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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t Jang Mar 01. 2024

배고픔을 절대 참지 못했던,

그러나 사람은 변하기도 한다.

나와 남편은 다른 점에서 예민하다.

나는 배고픈 것을 못 참고, 남편은 졸린 것을 못 참는다. 

덕분에(?) 우리 딸은 배고픈 것, 졸린 것 둘 다 못 참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배고픔에 대한 나의 예민함의 강도는 아주 많이 약해졌다.

10대 시절에는 식사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손이 덜덜 떨리는 수전증까지 왔었고

20대에는 배고프다고 느끼는 순간이면 짜증지수가 극에 달하였다.


어릴 때부터 요리솜씨가 뛰어난 엄마 덕분에 맛있는 요리를 많이 먹을 수 있어선지 미각도 발달한 만큼 식탐도 강하였다. 그래서 한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낙이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매 순간의 끼니가 중요하였기에 세끼 중 한 끼라도 굶거나 늦어지는 날은 마치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처럼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내 주위에는 그런 나의 예민함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몇 년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아무리 바쁜 러시아워가 오더라도 점장, 부점장, 매니저님들은 내 식사를 꼭 챙겨주셨다. 너무 바쁘면 주방에서라도 잠시 햄버거를 먹도록 나에게만 특혜(?)를 주셨다.


20대에 학원강사를 하던 시절에도 수업이 늘어나고 어느 순간 식사시간이 아예 없어질 정도로 풀타임스케줄이 되자 나는 진심으로 퇴사를 고민하였다. 

지금으로서는 너무 황당하고 철없는 이유였지만 당시의 나는 밥을 굶으면서까지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나의 주장에 결국 식사 시간대의 수업을 뺄 수 있었고 나는 계속 일을 하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에게 식사시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였고, 그것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30살에 모든 것을 접어두고 호주로 떠났을 때,

수많은 역경과 다양한 경험을 하였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너무 소중한 '식사시간'을 고집하던 나를 버리는 것이었다.


커피숍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호주 여자애는 언제나 나에게 친절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겸손하게 굴었던 나를 만만하게 보고 텃세를 심하게 부리던 한국 여자애 덕분에 나는 그동안의 과오를 반성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혼자 매장 오픈을 해야하는 데, 늦잠을 자서 새벽 다섯 시에 물 한 모금도 못 마신채 서둘러 버스를 타고 시드니에서 한 시간 거리의 해변가 옆 커피숍으로 출근을 하였다.

지친 몸으로 서둘러 청소를 하고 오픈 준비를 하였지만 나의 피곤한 몸상태와는 다르게 일찍부터 쏟아지는 손님들로 바빠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그렇게 오전 내내 바쁘다가 겨우 커피 한잔을 타서 허기라도 채우려고 할 때쯤 오후 타임 아르바이트생으로 텃세가 유독 심했던 여자애가 왔다.


나보다 7살쯤 어렸지만 괜히 걔가 불편할까 봐 처음부터 고개를 숙이며 네네 하던 것이 만만해 보였던지 그 아이는 늘 쌀쌀맞고 못되게 굴었다.

그날도 12시간 근무였기에 아직 그 아이와 몇 시간을 함께 일해야 했고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정신없이 러시아워가 지나고 4시가 지날 무렵...

배도 너무 고프고 몸에 진이 빠진 듯 지쳐서 벽에 잠시 기대어 멍하니 넋을 놓았나 보다.

날카로운 그 애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다 못해 가슴으로 꽂혔다.

"쳇. 뭐가 힘들다고 그러고 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출근하자마자 2시간 동안 바빴기에 새벽부터 굶고 와서 그시간까지 내내 바쁘게 일하며 지친 나의 사정을 몰랐을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호주에 갔던 것이 아니라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갔었다.

외국인 손님과 몇 마디 실전영어를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애초부터 나의 굽신거리는 태도도 잘못되었다.

무례한 사람에게는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국에서 그동안 내가 고집하던 '식사시간'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사유이며, 나의 당당하다고 여긴 요구 때문에 다른 누구는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내게 배려를 해 준 수많은 이들이 감사하기도 하였다.


그날 나는 아르바이트를 관두기로 하였다.

욱하는 감정보다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 때문이었다.

물론 전에도 이야기하였다시피 이미 내게는 너무 많은 안 좋은 사건들이 있었기에 억지로 웃으며 아르바이트를 해나갈 자신도 없었다.


그 사건 이후,

내 인생에서 '식사시간'의 비중은 상당히 낮아졌다.

여전히 배고프면 예민해지기는 하지만 때로는 참거나 굶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자제할 능력이 생겼으니 조금은 성장했다고 봐야 할까.




모처럼의 휴일이라 어린 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팝콘을 좋아해서 따로 한 개 더 사서 줬는데 다 먹고 나서도 아침식사를 제대로 안 하고 와서인지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 역시 배가 고팠기에 같은 건물 내 푸드코트로 가서 생선 정식을 시켰다.

혼자였을 때라면 허겁지겁 이것저것 잔뜩 사서 배 터지게 먹었겠지만 이제는 딸이 우선이기에 딸이 먹을 수 있는 흰살생선이 나오는 정식을 메뉴로 골랐다.

그리고 하나하나 천천히,  꼼꼼하게 가시를 발라내어 딸의 밥숟갈에 하나씩 올려주고 남은 생선들을 골라먹었다. 그런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정말 많이 변했구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조금씩 변한다.

그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도록 계속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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