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에서 질병의 중요성을 비교하는 법
에볼라는 에볼라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걸리는 질병으로 처음에는 독감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다가 심한 구토와 설사로 이어지고, 일부는 혈변을 보거나 각혈을 하는 등 출혈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바이러스를 포함한 체액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을 수 있어 환자를 돌보던 가족이나 의료인들이 감염되기 쉽습니다. 치사율은 평균 50%에 달합니다. 감염된 두 사람 중 한 명은 사망에 이른다는 얘기지요. 지난 2014년부터 2016년 사이에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 리온에서 에볼라가 유행했을 때는 28000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110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2016년 이후로 한동안 잠잠한 듯했으나 2018년 8월에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다시 에볼라 확진 환자가 나왔고 1년이 넘도록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지난해 7월 17일에는 결국 세계보건기구가 국제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하기에 이르렀지요. 2018년 8월 이후 1년 동안 2500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이중 1700명 가까이 사망했습니다. 감염성 장염은 로타바이러스나 노로바이러스 등 바이러스, 콜레라균이나 살모넬라균 등 박테리아, 혹은 아메바 등의 감염에 의해 소장에 염증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구토와 설사로 고생하긴 하지만 대부분 며칠 지나면 저절로 낫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탈수에 취약하기 때문에 구토와 설사가 지속되는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오염된 물이나 음식물 섭취를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흔히 발병합니다. 장염과 에볼라 중 무엇이 더 무섭냐고 묻는다면 에볼라가 백 배, 천 배 더 무서운 질병이겠지요. 하지만 둘 중 어떤 질병이 더 중요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질병이 얼만큼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먼저 그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따져볼 수 있겠지요. 역사상 에볼라가 가장 크게 유행했던 2014년과 2015년에 에볼라로 인한 사망자는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 리온을 모두 합쳐서 2만 2천 명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세 나라에서 장염으로 죽은 사람은 2만 6천 명이었고요. 장염으로 죽은 사람이 15%쯤 더 많은 셈입니다. 에볼라가 당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것과 달리 장염은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지만, 사실 죽은 사람의 숫자만 따지자면 에볼라보다 장염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던 겁니다.
단순히 사망자 숫자를 집계하는 방식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나이를 함께 고려하기도 합니다. 평균 기대수명과 비교해서 몇 년의 수명을 빼앗긴 것인지 계산하는 것이지요. 이런 방식으로는 노인의 사망보다 젊은이의 사망에 더 큰 가중치를 두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대수명이 80년이라면 5살에 사망한 경우 75년을 잃은 것이지만 75세에 사망했다면 5년을 잃은 것이니까요. 이런식으로 사망자 한 명 한 명의 잃어버린 수명을 모두 합친 것을 "잃어버린 수명(Years of Life Lost)"이라고 합니다.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 리온을 합쳐 2014년부터 2015년 사이에 에볼라로 인해 잃어버린 수명은 모두 합쳐 122만 년이었고 장염으로 인해 잃어버린 수명은 157만 년이었습니다. 장염으로 인해 잃어버린 수명이 28%쯤 더 많습니다. 에볼라 사망자는 주로 성인이었던 반면 장염으로 죽음까지 이르는 경우는 탈수에 취약한 영유아인 경우가 많아서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이지요.
물론 에볼라 유행 당시에 에볼라 확산을 막으려고 노력을 쏟아부었던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1976년에 처음 발병이 확인된 이래로 에볼라는 몇년에 한번씩 시골 마을에서 유행하다가 사그라들곤 하던 아프리카의 풍토병이었는데 2014년에는 국경을 넘어서까지 감염이 널리 번지고 있어 국제적으로 큰 위협이 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국제보건기구와 국경없는 의사회 등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 게 틀림없습니다. 다만 장염처럼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질병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없는 질병은 어떻게 중요성을 판단할까요? 모든 질병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닌데 말이에요. 오래도록 큰 고통을 야기하기는 하지만 사망에 이르지는 않는 질병이 있다면 사망률이나 잃어버린 수명을 계산하는 방식으로는 중요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겠지요. 어느 한 시점에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세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유병률(prevalence rate)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번 걸리면 오래오래 고생하는 병이 있고, 금세 낫는 병도 있잖아요. 장염처럼 며칠 앓다 낫는 질병은 한 시점에 환자 수를 세는 방법으로는 대부분의 환자를 놓치게 되겠지요. 이럴 때는 일정 기간 발생한 환자의 숫자를 셉니다. 발병률(incidence rate)을 계산하는 것이지요. 한편 에이즈처럼 한번 걸리면 죽을 때까지 그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경우에도 유병률만 살펴보는 것보다 발병률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이즈 환자의 생존률이 늘어나면서 발병률이 감소하고 있더라도 유병률은 계속 증가할 수 있거든요.
유병률이나 발병률 만으로는 질병으로 인해 떨어진 삶의 질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수명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질을 빼앗기는 셈이니,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햇수를 건강상태에 따라 가중치를 두어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70세에 중증치매를 앓게 되었다면 기대수명 80년에 비추어 10년간 절반의 건강을 잃은 채 살아가는 것으로 보아 10년 x 0.5 = 5년을 잃은 것으로 계산합니다. 60세에 당뇨 진단을 받고 남은 평생을 혈당관리에 신경쓰고 살아야 한다면 건강의 5%를 잃은 것으로 보아 20년 x 0.05 = 1년을 잃은 것으로 계산합니다. 물론 혈당관리가 잘 되지 않아 당뇨합병증이 생겼다면 훨씬 높은 가중치가 적용됩니다.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은 경우 건강의 18%를 잃었다고 본다든지, 당뇨합병증으로 신장 기능을 잃고 투석을 받는다면 건강의 57%를 잃었다고 본다든지 하는 것이지요. 이런식으로 계산한 값을 "불완전건강수명(Years Lived with Disability)"라고 하고, 이 불완전건강수명을 앞서 설명한 잃어버린 수명과 합한 것을 "건강보정수명손실(Disability-Adjusted Life Years)"이라고 합니다. 질병으로 인한 영향 전체를 나타내는 값이라 할 수 있겠지요. 건강보정수명손실을 사용하면 어떤 사회에 질병이 미치는 영향력을 서로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한 국가에서 여러 질병들 간의 중요도를 판단할 수도 있고 한 질병의 국가간 비교도 가능하지요.
수백 가지 질병에 대해 사망률, 잃어버린 수명, 불완전건강수명, 건강보정수명손실 등을 계산해놓은 보고서가 있습니다. 각 나라의 보건당국으로부터 입수한 최신정보를 바탕으로 전세계의 연구자 수백 명이 힘을 합쳐 발간하는 보고서입니다. 1990년에 최초의 보고서가 나온 이래로 계속 업데이트되는 중입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인류건강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질병이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같은 질병이라도 나라마다 중요성이 크게 차이난다는 것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협적인 질병이 변화해 온 역사도 알 수 있습니다. 1990년에는 전세계적으로 호흡기감염으로 인한 건강보정수명손실이 가장 컸습니다. 2017년에는 심장병에 1위 자리를 내어줍니다. 위생과 영양상태가 좋아지고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감염성 질병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역사적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지요.
다만 이런 흐름이 세계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 리온을 포함한 서아프리카 19개국을 살펴보면 1990년부터 2017년까지 건강보정수명손실이 가장 컸던 상위 질병 세 가지가 모두 감염성 질병이었거든요. 1990년에는 장염이 1위, 호흡기 감염이 2위, 말라리아가 3위였던 것이 2017년에는 말라리아가 1위, 호흡기 감염이 2위, 장염이 3위로 순서만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2017년 기준으로 건강보정수명손실을 가장 크게 일으킨 10가지 질병 중 감염성 질병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74위를 차지한 장염은 총 3만 2천 년의 건강보정수명손실을 일으킨 것으로 집계되어 3만 6천 년의 건강보정수명손실을 일으킨 여드름보다도 순위가 낮았답니다.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향을 보입니다. 감염성 질병의 중요도는 떨어지고, 비감염성 질병 특히 나이가 들면서 발병률이 올라가는 질병의 중요도가 점차 상승하는 패턴입니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것과도 관련이 깊지요. 하지만 소득수준이 낮은 국가들은 아직도 감염성 질병의 중요도가 높을 뿐 아니라 비감염성 질병까지 증가하고 있어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소득의 불평등이 건강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물론 기쁜 소식도 있어요. 1990년보다 2017년의 인류는 훨씬 건강하답니다. 평균수명도 훨씬 늘었고, 질병으로 인한 건강보정수명손실 햇수 자체가 크게 줄었습니다. 인류는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졌고, 틀림없이 앞으로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건강한 삶을 보다 골고루 누리기 위해서는 좀 더 노력해야겠지만요.