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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미 Jan 03. 2019

창고 로망

오래된 공간에 상업성과 모던한 디자인을 입히다.

나는 창고나 벽돌로 된 옛날 공장을 만나면 꼭 사진을 찍게 된다. 오래된 것에 대한 끌림이 있다. 취향이 이렇다 보니 어디 여행을 다녀와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면 주로 모던한 풍경보다는 낡은 건물이나 벽돌, 한쪽이 망가진 콘크리트 벽, 노출 벽면 위로 올라간 세월의 흔적들이 사진 폴더에 한 가득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전혀 다른 새로운 용처로 재해석하는 케이스를 만나면 몹시 이끌린다. 이렇게 오래된 창고에 대한 로망은 확실히 나만의 로망은 아닌가 보다. 이미 전 세계적인 트렌드였으니 말이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로프트 스타일', ' 노출 콘크리트'라는 키워드와 '재해석', '재탄생',' 도시 재생', '탈바꿈'이라는 말로 이미 많은 케이스를 접해보았을 것이다.



향신료 창고가 부띠끄 호텔로



싱가포르 강변에 향신료 창고를 개조한 '웨어하우스 호텔'이 2017년에 오픈하였다. 말 그대로, 창고(웨어하우스)를 그대로 개조한 호텔이다. 싱가포르는 17세기 조호르 왕조부터 영국이 해협식민지의 수도로 삼고 총독 관저를 두었던 곳이다.  당시 서양에서 했던 향신료를 인도등지에서  실어나르기 위해 싱가포르를 무역거점으로 삼았다. 배가 드나들 수 있고 물건을 내리고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만들었다. 그렇게 점차 도심 안쪽으로 강을 따라 여러 창고와 도매거래상이 생겨났다.

이렇게 만들어진 향신료 창고중 하나를 최근 디자인 회사 'Asylum and Zarch Collaboratives'에서 고급 부띠끄 호텔로 개조하였다. 이 호텔은 2017년에 오픈하고 바로 이듬해 2018년 싱가포르 대통령 디자인 어워드와 싱가포르 관광 대상을 받았다.


국내에도 옛 공장, 정비소, 창고, 구 상업지구와 같은 쇠퇴한 산업 지구를 다른 용도로 바꾼 사례가 많다. 주로 서울시나 지역 자지 치구 주도로 이루어지는 정비 사업인데 그중에서는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몇 년 지나고 보면 미비하게 운영되는 곳도 아쉽지만 자주 보인다. 주로 공익성을 기준으로 하다 보면 상업적인 측면에서 유동인구 유입과 지속적인 경제 흐름이 기대만큼 이어지지 않는 점이 그 이유하고 생각한다.

몇년전 안경브랜드 젠틀몬스터의 새로운 선글라스 컬렉션쇼를 보기 위해 아주 오래된 듯한 영등포의 밀가루 공장을 힘들게 찾아갔던 기억이 있는데 이 제분공장도 서울시의 주도로 새로운 문화 및 창작자 공간으로 리모델링 하고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이 향신료 창고도 호텔이 아닌 전시관이나 다른 용처로도 검토되었겠지만 입지적인 장점과 건축학적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호텔'로 전환한 점은 잘한 것 같다.


향신료 창고를 개조한 싱가포르의 '웨어하우스 호텔'
'Warehouse'  호텔 내 레스토랑


우선 창고의 높은 천고는 호텔 로비, 프런트 공간에서 탁 트인 개방감을 준다. 이 로비에서는 평상시에는 투숙객을 맞는 프런트 공간이나, 카페, 바(Bar) 등으로 활용된다. 필요할 때에는 큰 행사를 할 수 있는 개방형 공간이다.

또한 이 창고는 원래 쉬운 하역과 물류 이동을 위해 싱가포르 강변에 바로 위치해 있다. 호텔 객실이 37개로 많지는 않지만 호텔 객실에서 바로 강변 풍경을 볼 수도 있고 야외 수영장도 바로 리버뷰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원래 창고의 환풍 시설이나 세 개 창고로 연결된 건물 외곽 구조를 그대로 '웨어하우스 호텔'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살렸다. 객실 또한 대형 호텔에 비해 적기 때문에 호텔 레스토랑은 어느정도 조용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활용한 요소들을 펼쳐보면 이렇다.
Before(주어진 요소)=>After(장점으로 승화).

창고=>기억하기 쉬운 호텔 이름으로 사용

강가 위치 => River view 호텔 전망

낡은 건물=> 오래된 역사적 건물의 헤리티지 유지

높은 천정 => 개방감 & 대형 홀

벽돌 => 빈티지 디자인

고전적인 환풍 시설 => 빈티지 디자인 요소

37개의 방 => 희소성 & Prestige

Renewal=>성공적인 건축 & 인테리어 사례로 수상 및 홍보 효과

향신료 창고 스토리=> 독특한 스토리텔링



(왼쪽)리모델링 하기 전 (오른쪽)희색 외관의 깔끔한 호텔

해군군함 정비소에서 실리콘 밸리 소프트웨어 회사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미국 해군의 잠수함과 군함을 정비하던 조선소 공간이 Gusto(구스토)라는 소프트웨어 회사 사무실로 바뀌었다. 이 회사는 현재 6만 개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클라우드 기반 HR, 급여, 직원 복지 플랫폼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가 들어서기 전 피어 70(Pier70)에서는 실리콘벨리의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 콘퍼런스나 테크 전시를 열기도 했었다. 구스토에서 이 공간을 본격적으로 전체 임대하면서 일하기 새로운 근무 환경을 구축하였다. 미국 문화에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신발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다음 집 거실처럼 오가는 사무실처럼 바꾸었다고 한다.


허름한 지역이 가장 트렌디한 곳으로 떠 오른 사례는 많다. 뉴욕 맨해튼에서 핫한 곳으로 꼽히는 곳, 트패킹(Meatpacking District)도 그중 하나이다. 미트패킹은 허드슨 리버, 첼시마켓, 뉴욕 하이라인 등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라 풍경도 좋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멋진 부띠끄 호텔, 레스토랑, 클럽과 다양한 패션 브랜드 매장 등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나는 예전에 패션 잡지사에서 근무할 때 뉴욕 패션위크 출장 차 미트패킹에 있는 스탠더드 호텔에 투숙하며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뉴욕 미트패킹에 위치한 스탠더드 호텔(The Standard Hotel)
정육 공장이 즐비했던 미트패킹 풍경

사실 미트패킹은 사실 말 그대로 각종 고기(meat)를 포장(packing)하여 유통하던 동네였다. 아직도 미트 패킹 산업이 일부 남아 있어서 내가 머물렀던 호텔에서도 아침 일찍부터 육가공 제품들을 실어 나르던 큰 트럭들이 바삐 움직이는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뉴욕의 트렌드를 이끄는 윌리엄스버그



맨해튼의 높은 물가를 피해 예술가들이 모여 살며 뜬 동네도 또 있다. 브루클린. 허드슨바로 건너 브루클린에 모여들면서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는 최근 10년 사이 핫한 브런치, 카페, 레스토랑, 펍, 호텔, 갤러리가 많은 곳으로 거듭났다. 집값이 덜 비싼 덕에 다양한 이민자들이 살면서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도 비슷하다. 지금도 물론 좋지만 예전에 한창 가로수길이 대세이고 서울숲이 막 조성될 즈음에 다음 핫한 곳이 어딘지가 궁금했었다. 물론 당시에 이태원 경리단이나 해방촌도 있었지만, 향후 10년 안에 성수동 주변이 뜰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패션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들이 임대료가 적은 곳으로 옮겨 갈 대안으로 오래된 창고, 낡은 공장, 자동차 정비소가 많은 성수, 뚝섬, 서울숲 주변이 여러모로 괜찮았기 때문이다. 아마 나도 돈이 있었다면 뭐든지 했겠지만 직장인인지라 큰돈이 없어 한 평이라도 사지는 못했다. 고백하건대 그 당시직접 발품을 팔며 낡고 허름한 정비소 건물들이나 폐품 재활용센터들을 보러다니긴 했다. 내 눈에는 뉴욕 로프트 스타일처럼 바꿀 수 있는 멋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먼지 날리고 지게차가 돌아다니다보니 걸어가기 험한 그 자리들이 보이는 것 보다는 훨씬 비쌌다. 그곳은 이미 서울의 한복판이었기 때문이었.


인싸들의 성지가 될 성수동


최근 성수동 대림창고는 50년 이상 정미소와 제철 창고로 운영되던 곳을 설치미술가가 매입하여 문화 전시관, 카페, 레스토랑으로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성수동 피어 59 스튜디오, 어반 소스 등에서는 다양한 문화 공연이나 패션&뷰티 브랜드 행사를 열고 있다. 또한 카페 어니언과 같이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커피숍으로 운영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하이엔드 브랜드가 들어서고 있고 들어설 예정이다. 새로운 서울의 트렌드가 만들어지고있는 성수동의 변화가 기대된다.


성수동 대림창고 카페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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