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5000년 전에 원숭이 사냥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물리학연구소에서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 파-히엔 레나(Fa-Hien Lena) 동굴에서 발굴한 포유류 화석들을 분석해왔다.
4만5000~3000년 사이에 살았던 몸집이 작은 포유류의 뼈 화석 약 1만4000개를 분석한 결과 4만5000년 전 이곳에 살았던 인류가 열대 우림 깊은 곳에 원숭이와 다람쥐를 사냥해 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남아시아에 살았던 고대 인류가 원숭이나 다람쥐처럼 지능이 있고 재빠른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는 세련된 기술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약한 동물을 남획하고 수풀을 훼손하는 자연 파괴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됐음을 또한 말해주고 있다.
스리랑카 밀림 속에 있는 파-히엔 레나 동굴에서 발굴한 1400개 포유류 화석을 통해 4만5000년 전 인류 조상들이 세련된 도구를 사용, 원숭이와 다람쥐를 사냥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존 인류사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사진은 동굴이 있는 밀림. ⓒ Wikipedia
세련된 도구로 원숭이‧다람쥐 사냥
20일 ‘사이언스’, ‘뉴스위크’, ‘데일리 메일’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이전의 연구 결과들은 인류 조상이 열대우림 속에 살 수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맹수 등 위험한 동물들이 모여 사는 수풀 속에서 사람을 포함한 약한 동물들이 생존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스플랑크 진화물리학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기존 이론을 뒤집는 것이다.
파-히엔 레나 동굴에서 발굴한 뼈 유적 1만4000개를 분석한 결과 화석에서 날카로운 칼 같은 도구로 잘려진 흔적과 함께 구워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한 그 주변에는 세련된 뼈와 돌로 된 연장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논문 수석저자인 막스플랑크진화물리학연구소의 오샨 베다게(Oshan Wedage) 박사는 “이번에 밝혀진 새로운 증거들은 우리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열대우림과 같은 극한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열대우림과 같은 극한상황에서도 생존했음을 보여준다 ⓒ Pixabay
연구팀이 화석을 분석한 결과 이들 동물들을 도살했으며, 남은 뼈는 또 다른 원숭이를 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논문 공동저자인 노엘 아마노(Noel Amano) 박사는 “새로 발견한 도구들은 수풀 속에 살았던 인류 조상들이 원숭이처럼 영리하고, 다람쥐처럼 재빠른 동물을 어떤 식으로 포획했는지 그 지적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조상들이 자신의 거주영역을 분명히 했고, 그 영역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사냥 전략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사냥을 원했던 동물은 다 자란, 몸집이 큰 원숭이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열대우림에 살고 있었던 성인 남자들은 세련된 도구로 사냥을 하면서 식량을 확보했으며, 여인과 아이들은 수풀 깊은 곳에 숨어 살면서 주변에 살고 있는 맹수들로부터 안전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인류 조상이 열대우림 속에서 1만 년 이상 이런 생활을 지속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 결과는 과학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지 19일자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Specialized rainforest hunting by Homo sapiens ~45,000 years ago’이다.
열대 우림에 거주한 인류 조상들은 도구를 이용해 원숭이, 다람쥐 등을 사냥했다 ⓒ Pixabay
기존에 기록된 인류역사 수정 불가피
그동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12만6000~11만7000년 사이 플라이스토세 후기(Late Pleistocene), 인류 조상들은 이전까지 살았던 아프리카를 떠나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아프리카를 떠난 이유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이 생존과 관련된 주장이었다. 아프리카 열대우림 속에 살고 있는 사납고 거대한 포유류 동물들과 경쟁하면서 경쟁에 뒤진 인류 조상들이 그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정착해야 했다는 것.
특히 맹수들과의 경쟁을 피해 초원(sabana)으로 이주했지만 이곳에서도 정착을 하지 못한 채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 아시아 지역의 해안가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주해갔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또 다른 주장도 제기되고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멜라네시아에 살고 있던 인류 조상들이 열대우림 속에 살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를 입증할 화석이었다. 열대우림 속에서는 모든 것이 빨리 부패하기 때문에 화석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인류조상의 흔적을 입증할 화석을 찾아내는 일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좌)와 네안데르탈인(우)의 해부학적 비교 ⓒ Wikipedia
이런 상황에서 스리랑카 열대우림 내에 있는 파-히엔 레나 동굴에서 많은 화석이 발견되고, 막스플랑크 진화물리학연구소에서 인류 조상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흔적을 발견하면서 인류 조상이 열대우림 속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이번 연구 결과는 호모 사피엔스가 열대우림 속에서 어떻게 식량을 확보했는지 명확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들 화석들과 연장들은 4만5000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밀림 속에 있는 나무 위에 집을 짓고 나무를 오르내리며 반수상(半樹上)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나무 위에 살고 있었던 원숭이와 다람쥐를 사냥하고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가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면 지금까지 기록된 인류의 사냥과 관련된 최초의 역사가 된다. 밀림 속의 약자가 아니라 작은 포유류를 맹수들과 함께 사냥하고 있었던 강자가 된다.
아프리카를 떠난 것 역시 밀림 속 생존경쟁에 밀린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활환경을 개척하면서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것이 된다. 인류 조상의 역사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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