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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영 Jun 29. 2020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일상생활속 화학물질 노출의 위험성

산책을 나가는 것이 좋을까,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니 집에 있는 것이 나을까? 소독약 성분이 몸에 해롭다는데 실내수영장은 안 가는 것이 나을까? 생선에는 몸에 좋은 지방산도 들어 있지만 중금속에 오염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데 어떻게 하지? 고기를 먹자니 항생제가 걱정되는데 괜찮을까? 화장품에 방부제가 들어있다던데 몸에 해로운 건 아닐까? 샴푸에 들어있는 계면활성제는? 걱정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한 선택은 무엇일지 늘 고민하지요.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화학물질에 전혀 노출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또한 개개인이 온갖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정확히 알고 매 순간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보다는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건강을 크게 해치는 일이 없도록 법과 제도가 화학물질을 규제해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겠지요.


용량이 독성을 결정한다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화학물질 중에서 안전성에 대한 근거가 가장 확실한 것은 아마도 의약품일 것입니다. 의약품이 허가를 받으려면 안전성을 반드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의약품의 안전성은 정해진 용량과 용법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합니다.



"용량이 독성을 결정한다(the dose makes the poison)"는 것은 독성학의 기본입니다. 그 어떤 물질도 과량이면 위험합니다. 물도 너무 많이 마시면 독이 됩니다. 마라톤 선수가 과도한 수분 섭취로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먹는 약인지, 바르는 약인지, 주사제인지에 따라 같은 성분이라도 안전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먹는 약인 경우 소화기관을 차례로 거쳐 소장의 벽을 통해 혈관으로 들어간 다음 혈액을 따라 온몸을 순환합니다. 바르는 약이라면 피부나 점막 등을 통해 약물이 근처 조직으로 스며든 다음 천천히 모세혈관으로 들어갑니다. 어디에 주사하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주사제는 먹는 약이나 바르는 약에 비해 훨씬 빠르게 혈류로 들어갑니다. 즉 같은 성분, 같은 용량이라도 용법에 따라 약물의 농도가 몸의 어떤 부분에서, 어떤 시점에,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약물이 체내에서 분해되어 체외로 배출되는지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에 따라 당연히 그 약물이 몸에 해로울지 아닐지, 해롭다면 얼마나 해로울지 등도 달라집니다.



의약품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화학물질도 위험성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는 용량입니다. 포르말린(formaldehyde)을 예로 들어 볼까요? 포르말린 하면 음산한 해부학 실험실이  떠오르지요. 포르말린은 미생물을 죽여서 부패를 막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생체표본을 보관하는 데 많이 사용합니다. 한편 포르말린은  DNA를 망가뜨려서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져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물질이기도 합니다. 실험실에서 포르말린을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고글 등 보호장비를 사용하고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작업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포르말린은 자연적으로 흔히  존재합니다. 사람 몸에서도 매일같이 만들어지고,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들어 있지요. 다만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적은 양의 포르말린은 인체가 빠르게 분해해서 해롭지 않은 물질로 바꿔 배출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해부학 표본 (출처: Wikimedia Commons)


어떻게 노출되는가


포르말린처럼 같은 물질이라도 어떻게 노출되는지에 따라서 독성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에 오염된 음식을 잘못 먹으면 사망할 수도 있지만, 같은 보툴리눔 독소를 피부에 주사하는 보톡스 시술은 비교적 안전합니다. 보툴리눔 독소는 근육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방해함으로써 근육 마비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음식을 잘못 먹어 보툴리눔 독소가 호흡에 필요한 근육을 마비시키면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아주 적은 보툴리눔 독소를 마비시키고 싶은 근육에 국소적으로 사용하면 경련을 멈추게 하거나 주름을 없앨 수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역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olyhexamethylene guanidine, PHMG)의 흡입 독성이 문제가 된 경우였습니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은 원래 물건 표면을 소독하는 데 쓰인 물질이어서 피부접촉이나 섭취에 의한 독성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지만, 흡입 독성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흡입했을 때 폐섬유화를 일으키는 물질이란 것을 모른 채로 가습기에 물과 함께 넣어 사용하면서 수많은 아기들과 어른들이 목숨을 잃거나 평생 폐기능 장애를 갖게 되는 비극적 결과를 낳았던 것이지요. 이 경우만 보아도 화학물질의 독성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청문회장에 놓였던 제품들 (출처: 한겨레21)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문제는 용량과 용법을 정해서 안전성을 검사하는 의약품과 달리, 생활 속 화학물질은 독성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물질에 어떤 농도로 어떻게 노출되는지 파악하는 것부터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생리대 독성이 큰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지요. 생리대에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화학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습니다. 그 계기는 여성환경연대의 의뢰로 강원대학교 김만구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실험 결과였습니다. 연구팀은 생리대를 작은 상자에 넣고 일정 시간 동안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화학물질의 양을 측정했습니다. 일회용 생리대 11종을 검사한 결과 톨루엔, 스타이렌 등 해로운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다량 검출되었습니다. 이 실험 결과가 보도되고 생리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직접 시중의 생리대들을 조사해서 발표했습니다. 식약처에서는 생리대를 잘라서 속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을 최대한 녹여낸 후 어떤 물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측정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2017년 당시 한국일보 기사


당시 생리대에서 검출되어 문제가 된 독성물질은 스타이렌 등 휘발성 유기물질입니다. 이런 물질들은 생리대 표면에서 휘발되어 피부점막을 통해 흡수될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김만구 교수 팀은 생리대가 사용되는 방식에 가깝게 실험해서 화학물질의 노출 정도를 현실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실험방법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식약처의 실험방법은 생리대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전부 인체에 흡수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전제로 했으니, 훨씬 보수적인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만 생리대를 자르는 과정에서 휘발성 물질이 일부 날아가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는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생리대 성분 분석에 관한 연구가 전무하다보니 실험 기법조차 발달해 있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어떤 방법이 최선일까요? 물론 측정은 정확할수록 좋습니다. 단순히 생리대에 들어 있는 양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면서 점막에 흡수되는 양을 측정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요. 하지만 이런 데이터는 인체에서 직접 측정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여성들이 연구에 참여해서 이런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여성 개개인의 건강 상태나 생리대 사용 습관 등에 따라서 같은 생리대라도 노출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얼마나 해로운가


사람들이 어떤 물질에 어떤 농도로 노출되었는지 알아내는 것과 별개로 그 물질이 어떤 농도에서 얼마나 해로운지도 알아야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이미 그 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것을 관찰한 상황이라면 이 관찰 결과를 활용해서 얼마나 노출되면 어떤 해를 입는지 측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서 사람들이 병이 걸릴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에는 동물실험이나 세포실험을 흔히 활용합니다. 다만 이런 실험에서는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것보다 훨씬 고농도로 짧은 시간 동안 노출을 시킵니다.  그 때문에 저농도로 오랜 시간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실적인 독성을 정확히 알려주지는 않지요.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사실 화학물질의 독성에 관한 데이터는 깜짝 놀랄 만큼 부족합니다. 수많은 화학물질이 계속해서 새로 만들어지는 오늘날, 특정한 물질이 어떤 농도에서 얼마나 독성을 띠는지 빈틈없이 연구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피부 접촉이나 섭취 시 안전성이 어느 정도 알려진 물질이라도 호흡기로 들이마셨을 때 안전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또한 오랫동안 사용해서 안전성이 입증되었더라도 생식독성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식독성이란 불임을 일으키거나 태아의 정상적인 발달에 해를 끼치는 경우를 말하는데, 해로운 줄 모르고 노출되었다가 독성이 우연히 관찰되면 모를까 실험을 통해서 알아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생리대 안전성 실험 결과 식약처는 생리대에 포함된 10종의 화학물질 농도가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그 근거가 주로 간독성을 기준으로 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누구나 생리대 문제에서는 간독성보다 생식독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생리대에 들어 있는 휘발성 유기물질 중 어떤 것도 생식독성이 연구된 바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식약처의 실험 결과 만으로는 생리대가 건강에 해롭지 않다고 주장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 셈입니다. 식약처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현재 여성들을 대상으로 생리대 사용습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상세한 설문조사 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런데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수하고 화학물질을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사람의 판단에 달린 문제이지요. 의약품의 경우 정해진 용법과 용량을 기준으로 의약품에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치료하고자 하는 질병을 고려해서 의약품의 위험성을 감수할지 말지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병에 사용하는 약인지에 따라 얼마나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지요.



멜라소프롤(Melarsoprol)은 투약한 20명 중 1명꼴로 치명적인 뇌병변을 일으켜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위험한 약입니다. 이렇게 위험한 약을 대체 어디에 쓰냐고요? 딱 한 가지 병에만 사용합니다. 중증의 아프리카 수면병(African trypanosomiasis)입니다. 이 감염병은 트리파노소마(Trypanosoma)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체체파리에 물려서 걸립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률이 100%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다가 죽을 확률이 5%나 되는 위험한 약이라도 사용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약이라도 어떤 병에 사용하는지에 따라 안전성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기존에 허가된 약이라도 새로운 병에 사용하려면 안전성 평가를 새로 받아야 합니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트리파노소마에 감염된 혈액 (photo by schmidty4112)


말라리아 치료제로 오랫동안 사용해온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이 요즘 코로나19 치료제로도 활용될 수 있을지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코로나19 치료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뿐 아니라 약물 부작용이 감수할 만한 것인지도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에 따라 같은 약이라도 위험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예컨대 아스피린은 일반적으로 아주 안전한 약이지만 감기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에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드물지만 치명적인 레이 증후군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일상생활 속 화학물질은 어떻게 위험을 감수할지 판단할까요? 질병의 치료 같은 명백한 이득이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 화학물질의 위험을 감수할지 말지는 그 위험을 피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 또는 비용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위험물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농도로 노출되는지, 그리고 그 농도에서 건강은 얼마나 해를 입는지 평가한 후 이러한 위험을 낮추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방법을 실행하는 데 드는 비용, 인력, 시간 등 자원은 얼마인지 검토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기오염은 득이 하나도 없으니 가능한 없애는 것이 좋겠지만, 무턱대고 낮은 기준치를 도입하면 달성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합니다. 현재 공기오염 기준치도 이러한 비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정해진 것이지요. 그 때문에 나라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기준치가 다릅니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생리대 독성 문제에서 보았듯이 공산품에 관련해서는 안전성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공산품 안전성에 관한 법과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전성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과학적 근거도 아직 부족합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 환경역학의 역할입니다.

공기오염의 독성을 오랫동안 추적 관찰한 코호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세계보건기구가 차츰 공기오염 기준치를 낮추었듯이, 생활 속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됨으로써 건강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결과를 내놓음으로써 규제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물질이 어느 공산품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몸의 어느 부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특정 화학물질에 특히 취약한 사람이 있는지 등 환경역학은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모든 단계에 근거를 제시하여 판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안전성 평가에 필요한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에 최선의 예측을 하도록 하는 연구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안전성이 잘 알려진 물질들 중에서 화학적 특성이 비슷한 것을 찾아내기도 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독성을 예측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런 연구가 더 활발히 이루어지는 동시에 연구결과를 반영할 수 있도록 광범한 분야에 안전성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도 보완되어야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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