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D컵이다. 엄마는 E컵이다. 분유 없이 완전 모유(완모)로 우리 남매를 키운 엄마는 경력자의 여유와 자부심이 충만했기 때문에 딸인 나의 완모 또한 의심하지 않았다. "젖병 뭐 쓸 일 있겠어? 우리 애들은 끼니마다 컥컥 댔어~ 어휴 넘치게 먹고 자랐지"라는 말을 식탁 앞에 앉은 사위에게 했을 정도로. 그러고 보니 뭐, 밥 먹다가 밥 먹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네.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 예상과는 달리 나는 모유수유를 한 달 만에 끝냈다.
생후 1일차
출산 후에 알게 된 건데 아이들도 사력을 다해 모유를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먹는 동안 얼굴도 빨개지고 체온도 올라가고 굉장히 피곤하고 힘든 일이라고. 그에 반해 젖병은 비교적 손쉽고 빠르게 쫍쫍나와서 조리원에서 쓰는 무르디 무른 꼭지의 젖병을 쓰다가 엄마 꺼를 만나면 아이들도 당황한다고 한다.
내 아이는 예정일보다 한 달 빨리 2.6kg으로 태어났다. 신생아실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누워있으면 확연히 작았기 때문에 멀리서도 한눈에 찾을 수 있었다. 몸이 워낙 작아서였는지 빠는 힘도 약했고 오래 물고 있지도 못했다. 대외적으로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일찍 단유 했다고 하고 다녔지만 사실 다 명분이고 내가 하기 싫었다.
"모유수유는 얼마나 하실 예정이세요?"
"4주 차에 단유 했는데요."
"아이고, 어머님 애한테는 평생에 한 번인데 좀 참아보시지."
지금까지 나의 가슴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이제부터는 기능적 쓰임을 다해야만 가치롭다니. 내 몸은 아기띠였다가 보행기로, 이동식 침대였다가 식탁의자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신하며 견마지로의 헌신을 다하고 있는데, 사지육신 중에 딱 하나 가슴의 일부 기능이 한시적으로 조금 모자라기로소니 내 모성까지 평가절하 받아야 하나?
처음부터 하기 싫었던 건 아니다. 내가 있던 조리원은 엄마의 입원실과 신생아실이 구분되어있고 간호사분들이 애기 밥시간이라고 전화를 주시면(수유콜) 수유실로 뽀르르 달려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이 수유콜이 아침 6시에도 오고, 저녁 9시에도 오고, 수유 다녀온 지 한 시간 만에도 오고, 밥 먹다가도 오고, 씻다가도 왔다. 나는 자다가도 꼬리에 불붙은 암탉처럼 뛰어나갔다.
생후 3일차 2,6kg시절
다른 애기들 반토막만 해가지고 잘 빨지도 못하는 내 새끼가 안쓰러워서 한 번이라도 더 가서 안아주고 싶었다. 내 온기라도 나눠주면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콜 없는 시간에는 유튜브를봐가며 이렇게 하면 쉬울지 저렇게 하면 잘 물지 자세 연습도 했었다. 그리고 유축기와 끝없는 유축 유축. 조리원이 천국이라는데 나는 밥 챙겨 먹을 시간도 없었다. 퇴근한 남편은 손도 안 댄 간식과 식사 접시가 쌓인 걸 보고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렇게 준비해서 수유실에 들어가도 제대로 물리기는커녕 아이를 품에 안고 멍청하게 앉아만있는 시간이 태반이었다. 지가 낳아놓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내 꼴이 한심스러웠고 이 상황이 너무 무력했다. 엄마는 손 만대도 콸콸콸이었다는데, 나는 유축기를 한 시간 넘게 붙잡고 있어도 많아야 80ml였다. 커피믹스 타마시는 종이컵 하나가 192ml라는데 이렇게 가성비가 떨어져서야. 이래서 옛날 사람들이 가물치를 고아먹고 소뼈를 삶아먹고 그러는 거구나.
이걸 누구 코에 붙이나 싶게 뽑아낸 초유
해 본 사람들은 첫 애니까 그럴 수 있다고, 먹어 버릇하면 잘 나올 거라고 토닥여주었다. 그 말에 힘을 얻어 전동유축기와 모유 저장팩을 샀다. (무엇보다 빠른 소비력) 하지만 저절로 되는 것은 없더라. 알아서 크는 아이는 세상에 없었다. 제대로 물지도 못하는 상황은 집에서도 여전했고, 오히려 배앓이를 하기 시작했다. 저녁 아홉 시부터 짧으면 한 시간 길면 세 시간동안온 힘을 다해 쉬지도 않고 울어댔고, 하루도 빠짐이 없었다. 온몸이 시뻘게진 채로 숨이 넘어갈 듯이 울어재끼는 아이를 보며 이러다 큰일이 나겠다 싶었다.
작고 빨간 여린 생명
배앓이를 막아준다는 타이틀을 건 대부분의 아이템을 사들였다. 분유도 조금 더 비싼 걸로 바꿨고 젖병도 새로 샀으며, 분유 제조법을 바꾸려고 분유 포트도 더 샀다. 역류방지 쿠션과 배개도 샀다. 돈이 들어가니 통곡의 밤은 다소 짧아졌고, 역시 육아는 현질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태평해진 저녁을 뿌듯해하며 신나게 모유수유를 다시 시도한 그날부터 배앓이가 또 시작됐다. 625가 터진 이유가 방심해서라더니, 전쟁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날들이 몰아쳤다. 팔뚝만한 내 아들의 비명을 하루에 두 시간씩 꼬박꼬박 들으며 나는 멘탈이 터져나갔고, 지금도 환청에 시달린다. 설거지를 할 때도, 티비를 볼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심지어 혼자 외출을 하는 운전 중에도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귀에 때려 박혀 빠질 생각이 없다. 나는 그때 단유 했다.
이제는 젖병마스터
눈 감고 귀 막고 시간을 견디다 보니 배앓이의 언덕을 넘게 되었다. 왜 잦아들었는지 뾰족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어이없게 끝났다. 그저 버티다 보니 아이는 조금 자라 있었다. 평생 모유를 1000ml도 못 먹은 아이 치고 굉장히 건강하며 평균적이다. 영유아 검진에서 보니 96 분위였다. 우리 사이의 애착도 문제가 없어서, 8개월에 접어든 요즘은 내 그림자보다도 더 오래 나에게 붙어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분유 정말 잘 나와요. 그리고 저는 완모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세상 모든 맘들이 각자의 정답 속에서 행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