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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눅히 Mar 26. 2024

자의적 혹은 타의적 퇴사, 그 사이 어디쯤

07. 해고 통보: Nobody knows

뜻밖의 일은 언제나 사위가 고요할 때 찾아온다. 불행이 불쑥 찾아오는 것도 그렇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때에 강한 카운터 펀치를 날리 듯.


그날이 내게는 그랬다. 월요일 아침 9시 30분, 여느 때와 같은 주간 미팅 시간.


2주간 휴가를 다녀왔던 나는 다시금 일상의 굴레로 돌아갈 참이었다. 팀원들과 서로 가벼운 근황을 이야기하고 본격적인 업무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시점에 CEO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머뭇거리며 입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모습이 컴퓨터 화면에 그대로 잡혔다. 의아했지만 그다음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길 몇 번 반복하던 그녀가 마침내 첫마디를 내뱉었다.

그 첫마디는 곧 시작될 불행의 서막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았다.


'안 좋은 소식을 하나 전해야 할 것 같아.'


댕-


아주 짧은 순간, 내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이고 동공은 확장돼야 할 것 같은데 그 반대였다. 오히려 차분해지는 느낌, 오묘하게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회사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서 더 이상 월급을 줄 수 없을 것 같아..'


놀라운 소식이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지만 정말 이렇게 알 수 없다고? 싶기도 했다.

월급을 못준다는 말로 포장된 해고 통보라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기도 했다.


그간 우리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또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독일의 대기업에서 우리 소프트웨어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인수 과정을 밟고 있다고 몇 달째 미팅 때마다 전달받았다.

향후 그 회사로 인수될 경우 맞이하게 될 몇 가지 변화에 대해서 논의도 했고 인상될 연봉에 대해 이야기하며 숨길 수 없는 입고리의 씰룩임이 채 가시기도 전, 그 모든 것이 빛바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곧 내 CV에 적히게 될 '그 회사'의 네임 벨류를 생각하며 드디어 내 개발자 커리어에 큰 획을 긋게 될 날이 올 것이라며 기대에 가득 찼던 나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돼버렸다.


게다가 앞서 다녀온 2주간의 휴가는 그냥 휴가가 아닌 신혼여행이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일이 있고 나니 시샘이라도 하듯 불행이 틈도 없이 따라붙었다. 아니다. 결혼식 전에 해고 통보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CEO는 미안하다는 말을 붙이며 내게 두 가지 제안을 했다. 무보수로 일하면서 회사에 남아 훗날 회사가 팔릴 경우 내 몫의 share를 갖는 것과 해고당하는 것.

어느 쪽도 달갑지 않지만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기에 나는 해고당하는 쪽을 택했다.

회사가 언제 팔릴지, 혹은 정말 팔리게 될 것인지 모르는 상황이고 훗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 몫을 계산했을 때 실업급여받으면서 새 직장에 취업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한 가지가 있는데 나는 큰 일 앞에서 오히려 대범해지는 편이라는 것이다.

이번 일도 감정의 호소로 해결될 문제도 아닐뿐더러 나는 통보를 받는 입장이기에 결과를 뒤엎을 수도 없다. 더군다나 tech업계에서 lay off 피바람이 부는 걸 매체와 주변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남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언제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그 사실을 그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그러니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난 뒤에 철저하게 곱씹는 타입이 바로 나다.


해고를 당하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실업급여로 사실 생활엔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은근한 배신감과 앞 날에 대한 불안까지 잠재울 순 없는 노릇이었다.

(독일은 직장에 2년 이상 근무 시, 월 급여 실수령 금액의 60%, 자녀가 있는 경우 67%에 해당하는 실업급여를 1년간 받을 수 있다. 단, 월급이 아무리 많아도 최대 2000€까지만 받을 수 있다.)


잘리기 전에 나갈걸.

'그 회사로 인수' 이야기가 없었다면 벌써 이직했을 텐데..


아무런 도움 안 되는 생각들이 수시로 튀어 올랐다.

비록 100% remote라는 점, 수평적 구조, 익숙해진 업무와 사람들이라는 장점과 전무한 경력의 나를 채용해 준 CEO와 CTO에게 충성심 같은 것이 있긴 했지만 이직욕구는 스멀스멀 일고 있었다.


업무가 익숙해지니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커졌던 나는 그즈음에서야 CTO는 내가 기술적으로나 커리어적으로나 질문을 했을 때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가 단지 Frontend 개발에 전무한 지식과 경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만 아니라 그의 어리숙하고 믿음이 안 가는 리더십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붙어 있었던 이유는 '그 회사', 지금의 회사를 인수할 예정이라던 '그 회사'의 이름을 내 이력서에 올리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비전공자, 외국인, 3년짜리 스타트업 경력으로 재취업을 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들이 아는 회사, 그 이름이 들어간 곳에서 일했다는 한 줄의 경력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게 앞으로의 내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고 그 한 줄기 빛만 보고 여기까지 왔었다.  어리석은 욕심이었던 것일까?


해고일이 정해 지자 아찔한 지난날의 구직기가 눈앞에 떠올랐다. 또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니. 그 짓을 또 해야 한다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주변에선 이젠 경력도 있고 비자발급도 필요 없으니 수월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썩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한 지인은 너무도 쉽게 '네가 일하는 직종은 일 잘 구하잖아.'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건 네가 여기서 나고 자란 독일인이라 외국인인 내가 이 땅에서 해고당한 기분이 어떤지, 다시 구직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게 어떤 고통인지 감히 상상도 못 하니까 지껄이는 싸구려 위로로 하는 말이지!!!’라고 우르르 쏟아내어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대의 위로마저 고깝게 듣는 내 옹졸하고 여유 없는 마음이 문제라는 것만 확인한 채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 이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른바 Big tech company, 구글, 아마존, X(구 twitter) 같은 곳에서 대량해고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중소, 스타트업에서도 많은 개발자들을 해고했고 지금도 해고 중이다.

구직 시장에 경력 빵빵, 네임벨류 빵빵한 사람들이 다시 나왔고 무섭도록 빠른 발전 속도로 많은 업종을 위협하는 AI가 이제 코딩도 하는 시대다. (심지어 잘한다.)

나의 재취업은 너무나도 불투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해고를 당한 것이 내 탓이 아니듯, 재취업이 안 되는 것도 내 탓이 아니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경제난의 흐름과 해고의 흐름에 나는 그저 같이 휩쓸려 가는 중이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역행하려면 더 괴로울 뿐이라고.

그러니 지금은 이 고통을 안고 함께 흘러가려고 한다. 작은 희망도 함께 품고 흘러가려고 한다.


살면서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고 실업자가 되는 것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내일모레엔 다시 '일하기 싫어'를 외치는 직장인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아무도 모르지 그건.



NOBODY KNOWS - Basel, Switzland (photo b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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