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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09. 2020

쿨하게 살자

지나간 버스는 미련을 버려

 주유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기름을 넣어야 한다는 신호렷다. 어디 기름 넣을 곳이 없나 두리번거려본다. 저만치 앞에 주유소가 보인다. 휘발유 값 1300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갈까 말까 잠시 고민을 해본다.

 

 고민하며 머뭇거리던 순간에 그 주유소는 스쳐 지나가 버렸다. 할 수 없이 다음 주유소를 기다려야겠다. 다음 주유소가 나타났다. 휘발유 값 1400원. 이런! 조금 전에 지나쳐온 주유소보다 100원이나 비싸다. 왠지 저 주유소에 들어가면 내가 지는 것만 같다. 누구에게, 무엇에게 지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핸들을 주유소 방향으로 틀기가 영 내키지 않는다.


 리터당 1300원이라고 적혀있던 주유소를 보고 지나친 운전자는 다음 주유소에 1400원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표지판을 보고 결코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 아니 돌리기가 쉽지 않다. 지나간 1300원을 생각하며 1400원에 주유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꺼이 지불하기도 하면서 기름값 오십 원, 백 원은 왜 그렇게 아까워하는지 모르겠다.


 본인의 차는 주행거리가 50km 미만이면 주유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다. 불이 들어온 시점부터 이동 거리를 대략 계산해 본 후 이러다가 곧 멈춰버리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질 때까지 조금 더, 조금 더를 계속해서 외치면서 끝 모를 기다림을 유지해낸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가격으로 기름을 파는 주유소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결국 버티다 버티다 어쩔 수 없이 1500원에 속 쓰려하며 기름을 넣기도 한다. 언젠가는 이러다가 한 번 견인 서비스를 불러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택할 수 있었지만 결국 선택하지 않고 놓쳐버린 것. 그런 다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최선의 선택이라 여겨 결국 선택한 것이 전에 놓친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후회라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매일이 선택의 연속인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후회는 시시각각, 혹은 아주 먼 세월을 건너 찾아오기도 한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해서 그 자리에서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과감하게 카드를 긁은 후, 다음 날 티브이 홈쇼핑이나 스마트폰 핫딜에서 그 상품이 파격 할인을 때리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순간이면, 아니 파격 할인이 아니라 단 5퍼센트, 3퍼센트의 할인가만 확인하게 되더라도 나는 속이 쓰라린다.


 참다 참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사직서를 내고 당당히 회사에서 두발로 걸어 나온 뒤,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일도 우리 주변에선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는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일을 하다가 동시에 여러 가지 기회가 들어와서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인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다가 어렵게 선택한 결과가 결국 커리어에도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내가 날려버린 프로젝트가 대박이 나는 것을 눈물을 머금어 촉촉해진 두 눈으로 망연자실하며 바라봐야만 하는 일도 허다하다.


 배우들이 TV에 나와서 가끔 하소연 비슷하게 털어놓는 경우도 비슷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영화배우 정준호와 신현준은 가끔 함께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서로를 디스 하며 웃음을 준다. 정준호에게 동시에 몇 개의 영화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 고민을 하다가 신현준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는데 고심 끝에 선택한 영화는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나보냈던 영화마다 대박을 치더라는 이야기다. 볼 때마다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고쳤다가 틀린 시험문제라던지, 대학교의 전공 선택이라던지, 군대를 빨리 다녀올 걸 그랬다던지, 전세 말고 매매를 했었어야 한다던지, 소녀시대가 나왔을 때 SM 주식을 샀었어야 한다던지 하는 후회의 말들을 우리는 일상을 통해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은 더욱더 커진다. 지나간 것이 더 좋아 보이고, 유효해 보이고, 적합해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우리에겐 이미 환상과 망상이 씌워진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배우 이병헌은 이렇게 말한다.


추억은 가슴에 묻고
지나간 버스는 미련을 버려


 쿨하다. 멋지다. 하지만 현실에서 저 말을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의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어쩌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후회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좀 멋지게 살고 싶고, 쿨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나를 바라보며 스스로 자책하고 있을 우리들에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말은 어쩌면 위안을 주는 한마디가 될 수도 있겠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때의 선택이 틀린 선택이라고 생각되어 후회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선택 때문에 지금 당신의 인생이 맞아 들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 번 만들어 보자.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웃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이제 후회는 가슴에 묻고 지나간 버스는 미련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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