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arlett Jang Jan 16. 2024

유학 대신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누구나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이 남는다. 


 20여 년 전, 

의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패션디자이너로 인지도를 쌓으려면 국내보다는 해외유학을 가서 실력과 경력을 쌓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어 있었고 많은 선후배들이 유학을 떠났다.

겨우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냈던 나는 그들처럼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졸업 후 불황과 맞물려 취업조차 힘들었고, 여기저기 일하다가 아예 박봉과 불투명한 미래에 전공을 살려 취업하려는 마음을 접고 돈을 벌기 위해 학원 수학강사를 하였다.

몇 년간 경력을 쌓아갔지만 나이가 들수록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전공분야가 아니었기에 일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져 갔다.


 30세가 되던 해.

인생을 전환시킬 기회라고 생각하고 막바지 나이로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라 큰 변화가 필요했고,

오래전부터 외국에서 공부하는 생활을 막연히 동경하였기에 다른 방법으로나마 경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앞서 써왔던 글에서도 말하였듯 그해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전 세계가 경제위기를 맞았다.

세상물정도 모른 채 여전히 안전하고 살기 좋다고 믿었던 호주에서도 당시 매일 여기저기에서 범죄가 발생하였다.

그런 무서운 일들은 뉴스에만 나오는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고 처음 일주일간은 마치 시드니에 여행을 온 관광객처럼 한국에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음껏 인생을 향유하며 즐겼다.

그러나 달콤한 자유는 10일도 채 되지 못했다.



 얼마 후 대도시의 대로변 인근에서 저녁 7시라는 이른 시간임에도 나는 세명의 건장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나의 지갑, 폰, 여권, 카메라가 든 가방을 뺏겼고 미친 듯이 그들을 잡기 위하여 간도 크게 뒤따라 쫓아갔다. 물론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여권만이라도 다시 달라는 말을 하며 뛰어갔다.

결론적으로는 넘어지는 바람에 그들을 놓쳤고 내 비명을 듣고 뛰어나온 호주 시민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고 우범지대로 도망간 끝까지 그들을 따라갔다면 더 험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일을 겪은 후 몇 개월간은 트라우마가 생겨 외국인이 그냥 갑자기 달려오거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누군가 뛰어들어와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평정을 되찾았지만 그 이후에도 나의 고난은 끊이지 않았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룸을 셰어 했었는데 당시 호주 정부가 단속을 심하게 해서 거의 한 달마다 주인이 걸렸다고 나가라고 말해서 계속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그나마 날치기 전 몇 개월치 등록한 랭귀지 스쿨을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었고 최대한 식비를 아끼려고 오전에는 토스트를 구워 먹고 점심에도 토스트 하나를 도시락으로 싸다녔다. 물가가 너무 비싸서 매일 점심을 사 먹으면 호주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의 불행과 사고는 없을 것이라 믿었고 그렇기에 최소한 2년 동안은 버티면서 한창 유행이던 테솔자격증까지 따고 귀국을 할 예정이었다.


 외국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어서 나 같은 워홀학생이 적은 가격이 비싼 랭귀지스쿨을 선택하였지만 실상은 외국인 못지않게 호주로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IELTS 공부를 위해 다니는 한국 20대 초반의 유학생들이 많았다.

그들 중 일부는 버릇이 없었고 한국에서 넘치게 보내주는 돈을 펑펑 쓰며 무례하고 거만하였고 나이 많은 한국 여자를 상대하기 싫어하는 여대생들 덕분에 나는 주로 외국인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


 등록해 놓은 랭귀지 스쿨 코스가 끝난 후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쉽지 않았다.

시드니 도심 내에는 한국식당 밖에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영어회화를 활용하기 위하여 새벽마다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외국인을 상대하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괜히 나이도 많은데 신입이면 불편할까 봐 어린 한국여자애들에게 무조건 숙이고 저자세를 보였더니 오히려 그들은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였다.

(물론 영어는 존댓말이 없었기에 그냥 웃으며 상냥히 말하는 것을 호주 현지 아르바이트생들은 더 좋아하였다.)


그때 깨달았다.

아.... 무조건 고개를 숙이는 게 겸손한 것이 아니구나.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우습게 보일 수 있구나.

배려와 존중, 겸손은 올바르고 선량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구나.


모질게 참고 버티려 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이상하게 못된 짓을 많이 하였다.

그곳에서 만난 나이 어리고 철없는 한국 여자애들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잘못된 내 약자 같은 행동 탓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호주라는 도시가 나와 맞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결국 테솔자격증을 취득할 때까지 버티겠다는 마음을 접고 귀국을 생각할 즈음.

20대 중반이 된 막내 남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 따라서 자기도 호주에 와서 공부하고 싶다고.

엄마는 나의 고생을 이미 다 들어 충분히 알기에 남동생에게 다시 한번 큰누나와 상의하라고 하였고 나는 결사반대이며 곧 귀국할 거라고 말했다.


지금은 나보다 훨씬 더 멋지게 자라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지만 그때는 나보다 더 순진했던 20대 남자였기에 동생이 오면 나처럼 고생만 할 게 뻔하였고 난 반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고통을 가족에게까지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월이 참 많이 지났다.

얼마 전까지도 만날 때마다 남동생은 그때 호주를 못 간 게 아쉽다고 이야기하였다.

남동생은 현재 이름 있는 기업에서 능력도 인정받고, 업무차 프랑스에 한 달씩 출장을 가기도 하지만 여전히 능숙하지 못한 영어에 미련이 남은 것 같았다. 

만약 그때 호주에 가서 자기도 영어 공부를 했다면 능숙하게 회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얼마 전 동생네 가족이 호주로 2주간 여행을 떠났다.

동생과 올케는 아직 2세밖에 안된 아들이지만 해외에서도 충분히 케어할 수 있다고 믿었나 보다.

올케는 외국계기업에서 인정받는 인재였기에 충분한 자금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15년 전 돈이 부족하여 내가 겪은 고생들은 절대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물론 그때와 상황은 많이 달랐지만,

그들의 뜻과 달리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아들은 시차적응과 덥고 습한 날씨로 쉴 새 없이 보챘고,

따뜻한 12월이었다는 내 기억과 달리 거의 2주간 내내 비가 내리는 악천후가 이어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보다 충분히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떠난 여행임에도 호주 물가가 너무 비싸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누나. 여기 와서 며칠 있어보니 누나가 예전에 혼자서 진짜 고생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드네."


십 년이 넘게 지나서면 내 마음을 알아준 남동생의 말이었다.


우리는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이 많이 남는다.

만약 그때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전혀 결과가 달랐을 텐데 라며 가보지 않을 길에 대한 기대 어린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니 결국 선택의 순간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했어도 또 새로운 이유로 후회를 할지 모른다.


비록 호주에서의 나의 삶은 아름답지 못하였지만 오랜만에 보는 사진들은 그와 달리 따뜻하다.


여름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는 호주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하버브리지 앞에서 버스킹 공연 감상


하버브리지 인근을 걷다가 두 남성의 버스킹 공연을 보았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거리 버스킹이라 강변에서 아름다운 풍경에 심취하며 들었던 그들의 음악은 더없이 따사로운 행복감을 주었다.

비록 그 행복이 오래가진 못하였지만...


30살에 호주에서 호되게 당하고 온 나는 귀국 후 몇 년간은 마음과 멘탈이 조금 단단해졌다.

그러나 본성은 쉽게 돌아간다고 또 물렁해져서 결국 몇 년 전부터 계속 인생의 소용돌이에 심하게 휘청거렸다.


큰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만 인간이 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망각하고

다시 또 위기를 겪는다.


이번에는 확실한 '대오각성'의 시기가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부디.

                     

작가의 이전글 산보다 바다가 좋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