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삼식이가 됐습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니지만 변동이 심한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겪는 일입니다.
갈수록 대범해지는 건지 무신경한 건지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 고 생각합니다.
헌데 이번에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주말부부를 1년한 후라 그런가요.
아, 잘 잤다... 상쾌하던 아침에 전자담배냄새가 나는 겁니다. 전 예민한 여자인데 반해 남편은 둔감한 남자입니다. 아침부터 기분이 팍 상하는데, 아침밥은? 하고 삼식이가 묻네요. 눈치는 개가 물어갔을까요?
주말부부였을 때도 같은 질문을 했었죠.
"아침밥은?"
그때는 곧 지방 내려갈 텐데, 가서 못 챙겨 먹을 테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었죠. 같은 아침, 같은 남자인데 직장이 없으니 애물단지로 느껴지는 걸까요?
집에 갑자기 인테리어와 맞지 않는 움직이는 가구가 등장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들 참 불쌍합니다. 가족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다가 이른 나이에 퇴직하면 갈 데도 없고, 오란데도 없죠.
이사 갈 때 두고 가는 신세가 안되려면 마누라님 눈치 겁나 봐야죠. 옛날 아버지들처럼 가부장적으로 굴었다간 이혼각입니다.
그렇지만 고용이 불안정해진 세상에서 남편들이 대접받으려고만 든다면 정말 이사 갈 때 두고 갈지도 모릅니다.
밖에 나갔다 들어왔는데 집에 가구처럼 앉아있는 남편을 보니 숨이 턱 막히네요.
은퇴한 남편들이 삼식이 취급을 받는 건 돈도 안 벌어오면서 매끼 밥 달라고 요구하는데 따른 피곤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밥 하는데 드는 수고가 얼마나 큰지 앞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마누라님이 날 위해 밥 차려주는 수고를 한다면 음식쓰레기도 버리고, 좋아하는 간식거리도 갖다 바쳐야 사랑받지 않을까요? 결혼생활엔 눈치가 중요합니다.
정 일하기 싫으면 입으로라도 수고했다, 참 맛있다,라고 항상 나불거린다면 속으론 '물에 빠져도 주둥이만 뜰 인간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해주는 게 사람 마음이죠.
제가 아는 분의 남편은 사모님 음식솜씨가 뛰어난데도 매일 먹을 거 없다, 맛없다를 시전 해서 열받게 한대요. 나처럼 음식 못하는 사람은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더라고요.
결론은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측은지심을 느낄 줄 알고, 남편은 아내에게 눈치 있게 굴면 꼴 보기 싫은 '삼식이 스트레스'에서 서로 벗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다행히 남편에겐 눈치가 있고, 저는 계속 불쌍하다를 속으로 되뇝니다. 울끈불끈 뭔가 올라오려고 할 때마다 '측은지심 주문'을 외우는 거죠.
그 주문덕인지 세월이 흐를수록 관계가 편해지는 중입니다. 속 넓은 인간이 아니기에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긴 결혼생활을 지탱해주는 힘은 사랑보다 안쓰러워하는 마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