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지대

침묵하는 자들과 외치는 자들 사이에서

by 안도현






대학교 1학년 4월, 동아리 회식이었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 선배 한 명이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정치 돌아가는 꼴 보면 한심하지 않냐?"


몇몇 선배가 맞장구쳤다. 나는 평소 생각을 꺼냈다. "저는 사실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테이블이 조용해지더니 한 선배가 내게 손을 저었다.

"야, 그런 얘기하지 마. 요즘 세상에 정치 얘기 꺼냈다간 사람 잃어."


나는 분위기 속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는 거지? 자기들도 방금 정치 얘기 하고 있었잖아?'


그날 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신의 정치 성향을 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 평가받던 헌법을 가진 나라였다. 1928년 의회 선거에서 나치당은 3%를 득표한 그저 변방의 과격파 집단에 불과했지만 4년 후 1932년 7월, 나치당의 득표율은 3%에서 37.3%로 제1당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대공황이 터졌다. 실업자 600만 명. 중산층은 인플레이션으로 저축을 날렸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다. 정부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의회는 극좌와 극우로 양분되어 싸움만 했다. 중도파는 무력했고, 보수파는 나치를 이용하려 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1933년 1월 30일,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무너졌다.


이를 두고 독일 역사학자 카를 디트리히 브라허(Karl Dietrich Bracher)는 말했다.

"나치의 집권은 우연이 아니었다. 보수 엘리트들의 선택과 시민들의 무력감이 만든 결과였다."


무력감(無力感).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

"내가 투표한다고 뭐가 달라져?"


2025년 1월, 한국의 한 조사기관이 설문조사를 했다. "정치에 관심이 있습니까?"

20대의 41.2%가 "관심 없다"라고 답했다. 30대는 47.4%. 거의 절반이다.


이는 뉴스로 접하는 정치가 더 나은 한국을 만드는 게 아닌 밥그릇 싸움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들의 밥그릇이 커질수록 우리의 몫은 줄어든다. 어쩌면 청년들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지친 거 일지도 모르겠다.








2022년 대선 직후 여론조사엔 "왜 그 후보를 선택했습니까?"라는 질문에 26%가 "상대 후보가 싫어서"라고 답했다.

정책이나 비전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더 싫었기 때문에.


흑과 백만 있고, 회색이 없는 세상.

"너는 진보야 보수야?"


편을 나누고, 진영을 만들고, 적과 아군을 구분한다. 물론 각자의 정치 성향은 다를 수 있다. 경제적 여유, 추구하는 가치, 성장 환경.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대부분 문제는 흑백이 섞인 회색이다.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 사실 둘 다 중요하다. 성장도 필요하고 분배도 필요한 곳이 있다. 문제는 어떤 균형을 찾느냐인데, 정치인들은 표심을 얻기 위해 국민을 갈라놓기 바쁘다. 그걸 본 우리도 균형 대신 편을 가른다. 진영을 나눈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얘기하지 못한다. 이런 얘기가 불편한가?

물론 구태여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왜일까. 사회가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본다.


스마트폰 화면 속 서로를 물어뜯는 말풍선들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꼭 누가 편을 들어줘야 맘이 놓이는가? 그것이 스스로를 가벼운 사람으로 만든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보여준다. 당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글이 피드에 뜬다. 반대 의견은 걸러진다. 이것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 한다.

문제는 알고리즘이 아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일부러 피한다. 불편하니까. 불쾌하니까. 객관적 시선의 부족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유튜브, 커뮤니티로만 확인하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라 판단하며, 그게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믿고 자신의 진실이 진실임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것 같다.








프랑스의 철학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는 1811년에 이렇게 말했다.


"Toute nation a le gouvernement qu'elle mérite."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가혹한 말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자격 없는 이들의 지배뿐이다.


2026년, 서울은 이제 글로벌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소양도 같은 보폭으로 스텝업했을까.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무지한 채 극단으로 달려가는 것도 문제다.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 확신에 차서 외치는 사람들. 그들이 만드는 소음 속에서 회색지대를 지키는 것.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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