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투를 치는 시간

by 산너머

몇 년 전부터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신 같은 날 친정엘 가면 저녁마다 아버지와 딸들 간에 고스톱판이 벌어진다. 고스톱을 즐기는 집안 분위기도 아니었고, 젊은 시절엔 아버지가 화투 만지시는 걸 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아버지가 아파트 경로당에 다니신 이후부터인 것 같다. 딸들이 오는 날이면 화투를 꺼내 짝을 맞춰 놓고 저녁 설거지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앉아 계시는 아버지 때문에 피곤해서 그냥 자고 싶은 날도 하품을 하면서 억지로 고스톱을 하는 때도 있었다. 가끔은 한 쪽에서 술판을 벌이는 사위들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딸들과 하는 고스톱을 더 좋아하신다.

언제 누구에게 고스톱을 배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나는 사실 고스톱에 그다지 흥미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한다. 아무거나 내고 눈에 띄는 대로 맞는 짝이나 집어오는 수준이어서 다른 사람의 패를 보며 열심히 계산을 하고 화투를 치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정도이다.

그런데 외가에만 가면 저녁마다 화투판이 벌어지는 걸 본 승겸이가 작년부터 화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옆에 와서 내 순서가 되면 자기가 화투를 뒤집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나중엔 내 무릎에 찰싹 붙어 앉아 구경하다가 결국 어깨 너머로 대강 짝 맞추는 걸 배우게 되었다. 어떻게든 나중엔 배우게 될 테니 관심을 가질 때 점수 계산하는 법이나 알려줘야겠다 싶었다. 내심으로는 요즘 두 자리 수 덧셈과 뺄셈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점수를 계산하려면 수학공부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아전인수격 심사도 있었고 계산이 힘들면 포기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화투는 명절 때나 가족이 모일 때만 재미로 하는 거라고 못을 박았다.

그런데 얼마 전 부산 기장에 사시는 아이의 고모가 할머니를 보러 와서 며칠 계시는 동안 일이 벌어졌다. 다섯 명의 고모 중 기장 고모는 승겸이 또래의 손주가 있어 아이와 같이 잘 놀아주시는, 승겸이가 특히 좋아하는 고모이시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할머니 방에서 승겸이가 고모에게 화투를 하자고 제안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모가 놀러 왔으니 화투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고모, 저랑 화투 하실래요?”

“니, 화투 칠 줄 아나?”

“네, 저 화투 잘 해요. 엄마한테 다 배웠어요”

허걱, 원래 말이 많은 아이는 조잘조잘 외가에 가면 화투판이 벌어지는 얘기를 해가며 자신이 화투를 잘 하며 계산하는 것도 잘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대략 난감한 마음을 누루고 그냥 설거지를 했다.

“그랬나? 그럼 함 해보까? 근데 고스톱을 하려면 세 명 있어야 된데이.”

“그럼 할머니도 같이 하면 되죠. 할머니 화투 할 줄 알아요?”

그렇게 하여 구십 삼세의 할머니와 칠십이 넘은 고모와 아홉 살 승겸이의 화투판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할머니가 민화투밖에 모르신다는 거였다. 이 집에서 화투판이 벌어지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어머니가 마을 경로당에 안 가신 지 십 년은 된 것 같다. 형님 동생 해가며 친하게 지내던 둘째 아주머니가 쓰러지신 후부터였다. 혼자 뭐하러 거기까지 가겠느냐며 서서히 발길을 끊으셨다. 마을의 제일 안쪽에 있는 우리 집에서 경로당까지는 꽤 먼 거리이다. 이젠 백 미터도 안 되는 집 뒤 배밭에라도 올라가시려면 지팡이를 짚고 몇 걸음 못 가서 쉬었다 가셔야 하는 어머니에게 경로당은 서울 만큼이나 먼 거리가 되었다. 일 년에 한두 번 경로당에서 노인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날에나 한 번씩 차로 모셔다 드리고 모시고 오고 하다가 이젠 그마저도 안 가신지 몇 년이 됐다. 온 가족이 새벽밥 해 먹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집을 혼자 지키며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는 손자는 며느리가 퇴근하면서 같이 데려와야 하니 다 저녁이 되어야 얼굴을 본다. 저녁 밥을 먹고 설거지 하는 동안이 손자와 할머니가 함께 하는 시간인데 대부분 방에서 우두커니 앉아 손자가 보는 어린이 프로를 같이 쳐다보던 어머니의 저녁 시간에 돌연 활기가 생겼다.

경로당에 다니실 때 10원 짜리 민화투를 하시던 경력으로 아홉 살 손자와 화투를 하게 된 어머니가 꽤 즐거워 보이셔서 승겸이에게 화투를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화투판은 며칠 후 고모가 부산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밤마다 계속되었다. 고스톱과는 달리 둘이 하기에도 좋은 민화투의 점수 계산법까지 다 배운 아이는 평소 그렇게 하고 싶어도 아무도 끼워주지 않던 화투를 매일 밤 할머니와 하게 되었으니 아주 신이 났다.

저녁을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고 집안 일을 하는 동안이 할머니 방에서 함께 화투를 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요즘 승겸이의 밥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빨리 밥을 먹어 치우고 자신이 먹은 그릇과 수저를 설거지통에 넣고 “잘 먹었습니다” 하며 할머니 방으로 뛰어가 화투를 꺼내놓고 할머니를 기다린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조손 간의 화투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 나는 아뭇것도 못 했어. 너는 무슨 약 했니?”

“ 할머니, 나는 비약했어 ”

“ 비약? 나는 아뭇것도 못 했으니께, 그럼 네가 열 땄어”

“ 할머니, 나는 135”

“ 135? 135믄 네가 얼마 딴겨? 120 본 해 놓고서 나무지가 얼마 남은겨? 네가 그럼 십오 딴 거 아녀?”

“ 몰라요. 나는 계산했는데 135가 끝이야 ”

“ 아니, 그러니께 얼마를 딴거냐고, 백이십 본을 제해 놓고 그걸 그렇게 따지야 하는 겨.”

“ 135믄 네가 딴겨. 이거는 따두 내가 선하구, 잃어도 내가 선하구. 네가 해야 하는 긴디 내가 다 해야 하니 구찮구먼”

늙은 할머니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착 착 착 느리게 화투를 섞는 소리에 뒤섞인다. 할머니가 화투를 섞는 동안 ‘아버님, 어머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 메이게 불러봅니다~’ 요즘 티비에서 유행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 목소리까지 아주 가관이다.

할머니와 손자의 화투는 애초에 돈이 오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지고 이기는데 아무 관심도 없다. 어머니는 이기고 진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승겸이가 누가 이겼냐고 물으면 늘 네가 얼마를 땄고, 내가 얼마를 잃었다고 표현을 하신다. 판이 끝나면 각자 열심히 자신이 따온 점수를 계산한다. 서로 상대방이 계산한 점수가 맞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너 청단했네.” “할머니, 할머니 초약 했어요. 홍단도 했어요.” 오히려 상대방이 놓친 점수를 알려 주는 건 열심히 한다.

“네가 십 땄으니께 선이여. 내가 나눠 주면 네가 먼저 햐. 아이고 나버텀 줘야 하는디 너한테 먼저 줬네”

“아싸, 할머니, 나 이거 세 개나 있어요.”

“아이구, 잘 들어왔어? 그거 원래 내 껀디 너한테 먼저 줘서 잘못됐어. 하여튼 얼릉 너 먼저햐”

자기에게 들어 온 패를 알려주기도 하며, 팔십 여 년의 시간 차를 넘어 처음으로 서로 수준이 맞는 놀이를 찾아낸 조손의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고 있다. 그 놀이가 하필 민화투라는 것이 엄마로서 좀 찜찜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한 시절 따뜻한 할머니 방에 엎드려(한 번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앉아 계시고, 손주 놈은 방바닥에 엎드려 두 다리를 들고 화투패를 잡고 있었다.) 즐거운 놀이에 몰두해 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지켜보는 중이다. 먼 훗날 고단한 어느 저녁에 오래 전 할머니 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따뜻한 시간과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날도 있겠지. 생각하면서. 승겸아, 그럴 땐 늙은 엄마 방으로 와서 함께 민화투를 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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