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Editions"매거진은 소장하고 있는 사진책들을 하나하나 소개해볼까 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디지털시대에 사진책을 꼭 봐야 할까?"라는 내용으로 그동안 사진책을 보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모바일이나 PC에서 다양한 사진들을 무수히 접 할 수 있지만 사진책을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니터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볼 때, 우리는 그 순간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 누군가는 어두운 방에서, 누군가는 햇빛 아래서, 누군가는 번쩍거리는 광고 배너 사이에서 사진을 마주한다. 그러니 같은 사진을 보더라도, 감상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밝기, 해상도, 색감 등 외부 요인들이 사진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사진책은 다르다. 종이 위에 인쇄된 사진은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 눈부심도 없고, 지나치게 또렷한 빛의 자극도 없다. 그저 종이의 부드러운 질감과 자연스러운 명암이 사진을 감싸 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눈을 편안히 두고 사진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는 디지털 기기 위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온전한 몰입의 경험이다.
사진책은 촉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더 풍부한 감상 경험을 제공합니다.
첫째, 촉각은 인쇄된 사진은 디지털 이미지와 달리 물리적인 깊이와 질감을 지닌다. 종이를 손으로 만져보면 작가가 왜 그 특정한 인쇄 기법과 종이를 선택했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 종이의 촉감은 사진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만든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느껴지는 종이의 미묘한 두께와 질감은 그 자체로 작품의 일부다.
둘째, 청각은 사진책은 시각적인 경험을 넘어선다.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종이의 사각거림은 감상의 한 요소로 자리한다. 조용한 방 안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조차, 사진을 감상하는 리듬을 만들어내며 감상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셋째, 후각은 디지털 세계에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사진책마다 종이에 따라 다른 냄새가 난다. 책을 펼칠 때 퍼지는 미묘한 향은 종이의 질감만큼이나 독특하다. 작품을 보며 느끼는 이 향기는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이렇듯 사진책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다채로운 감각을 통해 사진을 경험하게 한다. 이는 디지털 이미지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사진책의 매력이다.
사진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을 보는 것이 아니다. 커버의 디자인부터 페이지를 구성하는 레이아웃, 선택된 종이와 인쇄 기법 그리고 위에 나열한 모든 것을 담아내는 책의 형식 또한 예술의 일부다.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산책과도 같다. 사진 속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사진을 담고 있는 책의 물성과 구조가 감상의 일부가 된다.
또한, 사진책은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 본 사진은 어제와 다르다. 페이지를 넘길 때의 손의 감각, 사진을 마주한 시선의 출발점과 그 끝이 언제나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사진책은 한 번에 전부 이해할 수 없다.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가 열리고, 그 의미가 곧 예술의 힘이라 믿는다.
사진 모임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사진책을 꼭 사서 볼 필요가 있나요?" 그럴 때마다 나는 사진책이 가진 여러 가지 매력을 설명하곤 한다. 물론 답은 간단하지 않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진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 수전 손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