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비평 TV언박싱 35. <스물다섯 스물하나>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포기’의 사전적 의미다. 으레 청춘 드라마의 미덕이란 열망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 있다. 누군가 그만두려 하면 옆에 있던 친구가 “야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라고 회유하고,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나다운 게 뭔데!” 라며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리는. 그러다 결국 극적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감동을 준다. 자주 나오는 말은 이런 것들이다. 꿈을 포기하기엔 우리의 젊음이 아깝다, 우린 더 부딪혀 봐야 한다, 지금 성장통을 겪는 시기다, 그러다 화룡점정 “아프니까 청춘이야"까지.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는 많은 이가 포기한다. 부동의 전교 1등인 지승완은 폭력 교사와의 갈등 끝에 학교를 그만둔다. 수능을 100일도 채 앞두지 않은 상태였다. 은연중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말이 턱끝까지 차오르지만 자퇴서는 굳건하다. 펜싱부의 이예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하고 땀 흘리면서도, 또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펜싱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 전국 대회에서 8강까지 올라가면 그만두게 해주겠다는 코치의 말에 그는 고유림과 나희도의 도움을 받아 훈련하고 또 훈련한다. 날이 까무륵 저문 줄도 모른 채 펜싱에만 매달렸다. 오로지 펜싱을 그만두기 위해 처음으로 고군분투했다. 결국 8강까지 진출했을 때, 4강까지 도전해보자는 코치의 말에 예지가 말한다. “저 여기서 기권하겠습니다. 제 인생에서 펜싱은 이만하면 됐습니다.”
또 전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펜싱 선수 고유림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결국 러시아 귀화를 택한다. 전국민의 질타와 눈총이 쏟아지고 오해 가득한 이야기만 기사화되지만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포기한다. 그게 진정 자신이 바라는 미래는 아닐 지라도 눈앞에 닥친 상황에 가장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편으로 아쉬웠다. 어디 선생에게 굴복하는 학생이 한둘일까. 승완이가 선생과 격렬히 싸워놓고 다음날 사과했어도 이상하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다. 공동의 과제인 수능만 생각하느라 하나의 소동 정도로 여기고 모두의 기억에서 희연멀겋게 사라졌을 테다. 승완의 어머니가 교무실을 찾아왔을 때만 해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 이들의 분노를 달래며 자퇴를 막아줄 거라 믿었다. 8강을 포기한 건 어떤가. 살면서 한 번 이룰까 말까 한 승리 앞에서 모든 흥분과 기쁨을 갑자기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다니. 결과적으로 펜싱을 그만두더라도 지금까지의 노력을 오늘만 누려본다면 어땠을까. 누가 알까? 예지에게 펜싱이 다시 재미있어질지. 나는 철저히 비껴갔다. 희도의 말마따나 ‘두 사람은 휘어지는 법을 모르고 부러져봤다’.
이 ‘포기들’을 두고 드라마는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이유를 강조하지 않는다. 다른 방도가 없어 대안 차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게 가장 나은 최선택이어서 고르고 골라 결심한 것. 오로지 그것으로만 보여준다. 그렇다고 또 포기하라고 막무가내로 부추기거나 온전히 칭찬하지도 않는다. 이미 정답이 정해진 듯 구는 승완에게 엄마가 말했다. “휘어지는 법도 알아야 돼, 승완아. 부러지는 것만으론 세상 못 살아.” 그러자 승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답한다. “근데 그게 잘 안 돼.”
그러니까 아직 어려서, 아직 미숙하고 잘 몰라서 유연하게 사고하고 반응하기 쉽지 않다는 미성년자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승완도 안다. 선생에게 한 번 져 주는 게 더 쉽다는 걸. 아마 예지도 4강전을 한번 치러보고 싶었을 테고, 유림도 가난을 참아볼까 망설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너무 빨리 포기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더 쉬울 지언정 이들에게 합리적이거나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
결국 드라마는 포기한다는 말은 그저 하나의 동사일 뿐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포기에다가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게 아니라, 그냥 심플하게 중도에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뿐이라는 것을. 그냥 어떤 결심 행위. 여러 선택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그 가치를 이미 충분히 아는 십대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부추기기 보다는 섣불리 재단하지 않고 어떤 의미를 덧붙이지 않는 태도를 좀 알라고 어른들을 가르친다. 맞는 말이다. 그게 우리에게 영 부족하긴 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다. 십대에게도 그만두고 싶은 게 있다. 지긋지긋한 게 있다. 하던 걸 좀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감정에도 어른들은 늘 그들의 선택권을 성인이 된 이후에 다시 재고하는 것으로 유예시키는 데 바빴다. 누군가 그랬지. 저항은 십대의 미덕이라고. 그 본능적인 감각을 정직하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청소년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학교를 그만두는 승완이와 펜싱을 그만 둔 예지 앞에 유림과 희도가 초를 켰다. 왜 “자퇴 축하해"나 “펜싱 그만둔 거 축하해"가 아니라 “너희들의 새 시작을 축하해"라고 표현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이들에게 포기의 기본값은 마침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른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우려하는지도 안다. 하지만 나라 팔아 먹은 사람에게 짜장면 안 판다는 식당주인과 잘 싸운 유림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옛날의 나 같았으면 밥 안 먹고 그냥 나왔을 것 같아.” 그리고 희도의 호응. “어. 나도 네가 그럴 줄 알았어.”
결국 아이들은 부러지지 않고 휘는 법을 스스로 배운다.
/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