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래 부르면서 갈까

어찌할 수 없을 때는 노래를 부르자

by 정 호
아빠: 학원 늦겠다 서두르자.

아들: 몇 분 정도 남았어?

아빠: 십 분 정도?

아들: 학원까지 십분 걸려?

아빠: 응 빠듯하겠다. 오분정도 일찍 가는 게 좋은데

아들: 항상 오분정도 일찍 가야 돼?

아빠: 그럼~ 약속시간 딱 맞춰서 가는 건 안 좋은 습관이야. 오분정도 일찍 가는 게 마음도 편하고 여유로워지니까 좋아.

아들: 그럼 우리 노래 부르면서 가자.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


학원 시간이 촉박할 때면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을 나서며 서두르자는 말만 반복적으로 내뱉게 된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아이는 되려 내게 여유를 가지라는 듯 노래를 부르며 가자고 제안한다. 아이의 한마디에 그래 뭐 그리 큰일이라도 났다고 그렇게 조급하게 재촉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며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약속시간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있다. 시간 엄수를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로 생각하기도 하고 스스로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며 그것이 성실함과 책임감, 한 인간의 됨됨이를 드러내는 하나의 척도로 생각하며 살아왔더랬다. 아이의 한마디에 갑작스레 가치관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매사에 같은 기준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잠시나마 환기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시간 단위로 일정을 쪼개 살았던 20대와 달리 40에 가까워진 이제는 무계획과 우연의 가능성과 그것이 가져오는 다른 종류의 철저한 짜임새를 긍정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는 이전 모습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빠 내가 노래 불러 볼 테니까 무슨 노랜지 맞춰 봐

음음~ 음음음음~ 음음음음~ 음~음~ 음음음음~ 음음~ 음음~


앞부분만 들어도 금세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 순간의 평화로움과 아이의 목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은 마음에 짐짓 모르는 채 무슨 노랜지 전혀 모르겠다며 조금 더 불러달라고 아이처럼 보챈다. 아이는 그것도 모르냐며 미소를 띤 채 흥얼거림을 이어간다. 아빠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재미있어서였을까, 그저 노랫가락에 흥이 올랐던 것일까, 아이는 학원에 도착하기까지 십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렇게 아기공룡 둘리 주제가를 반복해서 흥얼댔다.


아이와 웃음을 터뜨리며 놀 때마다 감사함과 행복감을 느다. 이렇게 육성으로 소리 내며 웃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얼마나 드문 일인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그 소중함이 너무도 애틋하다. 그래서 동시에 아련하다. 아이의 성장 이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이 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몇 년 안에 반드시 직면하게 될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일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어리석은 짓을 꾸만 반복하게 된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렇게 어찌할 수 없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이 행복할수록 미래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와 함께 한 짧은 산책 시간은 찰나처럼 지나간다. 서둘러야 할 때는 노래를 부르기. 아이와 웃을 때는 그저 신나게 웃기. 아이는 오늘도 두 가지 가르침을 남기고 즐겁게 제 갈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