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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타임즈 Dec 28. 2018

통계역학 창시자, 스스로 목숨을 끊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물리학자, 볼츠만

1965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은 나노과학기술과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과학자다.


그는 명강연과 여러 재미있는 행적 등으로도 유명한데, 강연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장기 말이 한둘만 놓인 장기판의 한 귀퉁이만 보면, 당장 무엇이 어떻게 될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 말 모두가 놓인 장기판 전체를 보면, 장기 말이 너무 많아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자리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여러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 행위도 따지고 보면 간단한 법칙을 따르는 하나하나의 원자가 엄청나게 많이 모여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데, 이것을 믿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이 얘기는 물리학의 한 분야인 통계역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기존 물리학의 주요 관심사는 자연현상을 일으키는 기본법칙들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중력, 전자기력 등의 입자 간에 상호작용하는 힘, 물체의 운동법칙 등 많은 물리학의 법칙들이 이에 속한다.

즉 장기에 비유한다면, 장기 말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규칙을 알아내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장기 말 각각의 규칙을 안다고 해서, 장기 한판의 승부를 예측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원자 등의 기본 입자에 작용하는 힘과 법칙 등을 알아냈다고 해서 자연현상을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체 및 유체의 운동, 기상의 변화 등 입자의 수가 매우 많은 대부분의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무척 다양하고 복잡하며, 인간을 포함한 생명현상도 그중의 하나이다.

통계역학의 창시자 볼츠만 ⓒ Free photo 


이와 같이 복잡한 자연현상을 많은 입자의 집단적 시스템의 운동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곧 통계역학이며, 극도의 복잡성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 그 목표이다.


통계역학은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츠만(Ludwig Boltzmann; 1844-1906)에 의해서 창시되었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난 그는 뮌헨대학, 빈대학 등에서 물리학을 강의하면서 기체의 운동, 열 현상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는 “열적 현상의 비가역과정(Irreversible process)은 원자, 분자 등의 운동개념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 오스트발트(Wihelm Ostwald; 1853-1932), 마하(Ernst Mach; 1838-1916) 등 원자론에 반대하는 당시의 학자들과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특히 1895년 뤼벡에서 열린 독일 자연과학자 대회에서의 대논쟁은 매우 유명한데, 많은 학자들이 원자론자와 원자 반대론자의 두 갈래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거듭하였다.

돌턴(Dalton)의 원자론이 나온 지 거의 100년이 되었건만,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분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과학자들도 매우 많았던 것이다.

원자 반대론자로서 볼츠만과 많은 논쟁을 했던 마하 ⓒ Free photo 


그후 원자론자들은 일정 부피에 들어 있는 기체 원자의 수를 정밀하게 계산해냈다. 또한 기체의 미립자 운동, 즉 브라운 운동을 분자운동의 이론으로 해석해 내는 등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결국 원자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고, 원자, 분자론은 현대 과학의 수많은 분야에 적용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통계역학의 창시자이며 원자론을 승리로 이끈 핵심인물이었던 볼츠만은 1906년 9월6일, 한 휴양지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의 아내와 딸이 즐겁게 수영을 즐기는 동안, 호텔 방에서 목을 매는 극단적 행동을 하고 만 것이다.

그가 자살한 원인에 대해서는, 그간 원자 반대론자들과의 반복된 격렬한 논쟁에 지쳤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있게 전해진다. 볼츠만은 말년에 극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편으로, 그가 제시한 통계물리학 이론에 비춰 본 우주의 미래를 비관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우주를 닫힌계(Closed system)로 보면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Entropy)는 계속 증가하여, 그것이 최고에 이르는 순간은 바로 우주의 열적 죽음, 즉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해석하였다는 것이다.

엔트로피가 높은 계(왼쪽)와 낮은 계 ⓒ Free photo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당시 또 다른 상태에 처하게 된 고전물리학의 위기를 반영하는 사건으로 주목받기도 하였다.


비록 볼츠만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제시한 통계역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과학 분야에도 널리 적용되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아울러 자연과학뿐 아니라 철학이나 사상사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 이제는 심지어 경제학, 정치학 등의 사회과학에도 응용되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 등의 ‘복잡성의 과학’에도 볼츠만은 그 토대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기사원문: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d%86%b5%ea%b3%84%ec%97%ad%ed%95%99-%ec%b0%bd%ec%8b%9c%ec%9e%90-%ec%8a%a4%ec%8a%a4%eb%a1%9c-%eb%aa%a9%ec%88%a8%ec%9d%84-%eb%81%8a%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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