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도 볼 수 없기에
일반적으로 연인들의 데이트 횟수는 두 사람의 관계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어요. 먼 거리로 인해 자주 만날 수 없는 장거리 연애 커플은 관계만족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2006년, 장거리 연애 커플을 연구하던 오하이오 주립대의 스태포드 교수는 정반대의 조사 결과를 보고 혼란에 빠집니다. 122쌍의 커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장거리 연애를 하는 커플이 서로 가까운 곳에 사는 커플보다 더 만족스러운 연애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죠.
장거리 연애를 할수록 더 만족스러운 연애를 한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스태포드 교수는 조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봤어요. 실제로 장거리 연애를 하는 커플들은 보통 커플보다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 대화도 더 잘 통한다고 느끼고 있었죠.
교수는 이런 차이를 만든 원인을 찾던 중 장거리 연애를 하는 커플들에게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그건 바로 이상화(Idealisation)였어요.
이상화란 연인을 실제 모습보다 더 이상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해요. 쉽게 말해 콩깍지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2주에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한 장거리 연애 커플들은 매일 만나는 보통 커플보다 평균적으로 서로를 20% 정도 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즉 장거리 연애를 하는 커플들은 일반 커플보다 콩깍지가 더 강하게 씌어있어 더 만족스러운 연애를 한다는 거죠.
이들은 자주 만날 수 없어서 상대방의 사소한 일상이나 습관들을 전부 다 알기가 어렵습니다. 당연히 상대방의 안 좋은 모습이나 단점들을 보기 힘들죠. 반면 본인의 매력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 스태포드 교수)
결국 장거리 연애의 최대 장점은 역설적이게도 '자주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연인을 덜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장거리 연애의 위기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때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장거리 연애의 위기는 두 사람이 자주 만날 수 있게 됐을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답니다.
스태포드 교수는 200쌍의 커플을 2년 동안 추적해 이런 사실을 발견했어요. 장거리 연애를 하던 커플이 오랜 기간의 장거리 연애를 마치고 가까운 곳에 살게 됐을 때, 헤어질 확률이 두 배나 증가했던 것이죠.
가까운 곳에 살게 됐을 때,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를 할 때보다 훨씬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때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의 진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이상적으로 그려온 모습과 다른 점들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생기죠. (오하이오 주립 대학, 스태포드 교수)
실제로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다시 가까운 곳에 살게 된 커플들의 40%는 "상대방에 대해 몰랐던 점을 깨닫게 됐다"고 응답했다고 해요. 게다가 이런 새로운 깨달음은 부정적일 확률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4배가량 높습니다.
결국 어느 정도의 이상화는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동안 관계를 든든하게 지켜주지만, 지나친 이상화는 실제 모습과의 괴리를 만들어 오히려 관계에 악영향을 끼친 거예요.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연인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로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는 경계할 필요가 있어요.
이를 위해 스태포드 교수는 장거리 연애를 할수록 자신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오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죠.
그리고 평소 만날 수는 없더라도, 일상적인 대화(everyday talk)를 통해 서로의 진짜 모습을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기회가 닿는 한 직접 만나는 횟수를 늘리는 거예요. 장거리 연애를 할 때 직접 만났던 횟수가 많을수록, 다시 가까운 곳에 살게 되었을 때 관계가 더 안정적으로 변했다고 해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한 최선을 다해 직접 만나는 기회를 늘리세요. 한 번 한 번의 만남이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사실 인간이 수렵과 채집을 시작한 이후, 장거리 연애는 줄곧 존재해왔어요. 수많은 커플이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관계를 지켜왔고, 사랑해왔죠.
둘 사이의 먼 거리가 장애물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연애를 하다 보면 발생하는 수많은 장애물 중 하나일 뿐, 극복하지 못할 대단한 문제는 아니랍니다.
연애의 과학이 모든 장거리 연애를 응원합니다!
참고 논문 * Stafford, Laura, and Andy J. Merolla. "Idealization, reunions, and stability in long-distance dating relationships."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24.1 (2007): 37-54.
어려운 연애, 조금 더 쉽게. 연애의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