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갓 입학한 여대생 A는 기숙사에서 지낼 계획이었다. 한데 입학성적과 본가와의 거리등을 고려했을 때, 기숙사를 배정받지 못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개강을 일주일 앞두고 이번 학기에 살 집을 급하게 구해야 하는 여대생 A는 이런저런 상황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급한 대로 나와있는 물건들을 서둘러 살펴보고 금세 녹아 없어질 솜사탕을 손에 쥐고 있는 아이처럼 초조한 마음으로 집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대화였는지 원치 않는 대화였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갑과 을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 스무 살의 어린 그녀에게 조금 빨리 다가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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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그래 차는 있고? 예전에는 원룸을 건축할 때 주차 의무 공간이 1:1이었는데 최근에 0.8:1로 줄어서 말이야.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입주자들 사이에 다툼이 종종 일어나.
여: 네 있어요.
남: 그래 차종이 뭔가?
여: Sm6예요.
남: 아 그래 그 suv 인가 하는 큰 차인가?
여: 아니요 그냥 승용차예요.
남: 그래, 대학생이라고 했던가? 대학생인데 차도 있고 집이 잘 사나 봐? 부모님은 뭐하시고?
여: 아버지가 포크레인을 하세요.
남: 포크레인~포크레인이 돈을 잘 벌지. 내가 건축을 하고 있어서 잘 알잖아. 포크레인이 잘하면 작은 건 하루에 30만 원, 큰 건 60만 원까지도 받아간다니까 그거 한 달 내내 하면 얼마야 어? 1~2천은 우습게 버는 거야 그래 아버님이 그런 일을 하셔서 따님 차도 척척 사주고 그러시는구먼
하나의 작은 단서로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어떤 이의 모습을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속을 들키지 않게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여: 아 네...
남: 그래 대학생이라고 했지? 전공이 뭐야?
여: 관광 관련학과예요.
남: 관광 좋지~ 여행 다니고 막 어? 그런 거잖아. 근데 코로나 때문에 요즘 힘들지 않나?
어떤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입을 여는 것만큼 사람을 못나 보이고 작아 보이게 만드는 순간은, 달리 찾아내려야 찾아내기 어려울 만큼 우리의 삶에 있어서 드물게 발생하는 위태로우면서 자신을 망가뜨리는 순간이다. 우리는 무언가 아는 척을 하기 전에 반드시 2초간 멈추는 습관을 습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말하는 동안에 나의 눈을 바라보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여: 그래서 1학년만 마치고 바로 편입하려고 요즘 공부 중이에요.
남: 아~편입. 그래 편입, 코로나 때문에 아무래도 관광업은 좀 힘들어졌지? 그래 어디로 편입하려고? 장래 계획이 어떻게 되나?
여: 장래 계획까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은 그냥 편입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학과는...
남: 그러면 안돼 사람이 꿈을 크게 가지고 계획을 딱 세워서! 응? 높은 이상을 품고 나아가야지, 할 수 있어 학생은 아직 젊잖아. 어디 마스크 좀 한번 내려볼 텐가? 내가 관상을 꽤 공부해서 딱 보면 대충 알거든
여: 네? 마스크를요? 갑자기요?
남: 그래 내려봐 괜찮아 괜찮아
여: (슬쩍 내렸다가 이내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재빨리 마스크를 올린다)
살다 보면 원치 않는 관계에서 무방비 상태로 상처를 입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주로 갑과 을, 위계서열이 존재하는 관계에서 발생한다. 가령 혼자서 집을 구하러 다니는 스무 살의 여대생과 음흉한 원룸 주인 같은 경우가 그렇다.
남: 이마도 예쁘고 코도 오뚝하니 똑 부러지게 생겼구먼,얼굴은 크게 이마에서 눈썹까지를 상정, 눈썹에서 코끝까지를 중정, 코끝에서 턱끝까지를 하정이라고 해서 상정은 초년운, 중정은 중년운, 하정은 말년운을 뜻하는데 학생을 보니 초년엔 조금 고생을 해도 중년부터 활짝 필 팔자구만 그래. 어디 본 김에 조금 더 봐줄게 머리도 뒤로 한번 넘겨봐 귀도 좀 보게
여: (당황하며)네? 귀를요? 아니 괜찮은데...
남: 괜찮아 괜찮아 한번 넘겨봐 봐
여: 네...
괜찮다는 말이 가장 괜찮지 않을 때가 있다. 가령 이런 순간처럼. 애초에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 주변에서 서성거린다.
남: 귀도 예쁘네 의지를 가지고 하면 못할 일이 없어 내가 젊었을 때 얘기를 좀 해줄까? 요즘 사람들이 라떼는 어쩌고 하면서 어른들이 얘길 하면 무시하고 반항심만 생겨서는 들어먹으려고를 안 하는데 내 얘기는 그런 꼰때스러운 얘기가 아니니까 한번 들어봐
여: 네...
남: 요즘은 일거리가 넘쳐나잖아 의지만 있으면 어디 가서 알바라도 할 수 있고 말이야. 굶어 죽을 걱정이 없잖아. 내가 젊었을 때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곳이 없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야... 1980년댄가... 이 동네가 지금이야 새 아파트가 여기저기 들어서서 신도시가 됐지만 내가 젊었을 때는 여기가 다 공장이었다고 그때 내가 새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단 말이야. 그런데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남들 하는 만큼 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단 말이야. 공부 잘하는 애들이 왜 공부 잘하는지 알아? 남들 놀고 게임할 때 공부하는 거야. 그냥 많이 하는 거야. 그것밖에 다른 방법은 없어. 나도 그랬다고, 남들 퇴근할 때 남아서 더 연구하고 그래서 내가 2년 만에 마스터를 했단 말이야
여: 네...
남: 그러니까 학생도 할 수 있단 말이야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그저 도망갈 궁리만 하는데 그래서는 절대로 성공을 할 수 없어. 남들 놀 때 죽어라고 열심히 하면 된다 이 말이야. 이재명이도 봐봐 흙수저에서 자기가 열심히 해서 대통령 후보까지 됐잖아. 윤석렬이는 뭐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니까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잖아 요즘 흙수저 금수저 얘기 많이 하지? 학생은 어떻게 생각하나 수저 계급론에 대해서
질문은 언제나 호의와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이 질문의 본질이자 원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문은 질문의 가면을 쓴 채 자신의 권위와 위세를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될 때가 많다. 우리는 그런 종류의 질문과 맞닥뜨릴 때 본능적으로 느낀다. 위협과 압박의 시간이 다가온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이다.
여: 네? 아..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남: 흙수저들은 금수저 욕만 한단 말이야. 저놈은 원래 부자니까 잘되는 게 당연해 그러면서 그 사람의 노력이나 이런 건 쳐다도 안 본단 말이야. 그런데 어디 그런가? 그 사람도 분명 자기가 열심히 노력한 부분이 있을 텐데 말이야. 흙수저들의 제일 큰 문제가 뭔 줄 알아? 바로 그 썩어빠진 패배주의가 정신을 좀먹고 있단 말이야. 그래선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긍정의 힘이 있어. 시크릿이라고 아나? 믿는 대로 이뤄진다 이거야. 학생 이건 미신이나 초능력 같은 게 아니야 인간은 진짜 믿는 대로 될 수 있어 그러니까 학생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라고!
여: 네...
남: 제일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창의력이야 창의력, 남들 다하는 암기는 중요한 게 아니야 남들과 다른 한 끗을 만드는 게 중요한 거지. 그래서 나는 솔직히 판검사 이런 새끼들 그냥 뭣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외워서 외운 것 적용하는 게 다잖아 그래서 문과는 별 볼 일이 없어. 별로 대단한 게 아니란 말이야. 진짜 대단한 건 이과지. 세상을 발전시키는 건 이공계열이지 문과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편협함은 위태롭다.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고,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 아 네...
남: 참 전공이 뭐라고 했지?
여: 관광 관련...
남: 아 그랬지 아무튼 잘 선택해서 원하는 과로 잘 편입하라고. 편입도 좋은데 공무원 준비를 해보는 건 어때. 젊으니까 편입 준비보다 빨리 공무원 시험 준비해서 공무원 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요즘 힘들다 힘들다 그래도 되는 사람은 또 다들 합격하잖아?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합격했겠어. 남들 놀 때 안 놀고, 잘 때 안 자고 하면 다 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학생도 응? 파이팅할 수 있지?
여: 네...
남: 어때 좀 도움이 됐으려나 모르겠네. 동기부여가 좀 됐어?
여: 네...
남: 도움이 됐다니까 좋네. 그리고 나는 커피를 안 마셔 이거 딱 한입 빨아먹은 거야. 내 침 안 들어갔으니까 테이크 아웃해서 집에 가져가서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내일 마셔.
소름은 귀신이나 바퀴벌레를 마주했을 때에만 돋는 것이 아니다. 거부하고 싶은 것을 자꾸만 권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을 때, 상황도 사람도 모두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하기 힘든 위치에 내가 배치되어 있을 때,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소름이 돋곤 한다.
여: 네? 아니 괜찮습니다
남: 괜찮아 괜찮아 나 매년 건강검진도 받고 건강해. 병균 없고 침도 안 들어갔으니까 가져가서 내일 마셔. 아깝잖아. 이런 거 한 푼, 두 푼 아껴야 성공할 수 있는 거야.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그렇게 살아서 원룸을 지금 몇 채나 갖게 되었잖아 그러니까 절약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한다고
여: 네...
남: 그럼 다음 집 또 보러 가볼까? 요즘 모던 스타일이 유행한 지 한참 되었지만 나는 나만의 스타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모던 스타일로 집을 안 지었어. 조금 특이하고 누가 봐도 딱 내가 만든 집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특별하게 지었다고. 그런 게 창의력이란 말이지. 아까 내가 얘기했지? 창의력 남들과 다른 한 끗 그게 중요한 거야. 꼭 기억하라고
여: 네...
남: 성공을 위해서는 딱 3가지만 기억하면 돼. 내가 차 타고 이동하면서 얘기해줄 테니까 잘 새겨듣고 마음에 새겨둬. 내 말 들어서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