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힘들 때는 도와주는 거야

두 개의 진실이 충돌할 때

by 정 호
아빠: 과자 다 먹었으면 정리해야지

아들: 나 혼자 다 정리해야 해?

아빠: 그럼 다 아들이 먹은 과자니까 아들이 혼자 정리해야지

아들: 힘든데

아빠: 자기 물건은 자기가 정리하는 거야

아들: 맞아 그런데 힘들 때는 도와줘야지 나 힘드니까 도와줘

아빠: 정리를 하나도 안 했는데 벌써 힘들어? 정리를 좀 하다가 힘들어지면 그때 도와줄게

아들: 힘드니까 쉬어야겠다

아빠:...?


일 년 전만 해도 말을 못 해 애를 태우던 녀석이 이제는 별 꼼수 부리는 말을 다한다. 들지도 않았으면서 힘들 것 같으니 도와달라는 말을 먼저 꺼내놓거나, 힘들지도 않았으면서 힘드니까 쉬어야겠다며 벌렁 드러눕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너털웃음이 난다.

제대로 된 습관을 잡아줘야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알아서 자기 할 일을 척척 해내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될 텐데, 버릇 나빠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잔꾀를 부리는 그 순간에는 피식하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기 어렵다.


"자기 물건은 자기가 정리해야 된다"는 진리값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남이 힘들 때는 도와줘야 된다"는 또 다른 진리값으로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합리화의 귀재라며 싫은 소리를 좀 해야 할지 자기 주관이 뚜렷한 녀석이라고 흐뭇하게 바라봐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진다.

하나의 진실을 가르칠 때마다 이처럼 또 다른 진실을 가져와 대응하는 일이 점점 잦아질 텐데 그때마다 무슨 말과 당위로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다. 상황에 따라 설명하기 좋게 딱 떨어지는 진실이나 아이의 반박에 오류를 짚어내기 쉬울 때도 있겠지만 그와 반대로 나조차 명쾌하게 납득하기 어려운 진리라 일컬어지는 생각들에 대해 아이가 물어오는 날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아이 키우는 일을 도 닦는 일에 비유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아이들이 사고뭉치에 말썽장이라서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를 닦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도를 닦듯 진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선하고 올바른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자식을 악인으로 기르고 싶은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올바름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올바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본 적 없는 부모는 결국 아이의 허술한 논리에 무너지고 만다. 진리라고, 올바르다고 들어왔고 어렴풋하게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아이의 입을 통해 뒤늦게서야 왜냐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에게 왜냐고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자꾸 왜냐고 물어야 한다. 그래야 단단한 답을 낼 수 있고 그제야 당당하게 아이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그래서 진리를 탐구하는 일이자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이를 제대로 길러낸 사람들은 그래서 득도의 경지에 이른다.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본 사람들이기에 그렇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