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습관 들이기

글쓰기는 발상이 아니라 연상이다.

by 정 호
오랫동안 곪아 있던
여드름 덩어리를 짜냈다.


글 한 꼭지를 써낸다는 것은 마치 얼굴에 오래도록 고여있던 피지 덩어리를 짜내는 쾌감에 중독되는 것과 같다. 오래도록 묵혀 있던 것을 기어코 털어 냈다는 것, 그리하여 개운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더 이상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지만 곧 새로 짜낼 것은 없는지 다시금 찾기 시작한다는 것, 가끔은 기어코 없던 것도 억지로 찾아내어 짜내어야만 속이 시원하다는 것. 이러한 이유로 글쓰기와 여드름 축출은 비슷한 면을 공유한다.


머릿속에 영감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축복받은 사람들이야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니 글쓰기를 업으로 삼거나 글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 가운데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큰 고민을 덜어내는 행운을 쥐고 있는 것일까. 나처럼 글쓰기에 중독되어 무언가는 써내고 싶으나 쉽사리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글의 소재를 찾는 일은, 마치 움직이는 개미를 젓가락으로 집어내는 일처럼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간질거림을 선사한다.


이처럼 소재 고갈로 글쓰기 갈증을 느끼고 있던 터에 "글쓰기는 발상이 아니라 연상이다."라는 말은 오랜 세월 가뭄으로 고생하던 농사꾼이 마침내 마주하게 된 시원한 소나기처럼 나의 고민을 해소해줄 것만 같았다. 그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살포시 건드려주는 자극제가 나타나기만 한다면 곧장 연결시켜 글을 쓰면 되겠구나. 그렇다면 다방면에 경험을 쌓고 그 경험들을 의도적이고 습관적으로 글쓰기와 연결시키려 노력할 때 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다.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일이다.


바라보고 생각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텐데 역시 옛 선비들이 글을 짓고,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들려던 찰나 얼마 전 브런치에서 읽었던 한 에디터의 인터뷰 글이 떠올랐다. 전업작가보다 본인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글을 쓰는 작가들의 작품을 더 유심히 보려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전업작가는 비록 글을 유려하고 능숙하게 잘 써나갈지는 모르나 소재에 있어서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본업이 있으면서 부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자신의 업과 연결 지을 수 있는 플러스 알파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음... 일을 그만두면 안 되겠군.


갑자기 글감이 번뜩 떠오르길 기다리는 것은 나무 아래 누워 과일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 설령 과일이 떨어진다 한들 제대로 받아먹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코가 깨지거나 이가 깨질 것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소리다. 부지런히 눈과 귀를 굴려봐야겠다. 작가는 놀고먹다가 무언가 번뜩하면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역시 세상에 놀고먹는 일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해서 화재가 되었던 책 "90년생이 온다" 작가의 브런치 필명은 편집 왕이다. 그 책을 쓰기 위해, 90년생을 이해하기 위해 7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90년생들의 데이터를 모았다고 한다. 편집 왕이 되기 전에 그는 수집왕이었을 것이다. 깊이 있는 글을 써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런 자료 수집의 시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연상작용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삶의 면적을 넓혀야 하겠다. 내가 언제까지 글을 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넓혀둔 삶의 지점 지점들이 연결되어 글감의 자양분이 되어줄 테니 말이다. 그러려면 어서 코로나가 물러가야 할 일이다. 세계 경제와 국가 경제를 위해서 그리고 나도 글 좀 쓰게. 코로나야 어서 사라지거라. 훠이~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