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소설이 될 이야기
본 내용은 픽션입니다.
조용한 카페 안, 엄마와 아들 사이로 보이는 한 모자가 나란히 앉아 있다. 아들은 중학생인 듯 보이고 기술가정 문제집을 펼쳐놓고 있다. 엄마는 고전을 좋아하는 모양인지 "데미안"을 손에 들고 있다. 각자가 읽을거리를 들고 카페에 함께 오는 모자지간이라니,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 열심히 해 엄마는 책 읽을 테니까.
아들: 네...
(자리에 앉은 지 1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엄마: 아니 내일모레가 시험인데 이제 여기 공부하고 있는 거야?
아들: 다시 보고 있는 거야
엄마: 지금 몇 번째 보고 있는 건데?
아들: 세 번째 보고 있어
엄마: 그럼 머리에 다 들어 있겠네.
아들: 외우는 중이야
엄마: 뭐가 어려운데 엄마가 알려줄게 한번 봐봐
아들: 하이브리드, 수소, 전기, 디젤 차이가 뭔지 모르겠어
엄마: 그러니까 그건 말이야 하이브리드는 ~~
아이는 엄마의 설명을 들으며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 엄마의 이런 태도를 이미 오래전부터 보아온 탓에 체념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아들: 알았어 이제 엄마도 책 읽어
엄마: 이해했어? 이해한 것 맞아? 엄마한테 한 번 설명해봐.
아들: 정리 좀 할게요.
엄마: 아니 정리할게 뭐가 있어 내가 방금 다 말해줬잖아. 얘는 뭐가 어렵다고 이걸 몇 시간째 붙잡고 있어
아들:...
엄마: 네가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으니까 안 외워지는 거야.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 안에 외워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효율이 높아져. 지금부터 딱 30분 동안 한 페이지 다 외운다고 생각하고 공부해
아들: 알겠어요.
(1분 정도 지났을까)
엄마: 어디쯤 외우고 있니?
아들:...
엄마: 어디쯤 외우고 있냐니까? 왜 대답을 안 해~~
아들: 중간쯤 보고 있어요
엄마: 이해 안 되거나 어려운 거 있으면 말해 봐.
아들: 저 혼자 좀 볼게요.
엄마: 아니 네가 혼자 잘 못하니까 엄마가 도와주려는 거잖아. 황금 같은 주말에 니 공부 도와주려고 지금 같이 카페에 온 거 아니야. 내가 나 좋자고 이래?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 아니야.
아들: (한숨을 쉰다.)
엄마: 얘는 왜 한숨을 쉬고 그래 복 떨어지게? 연습장 어디 있니. 엄마가 문제 내줄 테니까 여기다 한 번 적어봐
아들:...
한참 동안 이어진 엄마의 질문 공세 속에서 아들은 공책에 무언가를 듬성듬성 적는다.
엄마: 에너지와 공업 파트가 약하네. 아니 내일이 시험이라는 애가 지금까지 공부가 이렇게 안되어 있으면 어떡해? 너 오늘 날 새야겠다.
아들: 지금 하고 있잖아요.
엄마: 아니 그러니까 미리미리 해놨어야지 이렇게 벼락치기로 하면 공부가 되냐고
아들: 벼락치기 아니에요. 일주일 전부터 했어요.
엄마: 일주일이 벼락치기지. 시험 보기 한 달 전부터는 시작을 했어야지. 얘는 뭘 잘했다고
아들:...
엄마: 차근차근해보자. 아직 안 늦었어 할 수 있어 우리 아들! 다시 한번 살펴봐.
(1분쯤 지났을까...)
엄마: 아들 이 빵 좀 먹어봐. 여기 빵이 진짜 맛있다.
아들:...
엄마: 좀 먹어가면서 해. 공부할 때는 당을 충전해 줘야 돼
아들: (마지못해 한 입 베어 물고 우물거린다)
엄마: 엄마도 옛날에 공부할 때 커피 많이 마셨는데 그때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이제는 커피를 마셔도 각성 효과가 전혀 없네. 잠만 잘 와.
아들: 응
엄마: 너는 엄마가 얘기하는데 반응이 그게 뭐니? 어디 보자 많이 외웠어?
아들: 엄마, 좀 조용히 좀 해. 집중이 하나도 안 돼.
엄마: 얘는 네가 어려워하니까 엄마가 도와주려고 그러지. 알았다 어디 한 번 혼자 잘해봐라. 네가 혼자 잘하면 엄마가 이러지도 않지
시간은 흘러 어느덧 모자가 카페에 들어온 지 두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 두 시간 동안 엄마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해댔다.
엄마: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우리 이제 집에 가서 공부하자. 곧 아빠 오실 시간이네. 아빠랑 같이 공부하면 더 집중이 잘 될 거야.
아들: 네...
엄마: 빨리빨리 가방 정리하고, 얘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굼떠. 너 책상 정리는 잘하는 거지? 공부하려면 책상이 깨끗해야 하는 거야.
아들: 네...
엄마: 가자 가는 동안 엄마랑 오늘 공부한 거 이야기하면서 가자. 입으로 말하다 보면 암기한 것도 정리가 되고 진짜 네 것이 될 거야.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진짜 공부야. 제일 좋은 방법이 남한테 가르치는 거야. 엄마한테 한 번 가르쳐 줘 봐
아들: 네...
타인을 위하는 척하면서 본인의 결핍을 채우려는 사람이 있다.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는 멋진 부모라는 자기 모습에 취해 정작 아이의 공부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부모가 있다. 알을 깨고 나와야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저 여자는 데미안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할 지 궁금해졌다.
답답하고 안쓰럽고 기괴한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책을 읽어내려 집중하던 나에게,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말하는 저 맹모의 목소리는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모자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고요함에 감사하며 다시 한번 책에 집중하려던 찰나... 세 칸 정도 떨어진 테이블에서 유치원생인 듯 보이는 어린아이와 나란히 앉은 채 어떤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또 다른 어머니의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천천히 내 귀에 꽂히기 시작한다.
맹모: 이건 나무 목 자야. 빨리 외워! 아니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