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소환

by slow snail

이팝꽃이 핀다.

팡팡 팝콘이 터지듯 이팝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팝꽃은 어머니집 가는 길이다.

어머니집 가는 1~2킬로 남짓되는 왕복 4차선의 도로는 대구에서도 이팝꽃이 이쁘기로 아는 사람들은 아는 도로다.


결혼 15년동안, 이팝꽃이 피는 봄에 그 도로를 달린것보다,

최근 4년동안 그 길을 달린 횟수가 많다.

어머니는 치매였고, 남편과 나는 교대로 치매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그 길을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올 봄,

그토록 아름답던 이팝꽃 도로를 나는 달리지 않는다.

끝날것 같지 않던 돌봄은 지난 겨울 초입 갑작스런 어머니의 소천으로 끝을 맺었다.

언젠가는 그런 끝이 올 거란걸 알면서도 실감나지 않던 그 끝에 장례를 치뤘다.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나의 발이 꼭 한쪽 옭아매여 있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자유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아주 자유롭지 않았고,

불편한건 아니지만, 아주 편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돌보고 남는 시간에 맞춰 이루어지던 일상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중심이 되었다.

얾매일 것 없이 새 일을 시작하였고, 자유로움 가운데 삶이 지나간다.


어머니는 남편없이 4대 독자인 아들을 길러냈다.

그의 입에서는 '우리 아들'이란 말밖에 나올수 없을 만큼 아들이 다인 삶이었다.

이 구조속에서 최선의 관계는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었고, 우리의 관계는 그 마지노선에 있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 힘든 것은 몸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사람으로서의 도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음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 마음은 늘 가시처럼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집 초인종 앞에서 , 제발 미워하는 마음만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게 어머니를 돌보는 내 최선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과 시간의 불편함들 시간이 증발되어 버린 봄이다.

올 봄, 어머니를 돌보러 가는 길 대신 나의 일을 하러가는 출근길에 풍성하지 못한 이팝나무 몇 그루들이 보였다.


이팝나무는 어머니집 가는 길이었는데....


찬란한 순백의 이팝꽃보다 더 아름다울 천국의 어디에서 어머니는 올 봄 복하시겠지.

살갑지 못했던 며느리의 돌봄 대신 자유로운 영혼으로 영원한 쉼을 누릴 어머니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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