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시작한 것이 지난 4월이었다. 만 9개월을 꽉 채운 시간이다.
가끔 병원에 들러 질료를 볼 때면 더 나빠지지 않는 지금이 최상의 상태라고, 아주 좋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묘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잘 유지되어 감사한 마음과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돌봄의 무게감으로 두 마음을 오가곤 한다.
어떤 마음이든 하루 시작은 어머니의 약을 챙기고 안녕하신가를 체크하러 가는 일로 시작된다
처음 얼마동안 물으시던 손주들에 대한 이야기도 이젠 희미해지고 나를 며느리가 아닌 공부하러 오는 사람이라 여기시는 듯하다. 집안일을 끝내고 둘이 앉을 짬이 있을 때 늘 책을 펴곤 하는 내가 어머니의 인상에 깊이 남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공부하러 오는 사람이다.
공부하러 오는 나는 오자마자 식사를 확인하고 아침약을 챙긴다. 어질러진(나름대로 어머니의 정리가 되어 있지만) 주방을 최대한 어머니의 룰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정리를 한다. 내 기준에서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도 내가 나온 뒤 다시 손을 대신다. 당신의 주방에 손을 대는 게 불편하다는 것이다. 냄비도 그릇도 깨끗한 거 좀 쓰셨으면 좋겠는데, 몇 십 년을 썼는지 알 수도 없는 기름때 가득한 냄비를 절대 내려놓지 않으신다.
처음 어머니를 케어하면서 그동안 묵은 먼지며 낡은 세간들을 정리해서 버릴 것을 한 곳에 모아두고 남편의 검열을 요청한 후 정리를 좀 부탁했다. 아무리 낡아도 내 마음대로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다음날 검열을 하러 간 남편이 내놓은 냄비와 그릇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 사이에 현관에 내놓은 손때 묻은 세간을 어머니가 다시 싹 가지고 들어가 정리를 해 놓으신 것이다.
그 후로는 아무리 낡고 덜거덕 거리는 냄비며 그릇들도 손을 대지 않는다.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상태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두껍고 값비싼 냄비가 있음에도 가볍고 손쉽게 요리할 때 유독 손이 쉽게 가는 것들이 있다. 아마 어머니도 그러하시겠지.
손주에 대한 기억을 잃고, 며느리에 대한 지각이 없어지고,
이제 가끔 벽에 크게 적어놓은 아들 전화번호를 보며 "00 이는 누구길래 벽에 저렇게 크게 적어 놓았냐"라고 물으시곤 한다.
"아들이에요."
"아... 아들이구나."
아들이 있는 것과 아들이 거의 매일 들여다봐도 기억을 못 하시는 어머니는 늘 외롭다.
당신은 왜 이렇게 이 집에 혼자 있으며, 남편이나 아들도 없느냐고 하신다.
그래서 하루에도 그 기억 못 하는 아들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하신다.
외로움을 호소하기 위해서....
이왕 잃어가는 기억 어디쯤 좀 행복하고 따스한 기억 언저리에서 멈출 순 없을까?
그렇다면 치매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텐데...
왜 어머니의 기억은 외롭고 슬픈 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을까...
나는 일상 가운데 주로 어떤 기억을 주로 떠올리지?
나 역시도 좋았던 기억보다 좋지 않았던 기억을 침소봉대해 불안과 염려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