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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07. 2020

가난은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삶의 전방위에 흩뿌려지는 제동 장치

공자님은 말했다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은 큰 바위가 아니라 작은 흙덩이라고. 흙덩이가 발에 묻어 차곡차곡 성실하게도 쌓여가는 것, 가난은 그런 것이다.


좋은 차와 나쁜 차의 결정적 차이는 운동성능이다. 차의 운동 성능을 말할 때 고속 주행성과 커브 안정성을 많이들 이야기한다. 고속으로 달릴 때 얼마나 안정적이냐, 급작스러운 커브를 만났을 때 얼마나 휘청이지 않고 빠져나가느냐가 그것이다.


 가난이 그렇다.
가난은 우리 인생에서 고속으로 달려야 할 때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무언갈 한창 배워야 하는 순간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들고 시기에 적절한 경험을 밟아 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학업이 그렇고 취업이 그러하며, 그 나이 때에 경험해봄직한 것들을 나중으로 미루게 만든다.

 

 커브길은 고난을 의미한. 재물은 고난을 부드럽게 피해 갈 수 있게 도와준다. 같은 수준의 커브길이라면 좋은 자동차는 회피 기동이 좋아 잠시 휘청이더라도 금방 원상 복구가 되지만 성능이 좋지 않은 차는 한참을 휘청거리게 되고 자칫하면 전복될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가난은
낮은 레벨에서의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든다.


 어느 한 유튜버 채널에서 흘러나온 말이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Simple is best라는 말은 디자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삶에서도 심플한 것은 최고의 가치이며 그 최고의 가치는 가난하지 않을 때, 어느 정도 축적된 부를 소유하고 있을 때 달성이 가능한 명제였던 것이다.


 우리는 심플하게 살고 싶지만 가난은 그런 우리를 비웃으며 복잡함의 세계로 끌고 간다. 식당에서 오백 원, 천 원 차이의 음식을 고민하게 하고 카페에 가면 취향 때문이 아닌, 오로지 내 주머니 사정에 의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게 만드는 선택을 하게 한다. 물건을 구매할 때는 수많은 비교를 통해 인터넷 최저가를 찾아 헤매다가 지치고, 수도요금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공과금 몇 천 원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도 저런 고민을 하며 알뜰하게 살려고 노력하겠지만, 알뜰한 절약 정신과 가난으로 인한 선택 유예는 정신적으로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나니... 모든 소비의 순간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며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가난하지 않았다면 거치지 않았어도 될 필요 없는 과정을 처리하느라 뇌는 금세 과부하가 걸리고 피로를 빨리 느끼게 된다. 이것은 다방면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가난은 낮은 레벨에서의 고민을 자주 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일상의 잔잔함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때로는 잔잔함을 유지하기는커녕 마음속에 폭풍우를 일으키기도 한다. 가족에게 선물이라도 하려는 순간이면 그 물건의 필요성이나 받는 사람이 얼마나 기뻐할지를 생각하기보다 가격을 먼저 생각하고 더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 나와 마주하는 그 순간, 물건의 가격이 내 마음의 크기가 된 것만 같아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워진다.  느끼한 산문집이라는 책에서는 가난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가난은 사랑을 어렵게 한다.

가난이 주는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아마도 사랑 앞에서 이지 않을까? 가난하다고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만 했다는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는 가난한 이의 외로움과 애통함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려보던 청사진을 뒤로한 채 오직 가난이라는 이유 하나로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난은, 세상 그 어떤 고난보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형벌로 기억되지 않을까.

 

  가난이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르상티망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니체가 명명한 개념인 르상티망이란 약자가 강자에게 갖는 원한, 증오, 질투심 등을 총칭하는 개념을 의미한다. 르상티망을 설명하기 위해 여우와 신포도 우화를 많이 인용하곤 하는데, 쉽게 말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사람이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자를 비난하는 것'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가난을 체화해버린 사람은 이런 감정을 갖기가 쉬운데 이것은 정말로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어 바퀴 꼬아서 생각한다던지, 성취를 위하여 노력하기보다 실패의 변명만을 끊임없이 구상한다던지, 성공한 사람들을 모두 적대시하여 스스로에게 다가올지도 모를 기회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리 걷어차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것이 되었건 발전적인 삶을 가로막는 불행한 습관이 몸에 배어버리는 것이다. 경제적인 가난이 마음도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가난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아픈 것, 두려운 것, 괴로운 것, 싫은 것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도록 잡아끄는 것이다.


 가난은 우리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일수록 단순하게 살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사용하며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에 몰두할 시간을  확보한다.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나 스티브 잡스가 목티에 청바지만 입고, 마윈이 같은 옷을 입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비록 가난이 우리를 복잡하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정돈함으로써 가난과의 대결에서 서서히 승률을 높여가는 게임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건 가난을 제압하고 우뚝 서있는 너와 내가 되길 바라며, 우리 모두 건승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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