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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스텔라 Aug 24. 2024

고양이의 두 얼굴

쫄보 고양이 vs. 깡패 고양이

내 고양이 슈무지는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쫄보 고양이다.

어렸을 적에 입양을 온지라 본인이 고양이인지 모르고 사람으로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꼬리가 펑! 부풀어서 "너는 누구냥!" 하며 몸을 숨기던 슈무지.

자기 모습을 보고 '웬 놈인가' 싶었던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마당에 옆집 냥이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옆집냥이는 제 집 마당처럼 신나게 뛰어놀았는데, 슈무지는 구석에 들어가서 그 옆집냥이의 동태를 살피기에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고, 이 쫄보 고양이야...’ 하고 가슴이 아팠다.


또 어느 날은,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나무 밑 그늘에서 쉬고 있던 듬직한 큰 고양이가 있었다.

그 큰 고양이는 슈무지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냥, 안냥!" 하며 배를 보이며 왔는데, 슈무지는 "하악! 저리 가라 냥!! 하아아악!!!" 하면서 매우 날카롭게 하악질을 했다. 난 하악질 하는 슈무지를 그날 처음 봤다.

시무룩 하게 주눅 든 큰 고양이..

‘아이고... 이 사회성 떨어지는 고양이, 이렇게 모든 게 무서워서 어쩌나...’ 그렇게 나는 점점 고민이 깊어졌다.


모르는 사람이나 동물이 집에 오면 후다닥 뛰어서 숨을 곳을 찾고, 바깥세상 구경 중에 자전거나, 자동차가 오면 무서워서 또 호다다닥 집 안으로 뛰어오는 쫄보.


이러다 평생 쫄보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어, 사회성을 길러보자는 마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처음엔 하네스 착용 후 이동장으로 산책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홀로 씩씩하게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당당한 "독립적 산책냥이"가 되었다.

참새도 사냥해 오고, 도마뱀도 사냥해 오는 위풍당당한 모습에 ‘이야, 이 녀석, 아주 날렵해졌는걸?’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참새야, 도마뱀아... 미안하다...)


그러나 여전히 안쓰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집 앞마당을 돌아다니는 야생 고슴도치에게 공격당해 발바닥에 가시를 찔려오기도 하고, 또 다른 산책냥이와 시비가 붙어 주눅이 들어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 안쓰러운 나의 작은 고양이..

무서우면 숨는 고양이

그러던 어느 날 오전, 여유롭게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며 햇빛을 쬐던 중이었다.

갑자기 고양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냐아아앙!"

이건 분명 슈무지가 또 공격을 당하는 소리일 거라 생각하며 후다닥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과연, 옆집 10개월 된 아깽이와 대치 중인 슈무지를 발견했다.

에효.. 자기 몸보다 작은 아기 고양이에게도 쫄고 있다니..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몇 분 동안 대치 상황이 계속됐는데, 슈무지는 계속 아깽이 주변을 맴돌며 친해지고 싶어 하는 듯했다.

'오? 슈무지가 이제 사회성이 좀 생겼나본데?' 하며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 때!


나는 정말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건 바로.

.

.

공격당하는 쪽은
슈무지가 아닌 아깽이였다는 사실!
오. 마이. 갓.


"냐아아앙!" 하고 소리 지르는 고양이는 아깽이가 맞지만, 그 소리는 "까불지 말라냐아앙!!!" 하는 것이 아닌 "살려달라냐아앙!! 하지 말라냐아앙!!!" 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리였다는 사실....


허허.. 내 자식 내가 제일 모른다 하였던가.


이렇게 나는 찐따고양이인 줄 알았던 내 슈무지가 사실은 깡패냥 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내 새끼가 깡패였다니.. 허허...


싸우고 온 깡패냥이에게 잠시동안 외출금지령을 내려본다.

이런 순진무구한 얼굴속에 숨겨진 깡패본능이라니.. 배신당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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