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있어

현재를 살 수 있는 방법

by 정 호
아들: 100만 곱하기 100은 뭐야?

아빠: 천천히 한번 생각해 볼까?

아들: 음... 생각해 볼게...(가만히 생각하더니) 1억!

아빠: 우와 맞아 대단한데!

아들: 1억이 있으면 엄청 부자겠다.

아빠: 그렇지 엄청 부자겠다. 우리 아들도 나중에 커서 부자 돼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아들: 나 지금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있어.

아빠: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였는데?

아들: 갖고 싶은 레고도 다 있고, 엄마 아빠랑 맨날 놀잖아.


인간은 언제나 갖지 못한 것에 대해 갈증을 느끼며 살아간다. 늘 미래를 갈망하거나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살지 못한다. 그리하여 여러 철학자와 종교인 혹은 그와 비슷한 구도자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현재에 충실한 삶을 도달해야 할 이상향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이상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런 삶의 태도는 도달하기 쉽지 않은 일이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아간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우리네 삶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있다"는 아이의 말은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애써 철학과 종교를 배우지 않아도, 현재에 충실하려는 구도자적인 삶의 자세를 익히지 않았어도, 아이는 태초부터 현재를 살도록 빚어진 존재인 것처럼 오늘을 산다. 지금 먹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울어대고, 지금 놀지 않으면 다음에는 결코 놀 수 없다는 듯 떼를 쓴다. 좋아하는 친구와 헤어질 때면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여러 번이다.


아이가 현재에 충실한 이유는 어른과 달리 회상할 과거가 많지 않고 인지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먼 미래를 그려내기 어려운 탓도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분명 깨달음을 주는 지점이 있다. 젊은 날에는 불안한 마음에 앞날을 그리느라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바쁘고, 나이를 먹으면 흘러가버린 추억을 곱씹느라 과거를 들여다보는데 많은 시간과 마음을 소모한다. 젊음과 늙음을 나누는 기준은 모호하고 누군가는 젊은 시간을 오래 가져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어려서부터 늙어버린 상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할 테지만, 인간은 어느 시점에 반드시 양측 중 어느 한쪽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고 어떤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인 것처럼 끌려 당겨지는 인생에 괴로워할 때가 있다.


현재를 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내는 일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강력한 몰입의 시간이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그 몰입의 강도는 더 강하다. 그것은 그저 아이가 귀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눈을 팔면 위험한 상황에 곧바로 노출될 수 있을 정도로 아이의 생존에 보호자의 기여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즉각적으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탓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라는 존재는 부모에게 이미 선물인 셈이다. 가장 강렬한 몰입의 시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의무감에 숨이 턱 막히기도 하고, 그 고됨에 몸과 마음이 지쳐 실질적으로 소진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몰입을 경험하도록 촉진하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그렇게 너와 함께 할 때 우리는 가장 강렬하게 현재를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