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재 Dec 21. 2018

도경수, 그리고 영화 '스윙키즈'

확신의 천재, 그 천재성에 대하여

  2013년 8월에 엑소가 '으르렁'을 발표했을 때, 나를 포함한 수많은 가요 팬과 관계자들은 그 뮤직비디오를 보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탄식을 뱉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아, 좆됐다'. 이것은 방심하는 사이 우리 모두의 허를 찌르다 못해 찢어버린 탁월한 정공법에 대한 감탄이자, 곧 그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저 앞선 위치로 우리를 제치고 달려 나갈 것을 예감한, 아주아주 안 좋은 예측으로 인해 나오는 탄식이었다. 이 해일이 곧 우리 모두를 쓸고 지나갈 것이라는, 경외에 찬 비명이었달까. 이후 벌어졌던 일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아이돌의 판세는 '엑소'와 '비-엑소'로 양분되었고, 이 판세는 무려 4년여 동안 이어졌다. 아직도 엑소와 그 멤버들을 보면 '으르렁 시절'이 떠오르는 이들도 상당수일 것이다.


EXO "XOXO Repackage" 앨범 티저 이미지


  엑소의 메인 보컬인 디오, 배우 도경수는 신드롬을 일으킨 바로 다음 해에 연이어 드라마와 영화에 한 편씩 출연했다. 팀의 커리어가 최상에 달해있을 때, 그는 거의 동시에 도경수로서의 변신을 시작한 셈이다. 대형 팬덤을 거느린 '인기 아이돌', 그것도 메인 보컬이라는 중차대한 역할을 해내고, 곧바로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주는 '신진 배우'가 되는 도경수의 커리어는 너무 이상적이라서 감히 부러워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비-엑소'적 입장에서 '으르렁'이 '이쪽도 할 수 있었는데 아직 하지 못했던 것을 먼저 선수 쳐버린' 것에 가까웠다면, '도경수'는 '똑같은 기회를 이쪽에 준대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그 길에 무던한 노력과 그 이상의 천운이 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우리가 아티스트에게서 보게 되는 탁월함은 기획 단계에서 선험적 요소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얻을 수 있다. 쉽게 말해 '프로'가 만들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아티스트로부터 느끼는 신뢰도는 짧지 않은 시간을 반드시 담보해야 한다. 신뢰를 쌓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우리는 그에게서 '천재성'을 보았다고 말하게 된다. 도경수에게서 천재성을 발견했다는 평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이유다. 도경수는 세간이 '아이돌 연기자'에 대한 의심을 품을 아주 잠깐의 시간조차 주지 않고 아주 빠른 시간에 '배우'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아이돌이라는 것을 긍정도, 부정도 할 필요가 없이 온전한 한 명의 배우가 될 수 있었다. 대중 스스로도 그런 논의를 고루하게 느끼고 굳이 질문하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그가 충분히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여왔기 때문이리라.



  도경수가 맡은 '스윙키즈'의 로기수는 전쟁 이전 다니던 학교에서 무용으로 수석을 차지할 만큼 천재적인 댄서로 묘사된다. 잭슨(자레스 그라임스 扮)과 로기수가 서로의 춤 실력을 확인해나가는 서사는 '스윙키즈'의 큰 축을 담당한다. 잭슨을 화자로 하여 로기수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관객, 즉 대중 일반이 도경수의 천재성을 발견해냈던 경험과 결을 함께한다. 그래서 로기수의 천재성을 인정한 잭슨이 그에게 '카네기 홀'을 외치는 장면은 결코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서는 꿈을 말함에도 그것이 허황되기보단, 언젠가, 의외로 꽤 빠른 시간 안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목표처럼 느껴진 것은 관객 모두가 로기수의 천재성을 인정했고, 영화가 그것을 충분히 잘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이 문단은 영화의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이 참사로 끝나는 것은 관객에게 무척이나 큰 허무감을 준다. 이것은 전쟁 중인 한반도에서 겨우 포로 신세인 로기수와 스윙키즈가 브로드웨이의 카네기 홀에 서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상관없다. 성취에 대한 확신은 경험적인 탁월함보다 직관적인 천재성에 매료되었을 때 더 강하게 드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에 남은 성공한 아티스트 중 상당수가 바로 이 말도 안 되는 확신에 의해 발견되었고, 확신에 찬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명작을 남길 수 있었다.


  그래서 사실 '스윙키즈'의 흥행 여부는 도경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극장가를 점령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잇는, 음악 퍼포먼스를 테마로 하는 영화라는 것, 히트작을 여럿 발표했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 원작인 뮤지컬 '로기수'의 팬들이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 등, 흥행 여부를 분석할만한 요소는 도처에 있고, 이에 기대어 이 영화가 얼마나 탁월하고, 그 탁월함이 얼마나 빛을 보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의 관객 대부분은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배우 도경수의 천재성을 확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낄 공산이 크다.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아이돌, 그것도 메인 보컬인 디오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리듬감과, 배우로 발굴될 수밖에 없도록 타고난 그대로 반짝이는 도경수의 눈빛이 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