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거나 헤매거나
블라디미르: 이 세상에 고통을 당하는 게 너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아?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거지. 네가 내 입장이라면 무슨 소릴 할는지 보고 싶구나. 당해 봐야 알 거다
에스트라공: 너도 아팠냐?
블라디미르: 아팠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에스트라공: 목이나 매고 말까?
블라디미르: 나뭇가지에? 이 나무는 믿을 수가 없는 걸
에스트라공: 그래도 한 번 해보자.
블라디미르: 너 해봐라
에스트라공: 네가 먼저.
블라디미르: 아냐. 네가 먼저 해봐
중략
블라디미르: 그럼 어떡한다?
에스트라공: 아무 짓도 안 하는 거지. 그게 더 안전하니까
블라디미르: 그자가 뭐라고 할지 어디 기다려보자.
에스트라공: 좀 두고 보자는 거야
블라디미르: 가족들하고 의논도 하고.
에스트라공: 친구들하고도
블라디미르: 지배인들하고도
에스트라공: 거래상들하고도
블라디미르: 자기 장부하고도
에스트라공: 은행 통장하고도
블라디미르: 그래야 결정을 내리겠다는 거지
에스트라공: 그런데 우리는?
블라디미르: 뭐라고?
애스트라공: 그 일에서 우리의 역할은 뭐냔 말이다.
포조: 고도는 누구요? 날 고도로 잘못 보지 않았소.
블라디미르: 그건... 저... 그냥 아는 사람이죠
에스트라공: 알긴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랍니다.
블라디미르: 그러면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에스트라공: 저 같으면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요
포조: 그런데 당신들은 나를 그 사람인 줄 알았단 말이요.
에스트라공: 그건... 그러니까... 날이 어두워진 데다가... 피곤하고... 기운 없고... 기다리느라 지쳐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만 잠깐 그런 생각이...
에스트라공: 짐 말이오! 왜 그렇죠? 계속 들고 있으니, 절대로 땅바닥에 놓는 일이 없으니. 왜 그러냐고요
포조: 그건 내게 감동을 주려는 거요, 버림받지 않으려고. 저놈은 제가 훌륭한 짐꾼이라는 걸 내게 보여주면 내가 저를 앞으로도 계속 짐꾼으로 쓸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짐꾼이 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오.
블라디미르: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다 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뭐랄까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 넌 그게 이성이 잠드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 그 말은 나도 알겠다. 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성은 이미 한없이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너 내 말 알아듣겠냐?
에스트라공: 인간은 모두 미치광이로 태어나는 거다. 그중에는 끝내 미치광이로 끝나는 자들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