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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죽이고 싶은 아이

익숙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여자 아이들의 관계성

by 정 호

스포가 있습니다.


우리 반 아이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재미있게 읽었다며 한 권의 책을 건넨다. 해마다 교실에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몇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가끔 이렇게 자신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정말로 "재미"가 있어서 책을 추천할 때도 있지만 자신의 상황과 맞물린 이야기를 교사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추천이라는 말로 에둘러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아이의 상황과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 서둘러 추천받은 책을 읽어본다.


죽이고 싶은 아이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고등학교에서 서은이라는 한 여자 아이가 죽는다. 그리고 서은의 죽음에 주연이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두고 주연의 변호사, 프로파일러, 정신과 의사, 학교 근처 편의점 주인, 학원 선생님, 담임 선생님, 교감 선생님, 학교 지킴이, 서은과 주연의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 서은의 남자친구, 서은과 주연의 부모, 또 다른 아이들의 학부모 등 서은과 주연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의견이 끊임없이 교차되며 서은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가려내려 한다. 각자가 알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서은의 죽음을 맞이하여 더욱 날카롭게 제련되어 반대 의견을 겨눈다. 팽팽한 의견의 공방에 독자는 서은의 죽음이 자살인 것 같기도 타살인 것 같기도 하며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이 책을 읽어 내려가게 된다. 마지막 목격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목격자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명확하게 종결되는데 그 결과가 참으로 충격적이다. 서은의 죽음은 자살도, 주연의 살해도 아닌 목격자의 우발적 실수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연이 가해자로 지목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벽돌에서 발견된 주연의 지문 때문이다. 주연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가해자로 지목하고 방송에서까지 자신을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으로 낙인찍자 자신이 절대로 서은을 죽이지 않았다는 결백에 스스로 의심을 품게 된다. 이처럼 어떤 정황들은 때때로 너무도 명확하게 가해자로 특정되는 인물을 지목하고 있어 결백을 주장하는 당사자조차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죽이고 싶은 아이는 학생들과 함께 읽으며 온책 읽기 수업을 진행해도 좋을 것 같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학교폭력을 직시하고 의도와 의도 없음 사이에서 일그러지는 여자 아이들 간의 미묘한 관계성 같이 아이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벌어지는 인간관계 속 무수한 스파크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연과 서은은 이야기 초반 가해자와 피해자인 것처럼 그려지지만 책을 덮고 나면 오히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그 관계가 뒤바뀌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명확히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서은이 무조건 나쁘고 주연이 사실은 착한 아이였던 것 또한 아니다. 그 둘은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괴롭히고, 이용하고, 의지한다. 자신의 감정을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는 청소년 시절, 누구나 겪어왔고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겪게 될 무한히 반복될 불안과 불신으로부터 발생하는 이 갈등의 고리를 끊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그 원인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게 될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만으로도 학창 시절 친구 때문에 슬픔을 느끼는 일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으로 뒷담화의 대상이 될까 두려운 아이들.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며 손익계산에 따라 친구 관계를 맺는 아이들. 자식을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부모(하지만 그저 성실하게 살아오며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 부모). 평소 이미지가 결정적 시점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친구를 소유물로 생각해 제 멋대로 통제하려고 하는 아이. 그것을 알면서도 적당히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아이.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아이. 도서 "죽이고 싶은 아이"는 본질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과 정 반대의 전제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야기 속 아이들은 그 나잇대의 어설픔 속에 자신의 악함을 꽤 효과적으로 감추어내며 서로를 괴롭힌다. 그 교묘함은 청소년이라는 가장 안전한 방패 뒤에 숨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정도의 악랄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죽이고 싶은 아이는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일까. 서은일까 주연일까 목격자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방관자들일까,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일까. 어쩌면 제목을 통해 청소년기의 순수악을 드러내고자 했던 작가의 외침은 아니었을까. 교육 현장 르포를 한 편 읽은 듯한 기분이 들어 끝 맛이 몹시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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