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쓸 글은 '멀티앑가즘'스러운 글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내가 얻은 인사이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좀 참신하다고 생각해서 써보기로 했다. '역사의 흐름'과 '투자방식'을 내 삶의 철학과 함께 생각해본 글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첫 번째 책은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온 권은중의 '음식 경제사'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이나 퇴근 직전, 오전 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책을 읽는 나를 본 본부장님께서 재밌는 책이니 읽어보라며 빌려주신 책이었다. '킬링타임 겸 교양서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 책의 한 구절을 통해 내 인생을 반추해 보게 됐다.
밀과 쌀 그리고 옥수수, 주식의 차이가 동서양의 사상적 차이까지 만들어냈을지 모른다.
유럽 사람들은 밀을 먹었고, 아시아인들은 쌀을 먹었다. 아시아에서도 기근은 늘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쌀이 밀보다 생산력이 높은 식량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럽 사람들보다는 배를 덜 곯았다고 한다. 늘 배가 고팠던 유럽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굶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무역과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식량과 자원을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어 굶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밀을 주식으로 삼아 지배층이든 피지배층이든 모두가 배고팠던 유럽 사람들과 달리, 쌀을 선택한 아시아는 적어도 지배층은 배부를 수 있는 상태였다. 모두가 배고팠기 때문에 중앙집권적일 수 없었고, 그래서 설령 왕이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야 했다. 강력한 왕권이 형성될 수 있었던 아시아에서는 상명하달 같은 문화가 생겨난 것이 당연해 보인다.
반면,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던 남미. 멸망한 아즈텍, 잉카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이 구절이 내가 이 책과 조우하게 된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 구절은 아래와 같다.
95p.
유라시아 인들이 쇠칼을 만들어 서로의 땅을 빼앗으려고 혈안일 때 농업생산력이 높은 아즈텍인과 잉카인은 인신 공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왜 이들은 인신 공양에 빠져있었을까? 학자들은 옥수수의 기적적인 생산 조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에는 '무식한 아즈텍 놈들. 그렇게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자원에, 심지어 생산이 어렵지도 않은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아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면서, 거기서 남는 잉여에너지를 인신공양 같은 가당치도 않은 것에 쓰다니'라며 한심해했다. '머리 나쁜 놈들은 풍요를 누리며 배부르고 행복하게 살 자격이 없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내가 아즈텍인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활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던 대학 동기 S는 '타향살이가 너무너무 외로워서 늘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싶고 남자 친구가 없는 상황이 너무 불안해'라고 했었다. 그 친구는 대학에 오기 전에도 상냥하고 배려를 잘하는 친구였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늘 다정했고, 관심 가는 남자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표현도 하곤 했다. 반면 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본가도 서울이라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날 일이 없었다. '친구도 애인도 별로 필요 없어. 나는 내 할 일만 잘하면 돼'라며 주변에 맞출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고 나 편할 대로 했던 것 같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쉬울 것이 없는 삶'이었으니까.
돈이 모자라는 것도, 외로운 것도, 우울한 것도 아니었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물질적으로, 심리적으로 풍족하지 않다고 느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회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아하지도 않지만 잘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딱히 잘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즈텍 사람들이 '우리는 배고프지 않으니까, 옥수수는 노동집약적이지 않아서 여자도, 아이도 쉽게 심을 수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인신공양'을 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나는 아쉬울 것이 없으니까, 외로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라고 생각하며 나에게 넘치는 옥수수와 같은 자원을 인신공양 같은 쓸데없는 것에만 써가며 감사한 풍요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좋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의 삶의 방식이 눈치를 보는 것보다 '쿨하다'며 좋은 것인 양 말하지만, 사실 나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구별에 태어난 이상 이 우주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옥수수가 아닌 밀과 쌀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늘 배고픔에 시달렸지만, 그 배고픔 안에서 다양한 사상과 종교, 예술과 철학들이 태어났다. 결국 모든 뿌리는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덜 배고플까,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까?'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도 그렇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내게 주어진 옥수수가 많았어!'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 감사한 옥수수들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써야 내가 더 행복해질까, 그리고 그걸 통해 내가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아야 할 차례다. 나는 아즈텍 사람들처럼 풍요의 축복을 기반으로 인신공양을 하다가 결국 멸망해버리는 나라의 왕으로 살고 싶지 않다.
두 번째 책은 원앤원북스에서 나온 염상훈의 '나의 첫 금리공부'라는 책이었다. 올여름, 내 2년짜리 청년 내일 채움이 만기 되어서 목돈이 생겼고, 부모님께서 내게 그 돈으로 채권을 사볼 것을 권유하셨었다. 엄마와 함께 증권사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채권을 사려고 하면 채권이 뭔지는 알아야겠다' 싶어 금융의 기본원리와 상식에 대한 책을 몇 권 구매해서 읽어보았는데, 그중 가장 처음 읽었던 책이다.
책의 서평 중 '주식시장보다 채권시장의 규모가 더 큰데도 주식 입문서는 많은 반면 채권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이 책은 채권에 대해서 자세히 다뤄놓았다'라는 말을 보고 구입했던 책이었다. 채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주식과 보험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내가 브런치에 쓰고 싶은 내용은 이 책에서 얻은 금융상식에 대한 요약이 아니다.
144p.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험과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전체 소득 중 상당 부분을 안전자산인 채권에 간접적으로(연금과 보험이라는 수단을 한 번 거쳐서) 투자하고 있다. 자신의 자산을 배분할 때 이런 연금자산과 보험자산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위험자산, 고령화에 대한 부담이 없는 나라들에 대한 주식투자 비중을 일정 부분 가져가면서 내 자산을 다변화시켜야 한다. 당신은 이미 채권투자 비중이 높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기본적으로 안정과 안전을 매우 중시하는 투자성향을 가진 사람이며, 투자성향뿐 아니라 평소 생활 습관이나 가치관도 그러하다. 예상외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재밌는 것을 찾는 것보다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익숙한 것을 하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 편이다.
딱히 낯을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어딘가에 놀러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잘 수 없는 등, 상황이 바뀌어서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물론 거기에서 즐거움이나 행복감이 올 수도 있지만, 그런 긍정적인 기분들이 내가 느끼는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보다 훨씬 작아서, 아무렇지 않게 포기하는 편이다. 예를 들자면, '연애하면서 느낄 행복감에 대한 기대'보다 '스트레스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서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는 것 자체에 리스크가 느껴지고, 이 때문에 아무리 멋진 사람을 봐도 호감을 느끼기가 쉽지가 않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늘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하더라도 늘 최선을 다하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내가 최선을 다한들 성과가 나오기가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예를 들었던 연애(=사람 관계)의 경우, 변수가 '나의 의지'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의 의지'도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자꾸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그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에만 해도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에, 다른 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성과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빼앗긴다.
그런데 저 문구를 읽고서 약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저 문구에서 '이미 기본적으로 보험과 국민연금에 가입했다'는 것은, 이미 당사자가 안전자산에 자산을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 또한 지금까지 이미 스스로 최선을 다하며(=어느 정도 자기 통제를 하며 안전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딱히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내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것처럼, 간접적으로도 안정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가가 저 말을 한 의도는 '이미 당신의 자산 중 안전자산(채권)에 투자되는 것이 많으니, 그것을 고려해서 위험자산에 투자를 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것을 안전자산에 투자하라'거나 '전부 다 위험자산에 몰빵 해라, 인생은 한방!'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형태를 다변화하여 밸런스를 맞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삶도 그렇지 않을까? 이미 나는 안전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너무 좋은 태도였다고 생각하지만, 즉흥적으로 누군가를 만난 대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때 머리만 아파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늘 계획된 것들에 어긋나지 않게 착실히 지내왔으니, 오늘은 조금 돌발상황이 일어난 대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자'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이 '그냥 궁금해서', '그냥 재밌을 거 같으니까' 같은 이유로 쉽게 시작하는 일들이 많지 않았다. 이를테면, '그냥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호감 가니까 친하게 지내볼까?' 따위의 마음을 먹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설령 내가 마음을 쓰고 단순히 '궁금해서' 해본 행동이 돌발상황을 일으켜 상처 받을 만한 일이 되거나, 곤란한 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적당하게' 위험자산에 투자한다면 손실이 나더라도 속이 조금 쓰릴지언정 길거리로 나앉거나 폭삭 망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원래 일본어 학원가는 날인데 갑작스레 휴강하게 돼서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쓸 수 있었다.. 계속 쓰고 싶었는데, 글을 쓸 수 있어서 기뻤던 하루의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