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2001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게 되었다.
옛날 감성이 그리워 선택한 영화였는데, 이번에도 또 환생 이야기가 주제다. 최근에 강아지가 환생하는 영화를 감명 깊게 봤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은 후, 다음 생에 남자 학생으로 환생한 이야기. 나는 아마도 이런 류의 영화에 이끌리는 모양이다.
극 중 담임선생님으로 나오는 이병헌이 '꼰대'라는 단어를 얘기했다. "내 이름은 서은우, 안 써줘도 되지? 어차피 너네 '담임', '꼰대' 이런 식으로 부를 거 아니야."라는 대사였다.
순간, '엥? 저 당시에도 꼰대라는 말이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꼰대의 어원이 뭐지? ', '언제부터 쓰인 거지?' 하고 찾아보니 유래가 참 흥미롭다.
신문에서 '꼰대'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60년대. 물론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남발되지는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권위주의와 잔소리에 대한 반발의 의미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 아저씨는 완전 꼰대야' 같은 식으로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201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 단어의 사용 빈도가 급격히 늘어났고, 다양한 부정적 의미로 확장되며 널리 쓰이는 표현이 되었다고 한다.
‘꼰대’의 어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번데기처럼 주름이 많은 늙은이를 의미하는 영남 사투리 ‘꼰데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프랑스어 ‘콩테(Comte)’가 일본식으로 변형된 ‘꼰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로,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백작 등의 작위를 받으면서 자신을 ‘꼰대’라 칭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은 독일에도 존재한다. 독일에서는 'Besserwisser(베써비써)' 또는 'Rechthaber(레히트하버)'라는 단어가 있다. 항상 자신이 가장 많이 알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뜻하는 이 표현들은 한국의 '꼰대'와 유사한 개념을 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 사람 꼰대야"라는 말보다는 "저 사람 Besserwisser인가 봐"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한다. 베써비써는 나이와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는 성향이기 때문에..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의견이 수용되면 마치 성공한 것처럼 느껴져서, 훈수를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 역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직업적인 이유도 있지만, 내 목소리를 자주 내는 편이다.
내 학급에는 보조인 2명과 실습생 1명이 있는데, 실습생은 자주 바뀌며 2주에서 6개월까지 실습 기간이 다양하다. 이 작은 사회에서 나는 '대장' 역할을 맡고 있다. 대장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으나, 모든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물론 때때로 분쟁과 마찰도 일어난다.
한 번은 보조인이 수업 시작 전에, 학생 N이 지금 수업을 할 컨디션이 아니니 '산책'을 가겠다고 '통보'했다. (아니.. 이년이..?) 너무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내 학생이고, 수업 시간인데, 본인이 결정해서 수업 대신 산책을 가겠다니?
나는 그녀의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N은 수업을 받았다. 수업 후 그 보조인은 나에게 긴 시간 동안 불만을 표출했다. (나는 학생 N의 컨디션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보조인의 컨디션이 나빴고, 그녀가 수업을 받기 싫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 아이의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학교생활루틴을 바꿀 수는 없다. 네가 '생각'했을 때 그 아이가 수업받을 컨디션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느낌을 받지 못했고, 나에게는 학생들이 루틴을 깨지 않는 것이 우선순위다."라고.
물론 학생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수업을 못 받을 컨디션이 될 때도 있다. 몸이 아프거나 혹은 가정적인 이유로 불안함이 커져 격양되어 있는 경우 등등. 이런일이 있을 경우 나는 학부모들에게 따로 연락을 받기에 미리 '움직이는 수업' (Unterricht mit Bewegung) 준비를 한다. 연락을 받지 않아도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 판단되면, 그 아이에게 '비교적 쉬운' 문제를 제공한다.
즉, 수업을 받되, 학생의 상황에 맞춰 조정해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내 원칙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나는 정말 꼰대인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견을 말할 때, 내 생각이 존중받고 수용되기를 바란다. 때로는 '내 말이 옳으니까 내 말 들어'라는 식으로 강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 못 한다고 판단하는 경향도 있다. '왜 저렇게밖에 못하지?', '왜 저걸 안 하지?', '안 보이나?', '모르나?' 같은 생각을 하며 답답함을 느낀다.
회의 자리에서는 내 의견을 받아들이고 수용해 주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더 간다.
물론, 타당한 반대 의견이 나오면 고맙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대 의견은, '내 생각'에는 충분한 이해 없이 나온 것처럼 느껴져서, 그 자리에서는 "의견 고마워"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한다.
이렇게 보니, 나 꼰대 맞나 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는 조금 더 '멋진 꼰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한다.
나의 생각과 주장을 '지혜'롭게 전달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잊지 않는다면,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멋진 꼰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멋진 꼰대'라니, 단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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