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급했듯이
일요일마다 시어머니댁에 갑니다.
시어머니와 둘이 대화를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합니다.
또래와는 생각도 문화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고 유추하기, 상상력이 다 동원돼야 해요.
시어머니와 대화를 자주 나누다 보니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첫째, 시어머니는 상대방의 말을 무자비하게 자르고 들어옵니다.
사무라이 저리 가라, '스타워즈'의 제다이처럼 검을 휘둘러 맥 커터 해버립니다.
예를 들어 오늘 날씨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떠드는데, 갑자기 운동 다니시는 수영장 할머니들 얘기를 꺼내어 말을 잘라버립니다. 엥? 수영장요?
수영장 할머니들이 나눠먹으려고 커피도 타오고, 요구르트도 사 오고, 때로는 김치까지 싸와서 나눠 주신대요. 저는 노트북가방만 메도 어깨가 빠질 것 같은데, 나눠 먹으려는 할머니들의 정신이 놀랍기만 합니다.
물론 얻어먹기만 하면 험담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덧붙이시면서요.
오... 할머니들은 참 정이 많으시네요, 대화흐름이 끊긴 것도 잊고 맞장구를 치는 순간, 또 갑자기 누구네 손자가 재수를 하네, 어느 대학에 들어갔네 줄줄이 알려주십니다.
누구 할머니, 누구 손자요?
현란한 드리블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입니다.
제가 아는 할머니도 있지만 첨 듣는 분의 이야기도 있어요. 머릿속으로 '이 집은 대학 다니는 손자, 손녀가 있으며 저 집은 아들이 오십 넘었는데 장가도 안 갔고, 요 집은...' 정리도 하기 전에 또 새로운 이야기를 날리십니다. 아이고야...
중구난방으로 날아오는 정보가 엉켜 항상 혼돈의 도가니였죠.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데도 반복학습(?)의 힘인지 어느 집 할머니는 장가 안 간 아들과 살고, 누구 할머니는 할아버지 병시중을 10년 가까이했으며 어떤 분은 과부로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는 속얘기까지 알게 됐습니다.
예전엔 그런 대화 흐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회사일로도 머리가 항상 터져나갈 것 같았거든요.
시간이 흘러 시어머니의 현란한 드리블을 받아치게 되었고, 때로는 안 들으면서도 반응하는 경지가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누구 얘긴 지 모르겠지만 감으로 짚어내는 경지까지도.
둘째로 시어머니는 주어를 생략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참 얘기를 쏟아내셔서 끄덕거리며 듣다가 "근데 누구 얘기예요?"라고 묻기 일쑤입니다.
머릿속으론 이리저리 유추는 하죠.
응, 영숙이네 얘기구나... 어, 아닌가? 경기도로 이사 간 집이면 동우네? 누가 남편 없이 장사를 하더라? 그러다 누구 집 얘긴지 물어서 맞혔을 때의 쾌감이란 캬아.
못 맞히면 시어머니도 상대의 이름이 안 떠올라 둘이서 스무고개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어머니를 비롯한 할머니들은 실제보다 부풀려 왜곡하여 말하는 , 전문용어로 '뻥'이 세신 것 같습니다.
주로 자식, 손자 자랑 배틀 때문에 생기는 일인데요,
어떻게 된 게 주변 할머니들의 자식, 손자들은 다 공무원, 대기업에 다니고, 돈도 잘 법니다.
우리 집만 부자가 아닌 것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논리적인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지인분들의 자식, 손자에 관해 세부사항을 물어보면 뭔가 수상한 구석들이 드러납니다. 자식이 공무원이라는데 평일 대낮에 항상 아이를 보고 있다던지 등등.
'마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
법원에 온 것도 아닌데, 따질 필요가 있나요?
자신을 증명해 보일 수단이 별로 없는 할머니세대에서 자식과 손자는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러니 자랑 배틀에 열을 올리는 것 아닐까요?
나이가 먹을수록 저도 깜빡깜빡합니다.
대화 중에 해야 할 다른 얘기가 생각나는데, 상대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간 잊어버릴 것 같아요. 이 말을 해야 하는데 마음은 급하고,,,
그러니 맥을 끊고, 주어도 생략하는 시어머니가 차츰 이해됩니다.
이해할 수 없던 시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무채색인 도시에 '안톤 체호프'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걸 알게 됩니다.
필력이 부족해 명작을 못 쓰는 것이 한이네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또래와의 대화도 좋지만 다른 세대와 얘기를 나눌 땐 닫힌 문이 하나 열리는 기분이 듭니다.
피해 버렸다면 몰랐을 알록달록한 세상 속으로 일요일마다 들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