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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Aug 20. 2024

[일상 이야기] 가계부를 쓰는 삶이란

조금씩 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짧고 중요한 시간

가계부를 쓴다.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겠지만. 손으로 쓴다. 요즘이 무슨 시대인가? 앱의 시대다! 카드를 쓰면 휴대폰으로 사용 관련 문자가 오고, 그 문자를 자동으로 등록해주는 앱들이 가득하다. 나는 그 세계에서 동떨어져, 일일이 가계부를 손으로 적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남들이 보면 20년 전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다가 손으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을까? 아마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엄마가 아닐까 한다. 아주 어린 시절, 엄마는 가계부를 썼다. 이런저런 영수증과 메모들과 종이가 가득했는데, 바깥쪽은 붉은 색인 가계부를 한 쪽 한 쪽 넘겨가며 칸칸이 숫자를 채웠다. 어른들이 쓰는 숫자는 내가 쓰는 것보다 훨씬 세련되고 예뻐 보였다. 숫자로 가득한, 때론 엄마의 글씨로 가득한 가계부는 차라리 성경 같았다.


내가 휴대폰을 자주 바꾼 것도 한 몫을 했다. 나는 이따금씩 옛날 휴대폰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2G폰으로 바꿔 썼었다. 연락처를 손으로 하나하나 옮겨야 했지만, 괜찮았다. 스마트폰 중독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업무상의 문제가 늘어나서, 결국 구형 스마트폰으로 옮겼고, 거기서 또 다시 어르신들이나 쓸 법한 폴더폰으로, 다시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8년 동안이나 쓰던 가계부 앱 데이터를 거의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이제껏 자동등록된 가계부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가계부를 제대로 쓴 적이 없구나.  달에 내가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돈 관리에 가계부를 추천하는 사람 대다수가, 가계부는 "예산 기획" 단계에 활용하는 것이라고들 했다. 나는 카테고리별로 나눠진 소비 금액을 보며, 그냥 일상처럼 그렇구나, 라고 넘겨버렸을 뿐이다.


하지만 돈 관리가 필요해질 날은 온다.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썼다가 크게 궁지에 몰린 이후, 나는 대체 내가 얼마나 돈을 쓰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쓰는지가 아니었다. '어떻게'였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다시 가계부 쓰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마침 중고장터에서 가계부를 싼값에 구입해서 쓸 수 있었다.


가계부는 정말 내 취향이었다. 카테고리별로 출금 내역을 적는 것이 재미있었다. 요즘은 쉽게 가계부를 적기 위해 상세 내역보다 카테고리별로 얼마씩 적는 것도 한다는데, 내겐 그게 맞지 않았다. 어느 카테고리에 얼마나 돈을 썼는지 확인하는 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어느 카테고리에 적을지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같은 식사라도, 점심 식사는 식비로 친구와 함께 먹은 것은 교제비로 넣어야 했으니까.


 종이 가계부는 자동으로 숫자를 계산해주지 않아서, 일일이 산기를 두드려가며 금액을 맞춰야 했다. 그러면서 노트에 써진 단순한 숫자들이 힘을 가진 돈으로 내게 다가왔다. 거기다, 머리 아프게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돈을 쓰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은 매력적이었다. 그래, 소비를 줄이기엔 최적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계부를 쓰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걸 안 썼다면, 나는 지금 돈계산 한다고 이렇게 골머리를 앓지 않았을텐데, 하고. 그리고 "예산"을 짜서 생활하는 버릇을 들이다 보니, 점차적으로 내 생활 습관이 바로잡히기도 했다. 버릇처럼 자잘한 돈을 들여 자잘하게 뭔가를 사들이고 버리는 습관은 가계부를 쓰면서 많이 고칠 수 있었다. 정말 잘 된 일이다.


지금은 종이 가계부에 정리 후, 네이버 가계부에 다시 적는 식으로 2중 가계부를 제작하고 있다. 내 가계부는 6개월씩 쓰는 디자인이라, 기존의 데이터를 꾸준히 누적하기 어려워 떠올린 아이디어다. 이중으로 적기 귀찮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쓰지 않으면, 적을 일이 없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다. 그러니 받아들일 수밖에.


가계부가 점차 내 생활 한가운데 자리잡아가고 있다. 내 호주머니가 아주 조금씩 풍족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 습관이 지속되어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두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가계부 쓰는 것은 정말 재미있다. 마치 일기를 쓰듯,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재정적으로.


그러니 모두 가계부를 씁시다.

즐겁고, 신나게,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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