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한국의 것인가, 그 범위는 누가 정하는가
Umbra :
누군가 우리 문학의 약도를 그려줬으면 좋겠어. 어디까지가 한국의 글이지? 옛 신화와 민요, 은어, 욕설도 우리나라의 것인가. 단순히 지리적인 감각으로 생각하는 건 너무 덮어놓고 보는 거 아닌가? 우리는 지금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를 한국 문학이라고 보고 있어. 그렇다면 몇 년 전 히트했던 '파친코'의 작가는 재미교포인데, 이 또한 우리 문학일까.
Ego :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를 한국 문학이라 부르는 관습에 대한 의문? 재일교포의 글, 파친코의 작가, 성조가 있던 옛 언어로 쓰인 글은 정말 우리가 말하는 '한국 문학'인가. 단순히 지리적인 감각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는 말은 틀리지 않아. 하지만 옳다고도 할 수 없지. 한반도는 확장과 수축, 분열과 통일을 거듭해 왔으니.
Umbra :
그러니까 지리적 느낌이 아닌 통시대적 개념으로서 접근해야 해. 향가를 읽어본 적 있지? 우리는 해석본만 읽었어. 암호 같은 원문을 보며 의문이 들지. 이게 정말 우리 문학인가? 어쩌면 역사를 부정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표준어로서의 한글이 제정된 후가 진정한 한국 문학이라 생각해. 그 이전 시기는 오히려 본질과 멀어. 중국어처럼 성조도 존재하며 교과서가 없으면 해석하기도 쉽지 않지. 그런 걸 한국 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는 있겠지. 우리 고유의 것이니.
Ego :
문학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선택과 권력의 문제지. 간단하지 않아. 선사시대 신화부터 재일교포의 글까지 모두 '한국 문학'이라고 규정하는 건, 민족과 언어, 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포용의 몸짓처럼 보이지만 그 경계는 모호해. 파친코. 한국계 미국인의 영문 소설. 북한 문학. 짚고 넘어갈 건 '표준어 제정 이후' 기준이야. 이건 '접근성'과 '정체성'을 혼동한 거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할 거야? 라틴어를 읽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서양 문화의 뿌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
Umbra :
접근할 수 없는 정체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우리가 읽지 못하는 글을 '우리 것'이라 주장하는 건 형식만 남은 소유잖아. 라틴어를 예로 들었지. 하지만 서양인들은 라틴어를 배워. 학교에서, 대학에서, 신학교에서. 그들은 그 뿌리에 접근할 수 있어. 근데 우리는? 향가를 원문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지. 전문가조차 해석이 엇갈리는데, 그걸 '우리 문학'이라 부르는 게 정직한 건가?
Ego :
접근 가능성의 문제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문학의 범위를 정할 순 없지. 문학 행위의 틀 속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습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을 맺지 않을 수 없어. 그 말대로면 한문학은 어떡할 거야. 조선 시대 양반들이 쓴 한시와 사대부 문학은 한국 문학이 아니란 말과 똑같은 거지. 한글이 아닌 한자로 썼고, 그 언어는 중국 것이었으니. 그렇다면 세종대왕 이전엔 한국 문학이 존재하지 않았단 말과 다를 바 없어.
Umbra :
한문학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야. 다만 우리가 '한국 문학'이라 부를 때,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지. 한문학은 분명 우리 선조들이 남긴 유산이지. 하지만 그게 '한글 문학'과 같은 범주에 속하는가? 아니면 별개의 전통으로 봐야 하는가? 차라리 '한국어 문학'과 '한반도 문학'으로 나눠. 전자는 한글로 쓰인 것들, 후자는 이 땅에서 나온 모든 글. 그렇게 구분하면 혼란이 줄어들 것 같다.
Ego :
하지만 그 구분도 결국 선을 긋는 작업이야. 문학의 경계는 약도가 아니라 물결에 가깝다고 봐. 선명한 선으로 그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중심에서 바깥으로 점점 희미해지는 파동처럼. 물결은 중심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퍼져나가 듯, 파문은 점점 약해지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한국 문학도 그렇지 않을까? 중심에는 분명히 한글로 쓰이고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글이 있지. 그 너머로 갈수록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는 거야. 교포 2세, 3세,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 번역된 작품들.. "표준어 제정 이후"라는 기준은 실용적 관점에서는 탁월해. 실제로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점에서 말이지. 하지만 그것이 한국 문학의 전부라고 하면, 우리는 뿌리를 잃게 돼. 향가도, 시조도, 한문학도 모두 잃는 거지.
Umbra :
하지만 읽을 수 없는 뿌리를 소유한다는 게 무슨 의미야.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처럼, 우리는 그저 '있다'는 사실만 아는 거잖아. 물결도 결국 어디선가 끝나는 법. 우리가 그 끝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게 '한국 문학'이 되는 거야. 그럼 경계는 없는 거 아닌가? 경계 없는 정체성이 과연 정체성일 수 있을까.
Ego :
경계 없는 정체성. 맞아, 그게 문제의 핵심이야. 하지만 존재 자체로 역사가 증명되는 거야. 뿌리는 보이지 않아도 나무를 떠받치고 있지. 우리가 지금 쓰는 언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방식, 그 모든 게 과거에서 흘러왔어. 향가를 읽지 못해도, 그 정서는 우리 안에 남아 있지.
Umbra :
현실은 좀 다르게 보이지 않아? 박물관에 있는 유물에 정통한 사람이 많진 않아. 설명란이 있는 이유를 생각해 봐. 결국 취향의 영역이야. 역사라는 배경이 없다면 그저 오래된 돌덩이일 뿐이지. 그 말대로 모든 사람이 그 정서를 공유한다면, 왜 아파트를 짓다 나온 유물을 박물관 앞에 몰래 갖다 놓는 일이 생길까? 그건 정서보다 실리가 우선이기 때문이야. 차마 버리지 못한 것이 정서의 가치지. 딱 거기까지야. 그러니 정서만으로 문학의 범위를 정할 순 없어. 우리가 필요한 건 정서가 아니라 이해야.
Ego :
유물과 문학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건 차이가 있어. 유물은 물리적 실체야. 문학은 정신의 흐름이고. 우리가 향가를 읽지 못해도, 그 리듬은 지금 우리 시에 남아있어. 그게 문학의 힘이야. 한국 문학의 범위는 누군가가 그려주는 약도가 아니야. 그건 각자가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지. 중요한 건 그 선택의 이유를 명확히 하는 거야. 예를 들자면 고고학자가 보는 한국의 역사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건 다르잖아? 일부 고고학자들은 고조선의 신화적 요소를 한국사의 직접적인 뿌리로 보기 어렵다는 논의도 있어. 시대마다, 학문마다 기준이 달라지는 것뿐이야.
Umbra :
그러니 '살아있는 문학'을 기준으로 삼고 싶어. 읽히고, 공유되고, 논쟁되는 문학. 그게 진정한 문학 아닌가? 박물관에 갇힌 문학은 이미 죽은 거야. 우리가 그것을 '문학'이라 부르는 건 일종의 의례일 뿐이지. 진짜 살아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읽고 감동받고 논쟁하는 글이야. 그런 의미에서, 표준어 이후의 한글 문학이 진정한 '우리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어. 라틴어의 얘기를 이어볼까. 물론 법조계와 의학계에선 아직 사용이 되고 있지. 하지만 그뿐 이잖아. 라틴어는 죽은 언어야. 일부 집단만 사용한다고 해서 살아있다고 할 순 없어. 너는 '리듬이 남아있다'라고 했지만 그 리듬을 누가 느낄 수 있지? 전문가들? 학자들? 그들만의 문학이라면, 그건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어.
Ego :
그것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지. 하지만 한 가지, 살아있는 문학도 언젠가 죽은 문학이 되지 않을까? 지금이 역사의 끝은 아니야. 100년 후 사람들이 지금 우리 글을 읽지 못한다면, 그때도 너는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전문가와 학자가 있기에 우리가 그 리듬을 배울 수 있어. 누군가는 다리를 놓아야 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를 말이야.
Umbra :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미래의 사람들이 정할 문제야. 우리 역할은 지금 살아있는 문학을 정의하는 것 아닌가? 기록조차 변하는 게 역사야. 나는 결국 '공감할 수 있는 문학'을 원하는 거 같네. 배울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문학.
Ego :
누군가는 뭐라 할 수도 있지만 문제 제기 자체가 중요한 거야.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니까. 결국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 아닐까. 한국 문학의 범위는 고정된 지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그려지는 지도라는 것. 시대마다, 사람마다, 그 경계는 달라져. 그리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중요한 건 그 지도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야. 왜 그 지도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아는 거지. 너는 공감할 수 있는 문학, 나는 역사의 흐름 속에 놓인 문학. 그렇다면 이 대화를 들은 당신, 어떤 지도를 그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