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입증되지 않았고 적절 투여량 정보 없어
1611년 헝가리 제국의 왕은 바토리 에르제베트 부인에게 종신 금고형을 선고했다. 전쟁터에서 사망한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아 헝가리 최고의 부자였던 그녀는 헝가리 왕족 출신이었으며, 외삼촌은 폴란드의 왕이었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지닌 그녀에게 극형이 내려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죄목은 600여 명의 젊은 여성들을 살인한 것이었다. 살인한 이유는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젊은 여성의 피를 욕조에 넣어 목욕하거나 심지어 피를 먹기까지 했다.
지난 2017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암브로시아(Ambrosia)’란 벤처기업이 창업했다. 그리스어의 ‘불멸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암브로시아는 원래 신들의 음식으로서, 이것을 먹으면 불로장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 벤처기업에서 파는 상품은 음식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혈액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혈액에서 적혈구나 백혈구 등의 유형 성분을 제외한 액체 성분인 혈장이다. 처리되고 걸러진 젊은 사람들의 혈장은 35세 이상의 고객들에게 수혈된다.
스탠포드 의대를 졸업한 33세의 제시 카르마진이 설립한 이 회사는 16~25세의 젊은이들에게서 1리터의 혈액을 8000달러, 2리터는 1만 2000달러에 매입한다. 그 젊은 피에서 분리한 혈장을 나이 많은 사람들이 두 번 투여받는 데 드는 비용은 8000달러다.
만만찮은 비용이지만 그 피를 수혈받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휴스턴, 탬파, 오마하 등지에 지사를 낸 암브로시아는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뉴욕에도 회춘 클리닉을 올해 개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젊은 피 수혈하면 근육 및 뇌 회춘
카르마진이 이런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스탠퍼드 의과대학에 재학할 때 직접 참여한 실험 결과 때문이다. 스탠퍼드 대학은 젊은이들의 피가 회춘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를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곳인데, 그중 대표적인 게 2014년의 연구다.
당시 연구진은 어린 쥐와 늙은 쥐의 혈관을 하나로 연결한 결과, 늙은 쥐의 근육과 뇌가 회춘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그들이 찾아낸 원인 물질이 바로 혈장이다. 이후 젊은 쥐의 혈장만 늙은 쥐에게 투입한 연구결과에서 늙은 쥐의 학습 및 기억 능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같은 효과는 비록 적은 숫자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도 확인됐다. 젊은이들에게서 추출한 혈장을 치매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치매 증상이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진 것.
다른 연구팀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들이 잇달아 나왔다. 하버드대학 연구팀은 젊은 쥐의 혈액을 늙은 쥐에게 투입한 결과 근육량이 증가하고 뇌가 젊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으며, UC 버클리 연구팀은 수혈 치료로 근육 조직을 복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의학계는 그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주목했다. 노화로 인한 질병에 새로운 치료법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젊은이의 피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 혈장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최근 파킨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젊은 사람의 피를 주입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한 미국의 바이오 벤처기업인 알카헤스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회사는 임상시험을 통해 젊은이의 혈액 중 어떤 성분이 치료 효과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내길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9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젊은 사람들의 혈장을 노화 방지 목적으로 수혈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일부 연구들의 경우 그런 수혈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심장병, 다발성경화증 같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지만, FDA는 그런 주장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FDA는 성명서를 통해 “치료 또는 예방을 위해 젊은 사람들의 혈장을 주입하는 것은 입증된 임상적 이득이 없을뿐더러 어떠한 혈장 제품일지라도 사용과 관련된 위험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혈장 벤처기업, FDA 발표 후 치료 중단
또한 FDA는 “그 같은 제품들의 보고된 사용을 안전하거나 효과적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되며, 우리는 적절한 제도적 규제 및 감독으로 임상시험 이외의 치료 행위를 강력히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FDA는 “치료를 위한 혈장의 적절한 투여량에 관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하며 “많은 양의 혈장은 감염 및 알레르기, 호흡기, 심혈관 질환 등을 포함한 주요한 위험과 연관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매년 약 1460만 건의 수혈이 이루어지고 있다. 혈장에는 혈액 응고를 돕는 단백질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외상 환자들뿐만 아니라 혈액이 응고되지 않는 병이나 약물치료 환자들을 위한 치료제로 인식되어 왔다.
기존에도 일부 의학자들 사이에서 나이 많은 환자에게 다른 사람의 혈장을 자주 주입할 경우 면역계를 과도하게 활성화시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또한 캐나다 연구진은 젊은 여성들의 혈액을 수혈할 경우 환자들의 생존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노화 분야의 세계적 석학 중 한 명인 워싱턴대학의 매트 캐버레인 교수는 “젊은 피의 수혈에 대한 많은 연구가 쥐들에게서 행해졌는데 그런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이 노화의 측면을 광범위하게 개선하고 있는지 아니면 특정 조직에 한정되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제시 카르마진은 암브로시아를 창업할 당시 자신의 회사가 노화를 치료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했다가, 2017년 임상실험을 한 뒤에는 정말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FDA의 성명 발표 후 암브로시아의 웹사이트 안내문에는 FDA 발표에 따라 환자 치료를 중단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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