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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없는 냄비

by 하스텔라

프랑스에서 2주 동안 가족여행을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간단히 요리를 해보려 냄비를 꺼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냄비에도 프라이팬에도 손잡이가 없었다!

‘손잡이 없는 냄비라니.. 고문 도구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숙소들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단지 내가 묵은 숙소들만 그런 걸까?
아니면 프랑스에서는 원래 이렇게 쓰는 걸까?


조금 찾아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프랑스 사람들은 손잡이를 탈부착할 수 있는 조리기구를 자주 쓴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테팔 인제니오(Tefal Ingenio)’ 시리즈다. 하나의 손잡이를 여러 개의 냄비나 프라이팬에 끼워서 사용하는 방식인데, 필요할 때만 장착하고 요리가 끝나면 다시 떼어내어 정리하는 것.


이렇게 하면 수납공간이 훨씬 깔끔해지고, 팬을 그대로 오븐에 넣거나 냉장고에 보관할 수도 있어서 무척 실용적이다. 오븐 요리가 많은 프랑스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또 냄비째 식탁으로 옮겨져 식사를 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손잡이가 없거나 아주 짧은 것 이라고 하니 참 재미있다.


그 단순한 발상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프랑스다운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할 때만 쓰고, 쓰지 않을 때는 최소화한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공간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

물론 어느 숙소에서는 손잡이가 고장 나 있어서, 결국 수건으로 돌돌 감싸 냄비를 옮겨야 했다.
손잡이 없는 냄비를 수건으로 돌돌 말아 물을 버리던 그 순간엔 솔직히 “이게 뭐야!”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장면마저 웃음이 난다.


손잡이가 없는 냄비 하나지만 나는 프랑스 사람들의 생활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공간을 깔끔하게 유지하며, 물건을 오래 아끼는 태도.


나는 프랑스 하면 아기자기하지만 물건들이 위로 쌓여있는 어수선한 이미지를 떠오르지만, 사실 어수선한게 아니라 정리정돈이 된 현실적인 지혜일지도 모른다.


아, 물론 한국에는 옛~날부터 있었다고 한다. 역시 없는게 없는 한국!


여행을 하다 보면, 명소나 화려한 풍경보다 이런 작은 생활의 발견이 내게는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손잡이 없는 냄비 하나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불편함 속에서도 효율을 찾아내는 프랑스식 실용주의, 그리고 ‘덜어냄의 미학’이었다.


아마 다음번에 프랑스의 숙소에서 손잡이 없는 팬을 보게 된다면, 나는 이제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손잡이가 어디 있나 찾아볼 것이다.

대부분 수저 있는 곳에 있으니…!


무엇보다도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문득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서’ 붙잡고 있을까?


프랑스의 부엌에서 만난 그 손잡이 없는 냄비가, 내게 이렇게 조용한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다.


손잡이 없는 냄비세트를 구입하고 싶어지는데.. 이를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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