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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발가게

장인정신, 실용주의, 그리고 지속 가능성

by 하스텔라

독일에 있다 보면, 어느 골목을 들어서든 신발가게 하나쯤은 꼭 마주치게 된다.

대형 브랜드 매장은 물론이고, 겉보기에도 정갈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제화 전문점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도시 중심가는 물론, 주택가 골목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그냥 별생각 없이 그러려니 했는데, 독일을 방문했던 가족들이 물어왔다.


여긴 왜 이렇게 신발가게가 많아?


‘으잉? 신발가게가 그렇게 많았던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나 역시 이유를 아는 게 없었기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어느새 내게도 작은 호기심을 남겼다. 정말 왜 그런 걸까? 왜 독일엔 유독 신발가게가 많은 걸까?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찾아보기로 했다.



조금만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흥미로운 배경이 있었다. 독일은 오래전부터 제화 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특히 남서부 지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Nordrhein-Westfalen)나 라인란트팔츠 주(Rheinland-Pfalz)에는 전통적인 구두 생산지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포르츠하임(Pforzheim)이나 하겐(Hagen) 같은 도시는 과거부터 제화 공장과 장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런 지역들은 오랜 시간 동안 신발을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라 '기술'과 '장인정신'이 깃든 제품으로 여겨오고 있다.

신발 장인
신발이란?
장인정신이 깃든 결과물


또한 독일 사람들은 신발을 굉장히 실용적이고 중요하게 여기는데, 좋은 신발이 건강한 삶과 연결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평지를 걷는 시간이 많고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독일의 도시 구조에서는 ‘편안한 걷기’가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신발을 고르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고, 자신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수요 덕분에 각 도시마다 다양한 브랜드 매장뿐 아니라, 맞춤형 수제화를 만드는 작은 가게들도 꾸준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독일은 소규모 자영업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대형 쇼핑몰보다는 도시 곳곳의 독립 상점들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보기엔 '왜 이렇게 신발가게가 많지?' 하고 느껴지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 가게들 중 상당수는 단골 위주로 운영되며, 2~3대째 이어져 오는 가족 경영 가게들도 많다.


단순히 신발을 파는 것이 아니라, 발 모양을 측정하고 깔창을 맞춤 제작해 주는 전문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신발’이 단순한 소비품이 아니라, 일종의 ‘건강 관리’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게다가 가격대도 낮지 않다. 고급 수제화는 물론이고 일반 브랜드도 품질 중심이라, '이런 가게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한편, 독일에선 세컨핸드 형식의 신발가게도 자주 보인다. 환경 보호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중고 소비가 자연스럽고 흔한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중고 신발이라는 개념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거의 새것 같은 신발들을 선별해 되파는 전문 매장에 가깝다.

중고 신발을 판매하는 가게


어떤 가게들은 깔끔한 진열과 체계적인 사이즈 분류, 맞춤 상담까지 제공한다. 품질 좋은 브랜드 신발을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 만족도도 높다.

개인적으로는 남편이 이 세컨핸드 가게에서 결혼식 구두를 샀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고급 브랜드였지만 상태는 거의 새것 같았고, 가격은 정가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이런 소비가 낯설지 않다. ‘좋은 물건은 새것일 필요 없다’는 인식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중고’에 대한 거부감도 상대적으로 낮다. 단순히 저렴하게 좋은 신발을 살 수 있다는 점을 넘어, 세컨핸드 소비는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는 ‘지속 가능한 선택’으로 독일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런 문화는 신발가게가 단순히 많다기보다, 신발을 둘러싼 다양한 소비 형태와 가치관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풍경일 것이다.



물론, 예전과 비교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대형 체인과 온라인 쇼핑의 확산, 임대료 상승 등의 이유로 전통적인 소규모 신발가게들은 점차 문을 닫는 추세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독일 내 소매 신발 매장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수제화 전문점이나 가족 경영 가게들은 생존을 위한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신발가게들은 단순한 판매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오랜 시간 쌓아온 장인정신의 흔적이자, 도시를 걷는 사람들의 건강과 삶의 방식을 지켜온 일상의 한 조각이다.


지금의 풍경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신발가게가 많은 독일'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국민 신발가게 다이히만 (Deich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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