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꾼 일상 1
코로나로 인해 식당이 문을 닫은 시간이 길어진 만큼 집에서 만들어먹는 음식도 횟수는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종류가 다양해지지는 않았다.
돌이 안된 아이를 안고 새로운 음식을 시도할 만큼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고 2월부터 재택근무하면서 삼식이가 되어버린 남편의 점심마저 챙겨야 하는 상황에 식탁은 점점 단조로워지던 찰나,
친구네 집에 초대되어 갔다가(독일 바이에른 주는 6월 초부터 4인 이상 모임을 허가했다) 알게 된 밀 키트 배송 헬로 프레쉬(Hello Fresh)를 접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정말 다양한 식재료 배달 서비스가 있기에 한 회사를 정해서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받아서 요리해 본 소감은 정말 독일스럽다 였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가입을 하고 2인 기준 일주일 치를 선택해서 시범으로 받아보기로 했다. 참고로 독일은 하루에 한 끼만 따뜻한 음식, 즉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 전통적인 식습관이다. 아침에는 시리얼이나 빵으로 간단히 먹고 점심을 요리로 먹었다면 저녁은 빵으로 먹고, 점심을 빵으로 간단히 먹는 집은 저녁엔 요리를 해서 먹는 식으로 한다. 그래서 시범 삼에 점심용으로 할 세 번의 식사를 주문해보았다.
이 날이 수요일이어서 독일 특성상 이번 주는 안 되겠지 하고 봤더니 2주 후에 배송이 가능하단다.... 휴... 그냥 신청하지 말까 고민하다 한번 구경이라도 해볼까 기다리기로 하고 2주 후 화요일로 정했다(월요일 배송은 또 추가 요금이 붙는단다. 주말에 누군가가 일을 해야 해서일까..)
거의 잊을라 하는 순간 음식재료들이 배송이 되었고 포장에서 식재료의 양까지 참 독일스럽다의 연속이었다.
포장지는 보통 택배 상자, 안에는 봉투마다 번호가 새겨져 있고, 한쪽에는 이상한 보따리가 보인다.
보따리를 열어보았더니 속에는 냉장보관해야 하는 식품들이 들어있었고 자세히 읽어보니 이상하게 생긴 보따리는 종이 재질로 만들어져서 종이류로 분류해서 재활용하란다네.. 냉동팩은 100 % 물로 만들어진 얼음 덩어리 팩이었고 녹으면 물을 식물에 주든지 청소할 때 식초를 넣어서 쓰란다.
종이봉투에는 번호가 적혀있고 요리 레시피에 맞게 재료가 들어가 있다.
1번은 소고기 스테이크와 콩줄기를 곁들인 감자요리, 2번은 햄버거, 3번을 독일 전통요리.
첫 요리인데 남편에게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햄버거로 결정했다.
정확히 2인 기준 재료라 마늘 한쪽, 토마토 하나, 레몬 하나, 허브 그리고 감자.. 여기에 빵과 다져진 소고기가 추가 요리가 끝나면 남는 재료도 없는 그런 구성이다. 종이봉투는 재활용으로 분리수거해서 버리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서 버리는 데 사용하라고 나온다
함께 동봉되어 온 레시피를 보여 만드니 재료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 고민할 이유가 없어 시간이 절약되는 느낌이다. 평소에 버거 요리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파슬리를 넣는다니... 과연 무슨 맛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여차저차 약 40분 만에 완성된 점심식사. 레시피와 비슷하게 사진을 찍어보니 더 성취감이 느껴지는 그런 시간이다. 점심시간이라며 음식이 완성되는 시간에 맞춰 꾸물꾸물 나와서 점심을 먹는 남편이 너무 맛있다며 폭풍칭잔을 한다. 하루종일 시간이 날 때마다 버거가 너무 맛있다느니 레몬의 향긋함이 너무 좋다느니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 같다는 등 폭풍칭찬을 남긴다.
정말 오랜만에 레스토랑에서 먹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요리 전문가의 레시피에 맞춰 정확한 양이 들어있는 것으로 만드는데 실패할 확률이 낮은 건 당연지사.
요리를 마치고 나니 더 행복한 시간이다. 남긴 재료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탄한 사실은 거의 모든 포장용품을 가능한 한 재활용할 수 있는 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종이, 신선 팩 마저 물로 되어있어서 그것도 재활용하는 데 사용된 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식재료를 배달해서 사용하지만 죄책감이 덜 든다고나 할까.
코로나로 인해 초기에 반짝 요리를 이것저것 해봤지만 어느 순간 도돌이표를 그리며 순환되는 식단으로 먹다가 이렇게 먹으니 기분전환도 되는 듯하다. 독일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독일 전통음식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독일 전통음식인 Spätzle 슈페츨레를 한번 만들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