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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t Jang Jan 18. 2024

깜짝 놀라게 하는 유전자의 힘

강요한 적은 없지만 같은 꿈을 꾸는 모녀


 어느새 6살이 된 귀여운 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엄마의 얼굴도 보이고, 나와 남편의 얼굴도 보인다.

내 동생들은 언니, 누나의 어릴 적 판박이라 하고

남편 가족과 친구들은 남편과 꼭 닮았다고 한다.


마흔에 시험관으로 얻어 하나뿐인 소중한 딸을 잃을까 어딜 가나 손을 꼬옥 붙잡고 다니지만 멀리서 봐도 너무나 친자 같은 우리 딸이다.


타고난 기질과 성격마저 닮아서 태생부터 예민하고 지나칠 정도로 내성적이며 매우 낯을 가린다.

좋은 것은 서로 나를 닮았고 나쁜 점은 당신과 똑같다고 남편과 서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사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것 마저 나와 똑 닮았다.


 엄마의 취향이 그림 그리기와 감상이라 기저귀를 찰 때부터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미술관을 간 탓인지

아니면 유치원 하원 후 차량운행이 미술학원만 가능해서 미술만 배워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진짜 선천적으로 그림에 소질과 관심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딸이다.


 어느 날 내가 딸에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묻자

"응.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화가?"

라고 말해서 놀랐다.

나도 어릴 적에는 늘 화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우연이지만 신기하였다.


유치원에서 다양한 활동과 체험을 하더니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나에게 달려와서 꿈이 바뀌었다고 하였다.

나는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응. 나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옷 만들어주는 패션디자이너?"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딸은 아직 어려서 내가 대학교에서 의상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몰랐기에 엄마 또한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며 공부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하였다.


"정말? 엄마도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대학교 가서 옷 만드는 공부 많이 했었는데."

"아 그래서 엄마가 어릴 때 내 옷을 만들어줬구나."

엄마와 같은 것을 배운다는 게 좋은지 딸은 배시시 웃어 보였다.



 해가 지날수록 낯가림이 덜 해졌지만 여전히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목소리가 개미만 한 내성적인 우리 딸이 학예회를 했었다.


부끄러움이 유독 심했던 나는 40년이 지나도 유치원생 때 부끄러워서 춤도 못 추고 구석에 숨어 있다시피 한 나를 기억한다.

엄청난 성격의 변화로 결국 중, 고등학생 때에는 모든 장기자랑과 대회를 앞서서 나가는 무대체질(?)이 되었지만 그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 청소년기의 이야기다.


 평소에도 나처럼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아는 내용도 유치원에서 절대 발표를 안 한다던 우리 딸.

큰 기대 없이 나처럼 숨지만 말아라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학예회를 구경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무대로 위로 올라간 극내성적인 우리 딸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무대 중앙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신이 나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영상을 본 주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딸이 원래 어릴 때부터 외향적이었나요?"

"네???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내성적인데요...

저도 처음 보는 모습이라..."


너무도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딸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동안 내가 딸에 대해 자세히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무대에서 변신하는 것도 유전인가??

그렇지만 나는 청소년기에 외향적인 성향으로 변해서 무대를 즐겼던 것이고 우리 딸은 여전히 내성적인데 이렇게 갑. 자. 기.  변한다고?


그날 이후 딸의 행동이 조금 달라지긴 하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환호를 받는 게 좋았나 보다.

불쑥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엄마, 나 커서 가수가 되고 싶어요.

아이돌 같은 가수."

"뭐??????????????????"


아직 어려서 되도록 아이돌 같은 가수들의 영상은 거의 안 보여줬는데 유치원과 학원에서 친구들끼리 이야기하고 사진을 공유하며 어느새 딸은 아이돌 박사가 되어 있었다.


나도 중학생 때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찐팬이자 고등학생 때 가수가 되고 싶다고 진지하게 부모님께 말해서 맘고생을 시켰는데 어쩜 그렇게나 똑같은지 나와 판박이인 듯하였다.


나보다 한참이나 빠르게,

나와 똑같은 꿈을 꾸고 있는 딸이 너무 신기하였고 친정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니 너무 구체적으로 똑같아서 모두 깜짝 놀랐다.


다행스럽게도 내성적인 성향은 아직 여전하여 가수의 꿈은 몇 주가 지나기도 전에 마음을 접었다.

그렇지만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은 여전히 너무 신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들 말로는 학예회 이후, 수업시간에 발표도 적극적으로 한다고 하였다.


꿈이야 살면서 계속 바뀌고 취향과 관심사도 변하게 마련이니 네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이 경험해 보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우리 딸은 새롭고 낯선 것을 싫어한다.


그래도 다른 엄마들처럼 ‘내가 못 이룬 꿈을 네가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라. ’

이런 무언의 압력? 은 없을 듯하다.


너무나도 비슷한 외형에 취향까지 똑 닮은 딸이 무슨 일을 하건 남들에게 나쁜 행동이 아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무엇이든 지원해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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