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변용은 자유롭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작가들은 죄다 나르시시스트가 아닌가? 이는 작가들이 자기애가 넘쳐 교만하고 시니컬한 태도를 보인다는 뜻에서 작가를 비판하고자 꺼낸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무엇을 경험하더라도 자신과 연관시키기 좋아하는 습성, 아니 좋아한다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글쟁이들의 숙명과도 같은 속성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딸려 올라오게 된 생각이다.
이론서나 실용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글, 혹은 책들은 작가의 생각을 토대로 쓰인다. 이는 인류 사고의 정수라고 하는 철학 역시 마찬가지다.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의 사상을 들여다보면 사상가들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 철학자의 삶과 경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다.
글은 한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는 수단이며, 보다 정밀한 체계를 갖춘 생각들은 세월의 검증을 거쳐 철학이 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들을 퍼올려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란 그런 의미에서 모두 각자의 철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글을 쓰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오롯이 홀로 자신의 것을 퍼올리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늘 외부의 모든 자극을 자신의 내면을 퍼올리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게 된다.
이는 작가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는 아닐 것이다. 작가란 본디 무엇이 되었건 끊임없이 어떤 생각의 덩어리들을 퍼올려야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 다만 스스로 퍼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마중물이 필연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무엇을 들어도, 무엇을 보아도 내 것과 연관시키려는 습성. 그것이 나르시시즘 환자와 다를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보통 나르시시즘을 좋고 이로운 쪽보다 나쁘고 해로운 쪽으로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작가와 나르시시즘을 연결시키고 나니 왠지 작가를 옹호하고픈 마음이 든다. 정말 나르시시즘은 나쁘기만 한 것일까? 작가의 존재의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을 세상에 토해내는 작가라는 존재가 세상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더욱이 글을 쓰는 행위가 작가 개인의 삶에 기여하는 바는 더더욱 적지 않다.
그런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생각한다면 나르시시즘에 좀 빠지는 것을 그리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물론 기여도나 결과에 따라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나르시시즘 또한 무조건 절대 악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존재뿐 아니라 어떤 개념도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선하고 절대적으로 악한 것은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뒤샹이 소변기를 뒤집어 미술작품이라 제시하며 기존의 미적 가치를 지닌 예술작품의 범위를 완전히 확장시킨 것처럼 개념이라는 것은 언제든 변화와 확장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누가 활용하느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관념들조차 때로는 예술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누구나 기존의 것을 전혀 새롭게 해석할 수도, 완전히 뒤틀어 표현할 수도 있다. 모든 것들에 반드시 각주와 설명이 필요한 이유이자 섣부른 판단을 잠시 보류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