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야 가치 있는 기억이 된다

by 선홍

영원할 줄 알았는데 아닌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는 중이다. 반백 살, 지천명의 나이에.


하늘의 뜻을 알게 되기는커녕 스스로가 아직도 똥오줌을 못 가리는 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엄마라는 존재가 아픈 순간, 독립한 지 수십 년이 지났고, 내 가족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길 잃은 아이 같은 마음이 드는 건 뭐니.

해외여행을 같이 가장 많이 다녔던 사람이 엄마의 엄마, 즉 네 외할머니였어. 북유럽, 서유럽으로, 미국으로... 겁도 없이 둘이서 참 많이 돌아다녔더라. 스마트 폰이 없어 해외여행 안내 책자 한 권 달랑 들고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도 했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다신 안 볼 것처럼 싸우기도 했어. 그래 놓곤 또다시 같이 길을 떠났더랬지.


엄마랑 같이 다녀주는 딸이 어딨냐, 나 같은 효녀가 없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누구 덕에 여행을 떠나게 된 줄도 모르고 말이야. 그때는 엄마랑 다니기 좋은 코스를 혼자 고심하며 짜야하지, 여행지 가서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너무 긴장하고 다녔더니 고생만 잔뜩 한 것 같았는데 돌아보니 참 잘 다녀왔다 싶어. 지금도 사골 우려먹듯이 해외여행때 고생했던 얘길 나누며 낄낄대거든. 외할머닌 이젠 여행갈 체력이 되지 않는다.

여행이란 게 돈도 있어야 하지만 체력이란 게 없으면 갈 수가 없다 보니 나이 제한이 엄연히 존재하더라고.


그렇게 오고 가고, 서울에서, 부산에서 서로 만나는 일이 영원할 줄만 알았어. 평생 힘 좋고 잘 싸우는 엄마로만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시면서 갑자기 할머니가 되셨더라. 물론 공식적으론 손자, 손녀가 여럿이니 오래전에 할머니가 되셨지만 진짜 ‘할머니’ 말이야.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할 것 같은 나이 든 느낌의 엄마를 만나고 흠칫한 적이 있어.


빨리 걷는 엄마를 따라가기 바빴고, 나란히 걷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병원을 가기 위해 서울역에 내린 엄마와 오랜만에 만난 날, 같이 걷다가 당황했어. 한 걸음씩 내딛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기다려줘야 했거든. 엄마의 속도에 맞춰 걸어보니 참 답답하더라. 생각해보니 나도 너희들 걷는 속도를 못 따라가잖아. 중년의 속도에서 언젠가 노인의 속도로 걷게 되겠지.

자꾸만 느려지는 엄마와 같이 걸을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았음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그래서 그런지 건강한 할머니와 나이가 든 딸이 같이 골목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참 부러워. 엄마랑 딸이 장바구니를 든 채 수다 떠는 모습도 보기 좋고. 서로 건강하고 가까이 살든지 해야 가능한, 그런 순간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돼.


우리에게도 그런 별것 아니지만 소중한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20년? 길면 30년?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도 주말 저녁을 집 밖에서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런 추억들을 늘이고 싶어서 그래. 그 순간들이 점처럼 많으면 많을수록 남겨진 그림이 더 정교하고 또렷해지지 않을까.


네가 아기였을 때, 3,4살이 될 때까지 참 손도 많이 가고 힘들어서 ‘어서 자라라’하고 속으로 빌었었어. 너 혼자 기저귀 갈고, 먹고, 씻을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때도 영원한 건 없다는 것을 잘 몰랐나 봐. 손은 많이 가지만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예쁘고 재롱이 넘치는 시기는 생각보다 짧았고, 이젠 사진 속으로만 남아 있잖니.

"네가 정말 이렇게 귀여웠냐?"하고 물어볼 때가 있잖아.


결국 힘들었던 기억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깊게 남겨져 가치 있는 순간으로 남겨진다는 것을 깨달았어. 힘들다고 피하지만 말고 더 많은 ‘힘듦’을 만나고 경험하길 빌어. 딸에게 힘들어보라고 권유하는 나쁜 엄마 같네. 하하.

우리 열심히 힘들어보자.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