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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승연 Nov 28. 2023

[특수교육 A to Z] 입학 준비

아이를 위해 나 먼저 행복해질 마음의 준비

오늘은 제도를 전달하는 것보다 먼저 아이를 학교에 보낸 '선배맘(?)'으로 경험을 나누는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발달장애가 있는 내 아이에게 어떤 교육(통합교육 vs. 특수학교)을 받게 할지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없이 고민하셨죠? 수고 많으셨어요. 토닥토닥.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게만 느껴질 거예요. 하지만 한 단계씩 차근차근 가다 보면 우리 아이들의 '즐거운 학교생활'이란 목표에 어느덧 도달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저 역시 그 목표를 향해 천천히, 때론 전진했다가 때론 후퇴도 하면서 그렇게 아주 천천히 나아가는 중입니다.     

입학 유예     


많은 발달장애아의 부모들이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유예를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발달이 느린 내 아이,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을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아들은 착석 시간이 3분을 넘지 못했고요. 말을 한 마디도 못 하는 데다 배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등교해야 했거든요. 

"이대로는 안 돼"라며 불안한 마음으로 유예를 고민하는데 유치원 특수교사의 조언을 듣고 유예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당시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1년이란 시간 동안 '어떤 훈련'에 집중하면 눈에 띄는 발전 가능성이 있을 때 유예를 권한다고요. 착석이면 착석, 학습이면 학습, 배변 훈련이나 정리 정돈 등 아이가 유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들은 장애 정도가 중증이라 1년의 시간을 유치원에서 더 보내도 눈에 띌만한 어떤 변화가 있진 않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의견을 주셨어요. 그럴 바엔 제 나이에 맞게 학교에 다니는 게 더 낫다고요.     


지금 제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인데요. 아들 경우엔 입학을 유예하지 않은 게 참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공격행동'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거든요(흔히 공격행동 양상으로 나타나는 '문제행동' '도전적 행동'이라 불리는 사안에 대해선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녀석이 쑥쑥 크는 겁니다. 벌써 183cm인데 아직도 더 클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요. 

만약 아들이 1년 유예하고 친구들보다 한 살 더 많은 형으로 있었다면 친구와의 관계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더 큰 문제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아요. '덩치도 큰 형이…'라는 점이 아들에겐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을 듯합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큽니다. 초등학생일 땐 학년에 따른 신체 발달이 무시하지 못할 요소더라고요.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까지 충분히 한 다음 유예 여부를 결정하시면 좋겠습니다.     


인지보단 눈치


유예를 하든 하지 않든 일단 입학이 결정되고 나면 그때부터 또 새로운 걱정이 올라옵니다. 우선 '착석'이라는 가장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되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많은 발달장애인이 인지발달이 느린 대신 눈치는 또 기가 막히게 발달합니다. 인지 대신 눈치, 이것이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습득한 생존기술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아들은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 3분 착석도 안 되던 아이였어요. 유치원에선 착석이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거든요. 선생님과 친구들의 분위기도 호의적이었고 의자 착석이 힘들면 따뜻한 온돌바닥에 누워버리면 그만이었거든요.     


이랬던 녀석이 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3월,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난 후 40분 수업 시간에 온전히 착석해 앉아있는 아들 모습을 보게 됐어요. 이해하지 못할 수업 내용에 힘들고 괴로워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버릴지언정 그 시간은 어떻게든 앉아서 버텨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거예요.     


분위기가 그랬거든요. 친구들 모두가 책상 앞에 앉아있었거든요. 학교라는 공간은 그래야만 하는 곳이었거든요. 

학기 초 40분 착석이 힘들긴 비장애 1학년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얘도 일어나고, 쟤도 일어나려 해요. 그때마다 담임이 얘도 지도하고, 쟤도 지도하고, 아들도 지도합니다.     


처음엔 아들도 반항을 했겠지만 인지 대신 눈치가 발달한 녀석은 어느 순간 눈치로 공간의 분위기에 '적응'하게 됩니다. 학교에선 착석이 '국룰'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로 이런 것(사회에서 통용되는 사회적 규범과 규칙)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닙니다.     


학습 발달 여부     


자녀의 학교 입학을 앞둔 영유아기 부모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한가득 쏟아내곤 합니다.     


"우리 아이가 아직 한글을 못 뗐는데요. 유예하지 않아도 될까요?"

"우리 아이가 숫자를 10까지밖에 셀 줄 몰라요. 그래도 될까요?"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학령기와 성인기 부모님이 있다면 어떤 답변을 해주시겠어요? 아마 제 대답과 같을 겁니다. 한글과 숫자를 어느 정도까지 익혔느냐는 학교생활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요.     


왜냐면요.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발달장애인)가 된 이상 반 친구들과의 학습 격차는 날이 갈수록 더 크게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에요. 애초에 또래 집단을 비교 대상으로 놓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한글과 숫자를 익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만큼 수업 이해도가 높아져 좋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발달장애인은 '각자의 속도'에 맞게 성장해 갑니다. 그 속도는 같은 장애라 해도 천차만별로 다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특수교육대상자는 개별화교육회의(IEP)를 통해 각자의 발달 상황에 맞는 교육을 받습니다.     


"아이가 이런 정도의 학습 발달은 보여야 할 텐데…"라는 기준은 어른인 우리들 관점입니다. 

학습 발달이 느리지 않았다면 애초에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특수교육대상자로 신청해 놓고 학습 발달에서 비장애 친구들과 같아지길 바란다면 그건 노벨 물리학상 받은 석학들이 모여 저에게 "너는 왜 양자역학의 부조리를 설명할 수 없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아요.     


마음의 준비     


착석이 안 되어도 괜찮다, 한글과 숫자를 몰라도 괜찮다고 하면 아이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무런 준비를 안 해도 되는 걸까요?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일상생활 자조 기술은 미리미리 연습해 두면 좋을 겁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혼자서 운동화를 실내화로 갈아신고 신발장에 넣는 것이라든가, 겉옷을 혼자서 입고 벗는 것이라든가, 책가방을 벗어 책상 옆 걸이에 걸어놓는다던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옷을 야무지게 단속해서 입는다던가, 밥을 혼자 먹는다든가 하는 일 말입니다.     


제 아들은 기능발달상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한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기저귀를 완전히 졸업했습니다. 그것이 '아들의 속도'였어요). 하지만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 특수교사와 실무사가 아들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고 도우면서 아들도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이 방법도 괜찮고, 저 방법도 괜찮아요. 하지만 준비는 필요합니다. 

바로 마음의 준비요.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그것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게 없습니다.     


어떤 마음의 준비냐면요. 사람들과 마주할 마음의 준비요. 불안감을 덜어낼 마음의 준비요. 아이를 위해 나 먼저 행복해지고 말겠다는 마음의 준비요. 

내 마음에 평안과 여유가 있어야만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타인(교사 및 학교 구성원, 다른 학부모)과의 관계에서 왜곡된 반응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건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비장애 학생의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굳이 마음의 용기까지 내진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 자연스러운 일마저도 용기를 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위축돼 있거든요. 

불안감이 이만큼 치솟아 있거든요.     


참 신기한 게 뭐냐면요. 부모 마음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겁니다. 

아이도 부모와 같은 감정을 지닌 채 학교생활에 임하게 돼요. 

그걸 교사와 반 친구들이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아이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부모의 마음 먼저 돌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학교생활에 참여


아들이 어렸을 때 '선배맘'들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아들의 학교생활에 적극 참여하라고요. 

반 대표도 하고, 학부모회도 하고, 학교 운영위원도 하라고요. 


겉으로는 "네"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생각했죠. 잔뜩 위축된 채 살고 있는데 무슨 용기로 그런 일을 하냐고요. 그런데 필요하더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땐(특히 저학년) 부모가 학교 일에 참여적이고 다른 학부모와의 관계에도 적극적일 때 아이의 학교생활이나 친구 관계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는 부모 활동 여부와 아이의 학교생활은 점점 연결점이 없어집니다.     


용기 내서 반 대표에 손들어 보세요(요즘은 반 대표를 뽑지 않는 학교도 많다고 들어서 어떨지 모르겠어요). 


비장애 학생 엄마들과의 티타임, 치맥모임에도 참여하세요. 

아이가 특수학교에 다닌다면 반 엄마들끼리 모이는 자리를 만드세요. 

부모들끼리 관계 형성이 잘 되어 있으면 학교생활에서 내 아이로 인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반 구성원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데 도움을 받습니다.     


학부모회나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만약 아이가 통합교육을 받는다면 크고 작은 학교 일에서 특수교육대상자가 배제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거예요. 

소수자이기 때문에 외로운 섬처럼 혼자 애쓰는 특수교사에게도 힘을 보탤 수 있을 거고요.     


만약 아이가 특수학교에 입학했다면 학부모회나 운영위원회 활동은 조금 더 기다렸다 하는 게 어떨까하는 의견을 내봅니다. 

학부모회나 운영위원회 활동의 목적은 '모든 학생'을 위해서 해야 하는데 아직 아이가 어릴 때는 전체 학생(초등을 넘어 중고등과 전공과까지)에 대한 이해도가 그리 높지 않거든요.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체 학생과 학교 운영에 대한 이해가 높아집니다.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싶을 때 적극적으로 활동해주세요.     


스트레스 관리     


마지막으로 아이가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면 지금부터 서서히 치료 스케줄을 조정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을 권합니다.     


학교생활은 유치원 생활과는 다릅니다. 규칙과 규율도 엄격해지고 수업 시간도 길어요. 

아이가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유치원 시절과는 차원이 다를 거예요. 정신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유아기 때 그랬던 것처럼 하교 후 치료실 뺑뺑이를 빽빽하게 돌리면 아이는 어느 순간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학교생활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아이의 스트레스 관리'입니다. 


말로 유창하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전달하고 풀어내지 못하는 특수교육대상자는 몸으로, 행동으로, 그 스트레스를 표출하기 시작할 거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반 친구들과 교사가 떠안게 될 거예요. 

당연히 그 반작용은 내 아이에게로 돌아와 힘든 학교생활이 이어질 테고요.     


아마 영유아기 때는 무조건 많은 치료를 받으면 좋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치료실을 마다하지 않고 다녔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제부턴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치료가 무엇일지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해 주세요. 그런 다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스케줄을 재조정해 주세요.     


그리고 하교 후 집에 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스트레스를 집에서 다 풀고 다음 날 산뜻한 마음으로 등교할 수 있도록 힘차게 놀아 주세요. 

학교에서의 스트레스를 집에서 풀기는커녕 오히려 집에서 스트레스가 더 쌓인 채 다음날 학교에 가지 않을 수 있도록 살펴 주세요.     


우리와 똑같습니다. 퇴근하면 집에서 늘어진 자세로 푹 쉬고 싶은데 쉬지도 못하고 집안일에 육아에 남은 업무 잔업까지 매일 소화해야 하는 일상이 이어진다면 언젠가 번아웃에 폭발해 버리고 말겠죠.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학교생활이 시작되면 정작 어려운 건 학습이 아닌 관계인 경우가 더 많아집니다. 

성인기가 되면 그때는 부딪히는 모든 어려움이 인지 때문이 아니라 관계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되고요.     


우리가 그렇듯 우리 아이들도 마음이 안정되고 여유가 있을 때 관계에서도 더 편안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 부분을 항상 염두에 두면 부모로서 아이의 학교생활을 지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위 내용은 오마이뉴스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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