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비평 TV언박싱 33. <여고추리반2>
고백하자면 <여고추리반> 시즌2는 꽤 무서웠다. 날이 어두워지면 보던 것을 얼른 끄고 다음날 아침에야 이어 보기 일쑤. 시즌2는 시즌1보다 더 많은 인물 퍼즐을 맞춰나가야 했다. 농약사건에 연루된 세 가정의 아이들이 누구인지, 학교에 없다는 선우경은 누구인지, 가면을 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인지, 용PD는 믿을 만한지. 채워 넣어야 할 빈칸이 너무 많았고, 악행의 근원이 누군지 찾기 전에 인물 관계도부터 완성해야 했기에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웠다. 시즌1에서 선생님들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이미 큰 충격을 받아 경험적으로 경계심이 먼저 들었다. 공포심이 최고조에 달하던 그때, 몇 가지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태평여고 안에 녹아든 제작진의 무의식이다.
이야기는 여고추리반 5인방이 태평여고로 전학가게 되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마주하며 시작한다. 설립자 초상화에 칠해진 낙서 사건부터 교사 단체 식중독 사건까지. 문제는 모든 사건에 태평여고 학생들이 연루돼 있다는 점이었다. 5인방은 곧 학교 학생만이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급식창고'가 있고, 이 커뮤니티의 운영자인 ‘렛미모'가 모든 사건을 계획하고 주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상한 건 렛미모의 정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면서, 모든 아이들이 무조건 그를 신뢰하고 대부분의 결정을 그에게 최종 확인받는다는 점이다. 5인방은 반장을 통해 어떻게 렛미모가 학생들로부터 무한 신뢰를 받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듣게 된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몰카가 발견되었는데 학교 선생님들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넘겨버렸고, 그때 렛미모가 몰카범을 찾기 위해 커뮤니티를 개설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화장실에 역으로 몰카를 설치해서 범인을 잡자고 제안한다. 결국 행정실 교직원이 범인으로 밝혀졌고 그 뒤로 학생들은 커뮤니티 안에서 작당을 이어가며 독버섯으로 선생님들을 단체 식중독에 빠지게 하거나, 설립자 초상화에 낙서를 저질렀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알고 보니 역몰카 자체가 조작된 영상이었고 엉뚱한 교직원만 억울하게 범죄를 뒤집어쓴 것이었다.
음성이 삭제돼 내용을 알 수 없던 역몰카 영상 원본을 발견했을 때, 나는 어쩐지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2021년 11월, 한 은행의 30대 남직원은 여성 동료 책상 밑에 몰카를 설치했다 걸렸고, 2022년 2월, 안양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여성 교사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교장이 고작 징역 2년을 구형 받았다. 포털 사이트 뉴스란에 몰카를 검색하면 여전히 ‘택시정류장에서 치마속 몰카, 20대남 현행범 체포', ‘불법촬영 40대 남성 잡고 보니 몰카 사진만 2000장', ‘여자 기숙사, 화장실 몰카범인은 우리 선생님’, ‘놀이공원 여자 화장실 몰카 알바생' 와 같은 기사가 쏟아진다. 현실 세계는 여전히 몰카로 가득하고 처벌은 그 심각성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여고추리반2>의 세상은 그러니까, 무고죄. 그걸 보여줬다.
나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안다. 작년 11월, <아는 형님> ‘스트릿 우먼 파이터' 특집에서 허니 제이가 이야기할 때였다. 늦은 밤, 괴한이 따라오는 상황에서 혹시 자기가 괜한 사람을 의심한 건 아닐까 우려되었다고 말하자 김희철이 칭찬하듯 소리쳤다. “좋은 자세야!” 여성 범죄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이 존재할 때, 그 감정을 공감하는 것보다 일단 남성을 싸잡아 욕할까 견제하는 게 더 중요한 풍경을 보면서 ‘왜 허니제이는 위험에 처한 순간마저 자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필연적으로 알게 된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다시 생각해보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고한 남성에게 몰카범이라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여자아이'를 하나의 예능 장치로 취함으로써 <여고추리반2>는 결국 무엇을 그리게 될까? 나는 불안하다.
그뿐일까? 전교생이 모두 모여있던 온라인 커뮤니티 ‘급식창고'에서는 긴급 채팅이 간헐적으로 열렸다. 설립자 초상화에 낙서한 사건이 전교생이 작당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 리 없던 추리반 5인방은 범인을 잡아낸 대가로 익명속에 가린 비난과 욕설을 견뎌야만 했고, 결국 어두운 밤 저수지에 가서 해병대 아저씨에게 담배와 라이터를 빌려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이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오면 너희들을 믿어주겠노라면서.
추리 예능인 만큼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몹시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시청자들이 과몰입할수록 프로그램은 호평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능에서 출연자들이 미션을 얻는 방법이 덜 중요한 건 아니다. 그 방법은 곧 출연자들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당위성이 되고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사이버 불링이 엄연한 미션 전달 장치가 될 때, 그리고 주인공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따를 때, 이 프로그램의 오락성은 어디서 비롯하게 되는지 우리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선우경만이 악마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정말 그럴까? 전교생이 가담한 사이버 불링에도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가스실에서 지윤과 도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후에 채팅은 한 번 더 열렸고, 그 비난의 수위는 더 커졌다. 욕설과 맹비난. 다섯 명의 친구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을 위안 삼을 뿐이었다. 물론 학교라는 배경 안에서 학교 폭력이 하나의 소재로 등장할 수는 있다. 학교 폭력은 볼드모트가 아니다. 다만 프로그램이 이 사이버 불링 자체를 다루는 태도는 어떤 방식으로든 보여줬어야 했다. 모든 회차가 끝날 때까지 기회는 있었다. 시즌1을 떠올려 보자. 고인혜가 죽었을 때, 생전 친하지 않던 친구들은 무엇을 했는가. 사물함에 너를 기억하겠다는 포스트잇을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나는 몹시 즐거웠다. 예나, 비비, 재재, 도연, 지윤이와 같이 건면도 먹고 호빵도 먹고 갈비 만두 육즙 가득도 먹은 기분으로 8회를 달렸다. 특히 그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쏙 빠진 장면 하나가 있다. 공예림 사건에 연루된 이아란이 영자신문반 밀실에 숨어있었을 때, 추리반은 그를 진정시키려 살살 다독였다. 결국 경찰에 발각돼 끌려가자, 공포심에 우는 아란이를 보며 도연이 소리친다.
“아니, 애기가 겁내하는데 데리고 가면 어떡해요. 애가 울잖아요. 막 데리고 가면 어떡해요.”
자막엔 ‘애’라 쓰였지만, 도연은 아란을 애기라 불렀다. 열여덟 살 도연이가 아니라, 어른 도연이의 목소리였다. 급박한 상황에 진짜 어린 학생을 생각하는 어떤 어른들. 나는 이런 것들이 <여고추리반>에 반영되는, 다섯 친구들의 무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실험실에 갇혀서도 아이들의 불안을 증식시키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달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한 뒤에 후루룩 울어버리는 진심. 우리는 또 다음에 어떤 무의식을 지켜보게 될까. 나는 그것들을 오래 보고 싶다. 한 시즌 100까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