, ‘익숙하고 편한 것’을 택한다. 습관적인 것, 길들여지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과 닿아있다. 그것들은 힘이 세고, 우리를 강한 자기장으로 끌어당긴다. 나를 자기 연민에 빠뜨리곤 하는 대상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사랑해’를 유발시키는, 내 사랑들 - 엄마, 아빠, 아이들, 남편 - 이다. 나는 가장 친밀한 존재들로부터, 가장 치열하게 도망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진실인지도 의문이다. 나의 웅숭깊은 자기 연민은 한낱 치기였던가. 아닌가. 결국 남은 건,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사는 나 - 그 외엔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자기 연민에 빠진 인간을 연민하지 않는다. 다만, 부럽다. 쓰는 자로써 살고자 하는 내게 그들이 가진 그리고 내가 가진 자기 연민은 너무 좋은 ‘글감’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다지도 불만족스러운 내 인생이건만, 막상 쓰려고 하면 참 쓸 소재가 없단 말이다. 근데 자기 연민이라니. 친구에게 하소연하듯 쓰면 좋겠다. 줄줄줄 나오겠지. 거, 참. 부럽구랴.
“아이고 내 팔자야.”
일란성 남자 쌍둥이를 임신하고 육아하고 책임지며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시험관 시술하며 호르몬 부작용으로 설사와 토악질에 시달리고, 또 임신 후기에는 고위험 산모실에 입원하고 마그네슘 주사를 맞으며 비몽사몽 버티고, 제왕절개로 미숙아 2명을 출산하고, 그중 한 명은 심장에 구멍이 있어 입원을 유지해야 했고, 쌍둥이 임신 후유증으로 무릎 한쪽이 아직도 성하질 못하고, 육아하면서 시나브로 시들어간 내 체력과 정신력. 그때마다 하늘을 보며 원망하듯 했던 말. 아이고, 내 팔자야.
개구쟁이들 전담 마크하느라, 주변 지인들에게 사과하고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죄송하다고 매번 인사치레로 들고 갔던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케이크 롤케이크 과일바구니. 나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제일 싫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이 마음. ‘야 나 이 동네 제일 싫어. 여기 아줌마들 다 미친년들이야. 지 새끼밖에 몰라.’ 이곳이 싫으니 어디 빌라라도 좋으니 나 살던 서울 어디로 이사 가자고 졸라도 안 되던 우리의 경제 상황. 아이고 내 팔자야.
신? 아아, 그래 신. 그래 내가 신 만나면 딱 하나 할 게 있어. 그 자의 멱살을 붙잡고 물어볼 거야.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냐고. 나를 얼마나 좋은데 쓰시려고 이렇게까지 하시느냐고.
“저기요, GOD. 나 살면서 10원 한 장 남의 것 몰래 써 본 적 없... 진 않고, 그래, 내 자취시절 회사 탕비실에서 맥심커피믹스 몇 개 집으로 가져간 적이 있긴 있네. 아 또... 뭐가 있지. 아 그래 음식물쓰레기 넣다가 쓰레기 무게에 휩쓸려 봉지째 들어간 적도 있네. 또... 아... 뭐 그 정도예요. 나, 나름 바르게 산다고 살았다고요. 근데 도대체 왜 이러세요?”
억울하다. 아니, 억울했다.
내 글쓰기의 시작은, 딱 이 마음이었다. 어디다가 쓰지 않으면 안 되겠던 그 마음. 자기 연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자 했던 마음. 브런치는 곧 내 마음의 대나무숲이자, 상담사이자 가장 친한 친구의 역할을 해 주었다.
나는 왜 늦은 나이에 이 동네에 사는 저 자랑 결혼을 하여 아이 낳겠다고 시험관 시술을 해서 쌍둥이를 낳아 동네 사과 로봇으로 살아야 하는가. 내 팔자 내가 꼬았던 것일까. 나의 이 구구절절한 마음을 아는 나의 하소연받이, 친언니 박OO 여사님은 내게 일갈했다.
“니, 뭐 맨날 죽겠다 죽겠다 카믄서, 그 이야기 써가(써서) 책도 내고 마 글쓰기 강의도 하고 마. 잘 된 거 아이가.”
그러게. 그런데 글을 지속적으로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놓지 못하는구나. 나는 나를 좀 좋아하는구나. 내가 나를 아끼지 못했다면, 이 지겨운 작업을 계속하지 못했겠구나.
반쯤 녹은 정신과 흐느적거리는 육체, 한 줄기 빛이라곤 들지 않아서 이 연민의 감정이 쉽게 증발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시는 분들에게, 감히 ‘그것’을 써 보시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일까 아닐까. 나에겐 그것을 권할 용기도 권리도 오지랖도 없다. 다만, 나는 쓴다. 누가 먼저 쓰기 전에.
나에게 자기 연민이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용법이다. 그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쓴다. 쓰면서 타자화된 나의 고민은, 삶은, 일상은 좀 간지럽다. 많이 느끼하고 어떨 때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쓰면서 또 한 고개 넘어간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부터 일상을 살면서 느낀 이야기들을 쓰려 한다. 거 참. 재밌기도 하겠지. 아이고, 내 팔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